도나토 브라만테(Donato Bramante)

1444 이탈리아 Fermignano 출생 - 1514년04월11일

추가정보

우르비노 지방 페르미냐노의 몬테아스드루발도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건축가 중 한 명이다. 우르비노에서 기초를 닦은 후 1477년∼1499년에 북이탈리아의 롬바르디아지방에서 활동하였다.
처음에는 베르가모에서 지내다 밀라노로 가서 산 사티로 성당 안의 산타 마리아 성기실(1479년 이후)을 설계하였다. 8각형의 평면을 가진 집중식 회당 형식은 그가 평생 추구한 건축 양식의 첫 표현으로 주목 받는다.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의 내진(內陣: 1492년∼1497년)도 그가 만든 것인데, 여기서도 그의 집중식 회당에 대한 집념이 보인다. 또 밀라노에서는 일 모로의 거성 카스테로 스포르체스코의 개축과 실내장식에도 맡아 하였으며, 파비아 대성당의 건립에도 관여하였다.
1499년에 로마로 가서 1504년 산타 마리아 델라 파체수도원을 설계하였다. 1층과 2층의 열주(列柱) 구성에 세심한 배려를 한 회랑(回廊)에는 이전의 건축 양식에서 찾을 수 없던 장중한 느낌이 넘친다. 또한 산 피에트로 인 몬토리오 수도원 중정(中庭)의 템피에토(1502)에서는 고대의 원형 신전을 본뜨면서도 이를 새 시대의 새로운 건축이념에 부합시켜, 단정한 비례와 조화 있는 공간구성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아름다운 상승감을 느끼게 한다.
그 후 그는 교황 율리우스 2세에게 중용(重用)되어, 바티칸 궁전의 여러 건축과 산 피에트로대성당의 재건공사(1506)를 시작하였다. 대성당의 개축 설계에서는 그리스 십자형을 채택해 집중적인 기하학적 형태를 크게 내세워, 다년간 정열을 쏟았던 집중식 회당 형식의 전형을 실현하려고 했는데, 과도한 공사비로 인해 더디게 진행되었다. 이에 교황 율리우스 2세는 건축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면죄부를 판매하였다가 결국 종교개혁이 발발하게 된다. 브라만테는 공사가 완료되기 이전인 1514년 4월 죽고 말았다. 그 후 후계자들이 그의 설계로 공사를 진행하였으나, 건축물의 대부분이 생전 브라만테의 계획과는 다르게 진행되었다. 그가 직접 만든 바티칸 궁전 벨베데레(Belvedere: 展望臺)의 중정(中庭)은 이 시기에 건축된 가장 아름다운 구성으로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