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호(Lee Eun-Ho)

1966 부여 출생

서울에서 활동

작가 프로필 이미지

소개말

기억에 의지한다면 그간 이은호의 그림에는 대부분 여자와 꽃이 등장했다. 여자의 얼굴, 몸과 꽃을 섞어 화면을 구성해내는 그림이었다. 그것은 자신/여성의 존재를 표상하는 이미지이자 이를 빌어 자기 내면을 드러내는 매개로 삼는 그런 맥락에서 일 것이다. 또한 둘 다 ‘아름다움’과 ‘여성’과 관련된 소재라는 맥락에서 선택되어 왔을 것이다. 여기서 여자와 꽃은 동일한 자연적 존재로 인식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또한 불변하는 미의 세계로 인지되어왔고 회화/동양화에서 소재주의의 고정된 틀 안에서 지속되어 온 측면도 있다. 근대기에 형성된 ‘여인과 꽃’이라는 이 그림의 소재는 변함없이 한국 미술의 영토를 경작해 온 대표작물이다. 다소 관습적인 회로 안에서 반복 되는 소재주의의 혐의가 짙기도 한 반면 새롭게 해석되면서 또 다른 문맥 안에서 환생되기도 한다.

작가의 근작은 이른바 전통시대의 문자도를 차용한 작업이다. 예를 들어 ‘꽃’이나 ‘꿈’이란 커다랗게 한글이 쓰여져 있는데 사실 그 문자는 이미지들로 채워져 있다. 여러 이미지들이 콜라주 되어 뒤섞여 있지만 일정한 거리에서 보면 특정 문자를 보여준다. 문자로 보이지만 이미지들만이 빼곡하고 다시 보면 구체적인 문자를 지시하고 있는 형국이다. 공간을 배경으로 문자/이미지가 떠오르고 이내 그 문자는 여러 이미지의 배열 아래 흩어지고 모이기를 반복한다. 연관 없이 출몰하는 이미지들은 문자를 지시하는 공간/ 영역 안에서 서식한다. 색채를 지닌 도상들이 단색의 여백을 배경으로 순간 멈춰서 있는 형국이다. 그것을 읽어야 할지 혹은 보아야 할지 관자로 하여금 잠시 당혹스럽게 한다. 보는 것이자 읽은 그림이 되었다. 문자와 이미지는 본래 하나여서 분리되거나 격리되지 않았음을 넌지시 일깨워준다. 또한 그림은 단지 시각적인 영역에만 국한될 수 없는 것이라 문자의 개입을 통해 통감각적인 감상과 관조가 가능해진다. 이미 그것은 전통적인 동양화에서 익숙한 인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