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진
뒤엉킴 한지에 채색, 70X128cm, 2017
김은진
뒤집힌 시간 한지에 채색, 53X41cm, 2017
보이지만 존재하지 않는 그림자, 빛과 나무 뒤로 투영되어 나타난 본연의 인간
“치유의 이미지인 숲 속 나무 형상보다 그 이면의 그림자로부터 인간관계적 내면을 읽다”
- 화가 김은진 작가
그림자의 형상은 대상의 형체에 종속되지만 빛과 공간, 시간의 변화에도 시시각각 바뀐다.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나’의 모습이 ‘그림자’에 반영된다는 것은 인간이 몸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타자화와 대상화로 주체성과 존재를 설명하는 현상학적 실존주의의 단면이기도 하다. 나무를 모티브로 숲의 치유적 속성, 나무의 성장과 인간 생로병사의 유사점을 찾아내 시간의 흐름과 공간감을 표현하던 화가 김은진 작가는 최근 그러한 현상학적 관점에서 나무와 빛의 이면이 만들어 낸 ‘그림자’라는 주제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화폭에 담고 있다.
‘섀도(Shadow)’, 나무의 그림자에 깃든 인간의 여러 가지 내면의 이미지
세계를 물리적인 원소기호로 인식하는 것이 과학의 영역이라면, 자신의 몸과 기관을 이용해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고 체험하며 세상을 대상화해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몸의 현상학’이다. 몸을 인식의 주체이자, 대상화가 가능한 소재로 끌어올린 현상학자 메를로-퐁티에 따르면 이 인간의 체험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성, 유기적인 조화와 체험을 토대로 주체적인 판단을 내리는 잣대가 된다고 한다. 지난 2005년부터 인간의 삶과 나무의 사계변화 관계성에서 치유의 이미지를 찾아 풍경에 자아를 투영하던 화가 김은진 작가의 방법론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왔다. 숲 속 나무의 형상에서 자신과의 공통점을 찾던 김 작가는 경험과 회상, 치유의 속성에서 차츰 나무를 매개로 형성되는 빛과 그림자와의 관계, 시시각각 바뀌는 그림자와 기억의 재해석을 시도하며 외부의 요소로 변하게 되는 인간 자아의 단면을 담게 된다. 숲 속의 나무 한 그루가 인간 군상들 사이 ‘나’의 존재를 암시하듯, 나와 나무는 별개의 개체이면서도 의식적 상관관계를 갖고 있으며, 여기서 암시하는 존재의 관계성으로 인해 실존하는 주체를 다른 관점과 새로운 인식으로 지각하며 개체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과 의문으로 김 작가는 본연의 자신에 대해 좀 더 복잡하게 가지를 친 심경과 환경의 변화까지 반영하게 되었다고 한다. 2017년을 기점으로 김 작가는 나무 형상이 아닌, 그 나무의 그림자에 생동감과 양감을 부여하며 인간상의 다른 이면을 표현하고 있다. 사물이 환경적 요소로도 바뀌는 것에 빗대는 과정에서, 나무는 작가 자신, 빛을 환경적 요소로 삼아 최종적으로 나온 것이 ‘섀도(Shadow)’ 시리즈이다.
수채기법의 분채와 석채를 활용하고, 그림자의 반대편에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빛을 형상화 한 금박과 은박을 씌우고, 덧칠해서 마띠에르를 느끼게 하는 기법으로 나무라는 오브제에서 내면의 그림자를 끌어올린 김 작가는 최근 들어 뿌리는 기법도 활용하며 그 변화의 재해석을 충실히 옮기고 있다. 환경적 요소, 눈에 보이는 형상보다 내면과 내포하는 의미를 보여주고자 그림자를 본래의 잿빛보다 형형색색으로 표현하는 것도 이러한 변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기억은 감각으로 입력되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퇴적되지만, 내면과 소통하며 새로운 이미지가 완성되게 마련이다. 과학은 이것을 뇌의 기억작용으로 설명하려 하지만, 김 작가는 형상과 다른 이미지로 남아 있고 바뀌어 가는 모습에서 본연이자 궁극적인 자신의 모습을 찾고자 나뭇가지의 뒤엉킨 형상과 나무의 그림자를 모티브로 삼았다. 메를로-퐁티가 <지각의 현상학>에서 설명했듯이 ‘눈을 통해 마음을 사로잡았던’ 풍경은 세상을 대상화하는 필터링을 거쳐 인식되는 것이다. 김 작가 역시 의식과 세계관,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의 의식과 관계성을 굳이 자신과 분리하지 않는 현상학적 관점에 따라, 유기체에 대한 인식의 원천이 바로 인간의 지각이라는 점을 붓과 색채로 설명해 낸 셈이다. 소셜 포지션에 따른 나, 스스로가 생각하는 나와의 극명한 차이는 인간 사이의 간격에서도 나온다. 그렇기에 김 작가는 앞으로 그 그림자 안에서 또 하나, 그 이상의 그림자를 찾아내려 한다. 사물은 상황에 따라 여러 그림자를 갖고 있다. 거대한 건물이 만든 그림자 내부 공간에는 인공조명이 만든 그림자가 또 있으며, 이를 응시하는 인간은 거울로 반사된 다른 빛을 통한 새로운 그림자에 투영된 자신을 본다. 김 작가는 나무에 빗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성을 표현하기 전부터 시간적 개념과 공간을 다루었는데, 이를 더욱 파고들어갈수록 보이는 경계와 내면과 외면의 개념까지, ‘나 혼자’만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것에서 파생된 또 다른 요소들을 찾게 된다고 한다. 마치, 평범한 옷차림과 눈빛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내면의 열정과 불꽃이 숨겨져 있듯 겉보기와 다른 이면을 본다는 관점에서 작품을 표현하는 김 작가는 내년부터는 ‘섀도우’에서 더 나아가 확장된 ‘섀도우 인 섀도우’의 개념으로 파고들게 될 것이라고 고백한다. 이러한 변화를 담은 ‘섀도우’ 시리즈 10여 점이 소개되는 김 작가의 개인전은 오는 8월 26일부터 9월 5일까지 안국동 갤러리 담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정재헌)
작가의 글
-인간과 인간들의 관계 그리고 인간의 내면
인간의 삶과 긴밀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는 자연 안에서 나무는 중심, 생명의 원천, 죽음과 재생, 성장, 우주적 생명력의 편재를 상징하는 원형으로 나는 나무에게서 인간의 관계, 인간의 내면, 인간의 순환에 대하여 빗대어 바라보게 되었다.
풍경 속 나무이미지들은 다시 현재 내게 작동되는 ‘감각’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쌓이며 퇴적되는 과거 ‘기억’과의 끊임없는 소통과 소환을 통하여 완성된 이미지로 재해석 하여 화면에 담아냈다
"Shadow"
그림자의 움직임...
그 상(像)은 실체인가 가상인가? 상(像)은 있으나 스스로는 존재 할 수 없는, 실제 인듯하나 실제가 아닌, 그 대상인 듯 하나 실제 그 대상이 아닌... 그 대상의 본연의 색은 표현되어지지 않고, 시간의 흐름 날씨에 따라 바뀌는 빛, 바람, 빗줄기, 눈(雪) 등, 외부의 요소로 순간 변화되어지는 모습들은 마치 내가 타인들을 만나면서 그 공간과 시간 속, 그들과의 관계 안에서 그들에게 보여지는 의식적으로 만들어낸 나의 표정, 행동, 감정의 상태를 닮은 듯하였다.
현존하는 대상보다 더 길거나 작게 혹은 의외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그림자는 외부로부터 숨기고 싶은 내면의 인간심리, 또 다른 나의 내면의 모습을 생각하게 되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외면과 내면의 감정들이 뒤엉켜지며 시시각각 바뀌는 말과 행동들을 보며 진짜 내 모습은...... 본연의 나는 어떤 모습인가? 라는 물음 속에서 작업을 하게 되었다.
작품의 나무 이미지는 시간, 공간, 인간에 대하여 연구하며 작업해온 연장선으로 시간의 변화와 그 공간과 상황 속에서 행동하는 모습이 본연의 나인지 또 타인들...... 본연의 그들의 모습인가? 그 순간에서만 존재했던 나 혹은 그들의 모습 인가? 에 대하여 의문을 던지며 이번 "Shadow" 전시에서는 나뭇가지의 뒤엉킨 형상과 나무 그림자를 모티브로 작업하였다.
-숭고한 풍경-
그가 환기하는 풍경, 전에 이미 눈을 통해 마음을 사로잡았던 풍경, 이 풍경 속에서는 근경이 원경으로 퍼져나가고 원경이 근경을 아른거리게 한다. 이 풍경 속에서는 사물들의 현존이 부재의 토대 위에 있다. 이 풍경 속에서는 존재와 현상이 교환된다.
-메르리-퐁티 『지각의 현상학』p. 11
관계의 풍경– 김은진의 근작들
2015년에 열린 개인전
2015년 전시에서 천명된 ‘빛’과 ‘지각’의 문제를 김은진의 최근 작업에 접근하는 단서로 삼을 수 있다. 가령
‘깊이’의 문제를 좀 더 다뤄보기로 하자. 주지하다시피 눈의 망막에 맺힌 상은 그 자체로 깊이를 갖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다는 클로드 모네의 그림이 평평하게 보이는 이유다. 물론 가까이 있는 것은 크게, 멀리 있는 것은 작게 보이지만 우리 눈(망막)에는 오로지 크고 작은 사물들의 상이 맺힐 뿐이지 거리(깊이) 자체가 맺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깊이는 대상 자체가 아니라 보는 주체의 관점에 속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깊이는 정면에 있지 않고 측면에 있다. 그렇다면 정면에서 깊이를 운운하는 일은 메를로-퐁티가 말한 대로 “측면에서 파악된 넓이la largeur considérée de profil”를 암암리에 전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정면에서 보면서도 “측면에서 파악된 넓이”를 끌어들여 깊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주체의 지각이다. 그래서 메를로-퐁티는 “깊이는 나와 사물의 관계이다”라고 한 것이다. 확실히 깊이는 다른 공간적 차원들에 비해서 훨씬 더 사물과 몸(지각)의 관계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 다시 김은진의 최근 작업으로 돌아오면 문제의
방금 전에
이제 <엉키고 엉켜진>(2017), <뒤엉킴>(2017), <뒤엉킨 순간>(2017)들이 구현하는 얽힘의 양상을 확인해보자. 이 작품들에서는 이른바 ‘형상-배경의 법칙’(figure & ground law), 즉 배경(ground)로부터 형상(figure)을 끌어내는 식으로, 전경(前景)과 후경(後景)을 구별하고 주어진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는 지각방식이 원활하게 관철되지 않는다. 우리 눈이 그림의 어떤 부분을 형상으로 삼아 주목하려 하면 곧장 다른 부분이 앞으로 나오고, 그러면 또 다른 부분이 앞으로 나오는 식이다. 심지어 배경으로 간주할 수 있는 부분조차 두툼한 질감을 지니고 있기에 형상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는 느긋하고 편안하게 관조하며 여백의 미를 만끽하는 식의 감상이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 대신 감상자는 자신의 살아있는 몸을 수행하는 식으로, 즉 작품에 밀착하여 눈으로 그것을 더듬는 식으로 그 “엉키고 엉켜진” 것들, “뒤엉킨 순간”들을 만나야 한다.
이 작품들을 “신체적 풍경”이라 부르면 어떨까? 김은진의 작업들이 지각방식을 문제 삼고 공간에 몸이 개입하는 양상에 천착한다는 점에서 ‘신체적 풍경’은 썩 그럴듯한 명명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신체적 풍경’이라는 개념으로는 아직 충분치 않아 보인다. 이 작가에게 그 신체적 풍경은 어떤 인간적인, 아주 개인적인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림자의 움직임, 그 상(像)은 실체인가?, 가상인가? 상(像)은 있으나 스스로는 존재할 수 없는 실제인 듯하나 실제가 아닌, 대상인 듯 하나 실제 그 대상이 아닌, 그 대상의 본연의 색은 표현되지 않고 시간의 흐름, 날씨에 따라 바뀌는 빛, 바람, 빗줄기, 눈(雪) 등 외부의 요소로 순간 변화되는 모습들은 마치 내가 타인들을 만나면서 그 공간과 시간 속 그들과의 관계 안에서 그들에게 보여지는 의식적으로 만들어낸 내 표정, 행동, 나의 감정상태를 닮은 듯하였다.”(2017, 작업노트) 작업노트에 서술된 내용을 참조하면 이 작가에게 주체/대상, 인간/공간의 얽힘은 단순히 감각적 쾌, 지각의 즐거움을 지향하기보다는 오히려 삶의 실존을 문제삼는 다분히 윤리적인 지향을 내포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여기에는 주어진 조건에 자기 자신을 어떻게든 맞추고, 거주하는 공간에 자기 몸을 적응하면서 살아야 하는 인간적 조건에 대한 공감 내지 연민이 깃들어있다. 이렇게 본다면 김은진의 근작들을 현존재의 삶의 방식에 구조적으로 상동하는 회화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현시점에서 그것을 나는 다만 잠정적으로 “관계의 풍경”으로 명명하고자 한다.
■ 홍지석(Hong Ji-Suk, 단국대학교 연구교수, 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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