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초 기베르티(Lorenzo Ghiberti)

1378년00월00일 출생 - 1455년00월00일

추가정보

금 세공인으로 출발하여, 1401년에 피렌체 세례당 제2문(門)의 청동양각(靑銅陽刻) 제작자를 선정하는 콩쿠르에 참가하여, 《이삭의 희생》을 주제로 한 시작품(試作品)을 제출하였다. 심사 결과 기베르티와 F.브루넬레스키(1377?∼1446)가 끝까지 남았고, 심사원들은 우열을 가리지 못하여 두 사람에게 합동제작을 권유하였다. 그러나 브루넬레스키가 작업의 경향이 다른 두 사람의 공동제작이 불가능하다며 사퇴하였기 때문에, 기베르티가 당선자가 되었다.
국립바르젤로미술관에 남아 있는 두 사람의 시작품을 보면, 브루넬레스키는 조각적인 표현에 중점을 두어 격렬한 혁신적 성격을 나타내는 데 비하여, 기베르티는 이야기를 회화적으로 표현하고 보수적인 고딕풍을 살펴볼 수 있다.
1403년에 제2문의 제작을 정식으로 위촉받은 기베르티는 많은 조수를 써서, 앞서 A.피사노가 꾸민 제1문을 표본으로 《그리스도전(傳)》 28면(面)의 청동문을 제작, 21년만인 1424년에 완성하였으며, 이어 1425년 제3문의 제작을 위촉받아, 27년 동안이나 파고 새긴 끝에 1452년에 《구약 이야기》 10면의 정교한 양각을 완성하였다. 후자는 회화상의 원근법을 선의 배치와 살을 붙이는 높낮이로 양각에 응용하고 있어, 오늘날에는 ‘조각의 회화화’라 하여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구도의 통일과 사실적 묘사는 새로운 수법으로서 가히 ‘청동 화가’라는 말을 들을 만한 것이었다.
제3문은 오랫동안 먼지에 덮여 거무죽죽해져 있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도로에서 튄 작은 돌로 손상된 부분을 수리하다가, 원래의 금을 입힌 찬란한 모습이 드러났다.일찍이 B.미켈란젤로가 “천국의 문”이라고 찬양한 것도, 황금빛으로 빛나는 숭고한 아름다움에 큰 감명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라 추측된다.
기베르티는 이 2가지 문의 제작에 거의 평생을 바쳤으며, 그 밖에도 시에나 세례당의 성수반(聖水盤)의 양각, 오르 산 미켈레 성당의 《세례자 요한》 《성(聖)마태오》 등도 제작하었다. 그가 남긴 《코멘타리:Commentarii》는 당시의 미술사관(美術史觀)을 전하는 귀중한 문헌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