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마키우나스(George Maciunas)

1931년11월08일 리투아니아 카우나스 출생 - 1978년05월09일

학력

1952년 쿠퍼 유니온예술대학 디자인.건축 전공 학사

추가정보

마키우나스는 1931년 10월 8일 리투아니아 남부의 카우나스에서 건축가·엔지니어인 아버지와 발레 댄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스위스에서 보낸 뒤, 1944년 소련군이 리투아니아를 침공하자, 가족과 함께 독일로 피신해 헤센주(州)의 하나우에서 피난민들을 위한 중등학교에 다녔다. 1948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이듬해부터 1952년까지 쿠퍼유니온미술학교에서 미술·그래픽·건축을 전공하고, 1960년 피츠버그에 있는 대학에서 건축·음악 학사 학위를 받은 뒤, 1954년부터 1960년까지 뉴욕대학교에서 시각미술(유럽·시베리아 중세미술)을 전공하였다.

1960년 뉴욕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그해 '플럭서스'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사용하였고, 이 무렵 플럭서스를 이끌어 갈 동료들인 브레치(George Bretch)·히긴스(Higgins)·카프로(Allan Kaprow) 등 여러 예술가들과 교류하였다. 1961년 매디슨 애비뉴에 갤러리 AG를 열고 이 갤러리에서 케이지(John Cage)·오노 요코[小野洋子]·히긴스 등의 문학·음악·영화 작품들을 선보였다. 같은 해 독일로 건너가 독일·프랑스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이듬해 헤센주(州)의 비스바덴에서 처음으로 '플럭서스-국제 신음악 페스티벌'을 열고, 공식적으로 플럭서스 그룹을 출범시켰다. 이 그룹에는 히긴스·패터슨(Benjamin Patterson)·보스텔(Wolf Vostell)·윌리엄스(Emmett Williams)·백남준등이 참여하였다.

1963년 뉴욕으로 돌아와 플럭서스 본부를 창설하고, 1968년부터 플럭서스 본부 건물을 세우는 데 전념하였다. 1970년 다시 행위예술에 관심을 쏟기 시작해 1975년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였으나, 같은 해 고릴라의 공격을 받아 눈을 잃는 심각한 부상을 당하였다. 1977년 9월 시애틀에서 마지막 플럭서스 페스티벌을 연 뒤, 1978년 암 진단을 받고 그해 5월에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