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Rodríguez de Silva y Velázquez)

1599년06월06일 스페인 세비야 출생 - 1660년08월06일

스페인에서 활동

추가정보

1599년 6월 6일 세비야에서 출생하였다. 처음 에레라에게 사사하고, 이어 마니에리스트 화가 파체코에게 사사하였다. 정신적으로도 이 문화도시와 스승 파체코의 영향을 받았으며 뒤에 그의 사위가 되었다. 초기의 작풍은 당시의 에스파냐 화가들과 다름없이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은 명암법으로 경건한 종교적 주제를 그렸으나 민중의 빈곤한 일상생활에도 관심이 많았다. 1622년 수도 마드리드로 나가, 이듬해 펠리프 4세의 궁정화가가 되어, 평생 왕의 예우를 받았으며 나중에는 궁정의 중직을 맡았다.

초기의 어두운 색조와 명암법에 의한 마지막 걸작은 《주정뱅이들─바커스의 대관(戴冠)》(1629)이고, 1628년의 첫 이탈리아 여행에서 받은 베네치아파의 영향으로, 중기(中期)는 밝고 선명한 색조와 경묘한 필치로 바뀌었다. 이 시기에 왕족·신하 그리고 궁정의 어릿광대·난쟁이 등을 그린 다수의 초상화는, 그를 미술사상 초상화가의 대가로 만들었다. 이 불행한 사람들을 왕족들과 다름없는 담담한 필치로 묘사한 것은 인간 존재의 중요성과 본질적인 비극성까지 추구하였음을 보여준다.

초상화의 대표작으로는 《왕녀 마리아 안나》 《왕녀 마르가리타》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1650) 등이 있으며 또 큰 구도의 작품으로는 《브레다성의 항복》(1637)이 유명하다. 그 후 두 번째 이탈리아에 체류(1649∼1651)하는 동안 장기간 연찬을 거듭하여 기법상의 혁신이 완성되었다. 만년의 대작 《궁녀들(라스 메니나스)》과 《직녀(織女)들》(1657)은 평생의 화업(畵業)을 집약한 것들이다. 거기서는 전통적인 선에 의한 윤곽과 조소적(彫塑的)인 양감(量感)이라는 기법이, 투명한 색채의 터치로 분해되어, 공기의 두께에 의한 원근법의 표현으로 대치되었다.

전동(顫動)하는 빛의 파도에 씻기고, 완전히 대기를 파악하는 벨라스케스의 공간과 기법은 시대를 크게 앞질러 인상파의 출현을 예고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그의 종교화 ·신화화는 모두 주제의 제약에 속박되지 않는 조형성 탐구라는 근대성을 지녔으며, 백색 ·흑색 ·회색의 해조(諧調)된 색채가 비속화나 이상화에 치우치지 않는 독자적인 리얼리스트로서, 그 시대의 에스파냐 화단에서는 개성이 출중한 화가로서 평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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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녀들 (라스 메니나스)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316x276cm, 1656, 프라도미술관(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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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왕녀 마르가리타 테레사

    캔버스에 유채(Huile sur toile), 70x58cm, 1659, 루브르박물관(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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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레다의 항복

    캔버스에 유채(Huile sur toile), 57.5x48cm, 1634–1635, 보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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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너스의 단장 (로크비의 비너스)

    캔버스에 유채, 177x122.5cm, 1644-1648, 런던 내셔널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