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뮌터(Gabriele Münter)

1877년02월19일 독일 베를린 출생 - 1962년05월19일

학력

뮌헨 여성화가협회 미술학교 회화 전공 기타
팔랑스 미술학교 회화 전공 학사

추가정보

1897년 뒤셀도르프에서 그림 개인교습을 받았으며 1901년 뮌헨 여성화가협회의 미술학교에 입학하였다. 같은 해 겨울 팔랑스 미술학교(Phalanx School)로 옮기게 되는데 그곳에서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를 만났다. 칸딘스키는 팔랑스 미술학교의 설립자이며 그곳에서 미술을 가르쳤다.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에서 연인이 되었다. 1903년부터 1914년까지 그들의 연인관계는 지속되는데 이 시기 그녀는 가장 활발한 예술 활동을 펼쳤다. 1908년 뮌터는 바이에른 지방 무르나우에 집을 얻어 칸딘스키와 동거를 시작하였다. 이 집은 뮌헨 아방가르드의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 야블렌스키(Alexei von Jawlensky)와 그의 부인 베레프킨(Marianne von Werefkin)이 이곳에서 작업했고 마르크(Franz Marc), 마케(August Macke), 클레(Paul Klee), 쿠빈(Alfred Kubin) 등이 정기적인 모임을 갖기 위해 이곳을 드나들었다.

1909년에는 뮌헨 신미술가협회(NKVM)을 결성하였다. 하지만 미술적인 견해 차이로 뮌터는 칸딘스키, 마르크와 그곳을 탈퇴하였다. 그리고 1911년 ‘청기사’를 창립하였다.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청기사파는 자연 해산되고 러시아인 칸딘스키는 독일을 떠나야 했다. 결혼까지 약속했지만 칸딘스키는 끝내 약속을 저버리고 1917년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장군의 딸과 결혼하였다. 뮌터는 깊은 상처로 무르나우의 작은 집에 혼자 기거하며 고독한 시간을 보냈다.

뮌터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고 1949년 뮌헨의 ‘청기사’ 전시회에서 그 위상을 보여주었다. 무르나우에 남겨진 칸딘스키의 초기 작품들을 나치 통치 기간 동안 지켜낸 뮌터는 그 작품들과 자신의 그림을 뮌헨 렌바흐하우스 시립미술관에 기증하였다. 그녀는 1962년 85살의 나이로 무르나우에서 생을 마감했다.

뮌터의 작품은 그녀 삶의 모든 풍경을 품고 있다. 그녀 자신과 칸딘스키, 무르나우 집의 친구들, 마을의 거리와 농가, 슈타펠 호수, 바이에른의 산악 풍경, 과일과 꽃, 도자기와 민속품이 있는 정물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에 내면의 정서를 담아 형상화하는 작업을 보여주었다. 맑고 상징적인 색채와 대담하고 단순한 형태, 뚜렷한 검은 윤곽선은 그녀 작품의 표현성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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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