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You Can See

2018.12.05 ▶ 2018.12.10

인사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1-1 (관훈동, 인사가나아트센터) 2층 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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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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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수

    Image Oil on Canvas, 130x120cm,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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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수

    As You Can See Oil on Canvas, 117x91cm,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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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수

    Image Oil on Canvas, 160x130cm,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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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수

    Corner Oil on Canvas, 160x130cm,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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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수

    As Shown Oil on Canvas, 117x91cm,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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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수

    As You Can See Oil on Canvas, 160x130cm,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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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수

    As Shown Oil on Canvas, 130x160cm,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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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수

    colors Oil on Canvas, 185x137cm,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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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수

    colors Oil on Canvas, 185x137cm,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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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수

    colors Oil on Canvas, 90x90cm, 2018

  • Press Release

    빛으로 공간을 열다
    이선영(미술평론가)

    이지수의 작품에는 부드럽게 퍼지는 색의 장(場)이 있다. 수직 수평의 선이 등장할 때도 가장자리는 부드럽다. 마치 무지개의 색/빛을 나누는 띠처럼 말이다. 이러한 색의 장에는 다양한 굴곡 면을 가지는 틈들이 자리한다. 대개 작품 하나당 하나씩 있지만, 많은 틈들이 있는 큰 규모의 작품도 있다. 과일 또는 인체의 일부를 떠오르게 하는 틈은 색/빛이 들락거리는 구멍같이 보인다. 구멍은 화면 가장자리로 밀려 있기도 한다. 화면의 중심이든 가장자리든, 그곳을 중심으로 색/빛이 확산되거나 수렴된다. 색에 대한 시각적 관습 상, 진한 색의 구멍 색은 보다 깊은 심도와 경사도를 암시할 것이다. 매끄러운 표면을 가지는 굴곡과 경사로를 따라 활주하는 것은 제각각 다른 속도감으로 유입/유출될 것이다. 그러나 붓질 자국이 감춰져 있는 표면과 심연의 형상들에서 시점과 종점을 특정하기는 힘들다. 마치 우리의 욕망처럼. 틈은 빛에 있어서의 그림자 같은 존재로 자리한다. 무엇인가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자신의 은유로 볼 수 있다면, 틈은 빛 못지않게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 된다.

    부드럽게 퍼지는 빛의 면이 접힌 틈들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독특함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얼굴을 비롯해 유기체의 구멍새들은 얼마나 다양한 인상을 낳는가. 또한 기능을 가지는가. 그것은 정상과 비정상은 물론, 극치의 미에서 추까지 아우르는 광폭의 범위를 가진다. 틈입이 만들어내는 주름은 하나의 세포가 수많은 분열을 거듭하여 조직화된 유기체가 되는 생명의 발생 과정부터 선명하다. 이지수의 작품에서 그 틈들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상상력은 보조개나 배꼽부터 가슴이나 엉덩이 같은 부위까지 이른다. 작품제목 [보이는 대로]처럼, 상상력을 더욱 발동시킨다면 체외 뿐 아니라 체내까지도 확장되어 그자체가 표면의 주름이자 틈인 뇌나 장기에 이를 것이다. 해부학이 실시된 이래, 아니 몸을 외과적으로 열어젖히지 않고서도 이제 빛은 몸의 곳곳을 더 많이 비춰가고 있다. 몸이라는 어두운 덩어리는 계몽주의의 시선 이래 점차적으로 자신을 빛에 개방해 왔다.
    임상의학적 시선에 의하면 그 표면의 색과 주름은 질병과 치유의 전조로 간주될 수 있다. 빛과 틈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막힘없는 통로를 만들어낸다. 이지수의 작품 속 틈들은 당장에는 막혀 있는 듯해도 열림에 대한 가능성을 가진 잠재적 형태이다. 심연처럼 드러나는 통로는 절망이자 희망의 근거이다. 유화지만 두께가 얇아서 표면에 칠해진 색이면서도 빛의 느낌을 준다. 이렇게 유화물감을 쓰는 방식은 학부 때 익혔던 동양화법과 관련될 것이다. 이지수는 학부에서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이후 미국에서의 수학과 오랜 작업을 통해 주로 쓰는 미디어를 변화시켰다. 몇 달 전 몽골에서의 개인전에 이어 열리는 한국에서의 전시 출품작들은 모두 유화이다. 앞으로 빛과 관련된 설치작품도 생각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자신에게 최적화되어 있는 그림으로 할 수 있을 만큼 한 이후의 일이다. 지금은 유화를 하지만,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빛에 대한 이미지는 2000년대 초반, 먹으로 작업할 때와 연속적이다.

    이지수의 그림에서 빛은 어떤 대상을 확실하게 비추지 않는다. 어스름한 빛은 전체가 아닌 부분적 대상과 결합하여 몽롱한 느낌이다. 잡내를 없애는 촛불처럼 잡념을 없앤다. 어릴 때부터 촛불 보는 것을 좋아한 작가는 이후에도 실내에 비친 빛에 의해 보이는 벽과 모서리 등을 주시한다. 특히 센 빛을 봤을 때의 어지러움의 인상이 작품에 반영된다. 작가는 다양한 빛 중에서 ‘중심으로부터 바깥쪽으로 퍼져나가며 희미해지는 빛의 가장자리’를 좋아한다. 강렬한 빛을 응시한 후의 잔상, 그것의 현기증 나는 여운은 사물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잔상은 사진의 고정된 시점에 길들여져 있는 현대인에게 육안의 존재를 일깨운다. 육안의 외눈박이 기계(사진)보다 안정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이러한 불완전함은 어떤 부류들에게는 기계적 일상보다는 더욱 생생한 시야를 열어준다. 잔상은 뒤이어 오는 이미지들을 환상적으로 변형시킨다. 이러한 환영에서 눈은 보고 싶은 것을 본다. 이미지가 없는 추상화도 있다. 추상화는 검은 선들을 다양한 빛/색의 사이에 끼워 놓는 작품에서 두드러진다.
    마치 형광등처럼 가로 또는 세로로 배열된 길쭉한 선/면들은 기하적 대비를 통해 색을 빛으로 변화시킨다. 작품 전체를 그라데이션으로 채워서 명확한 경계가 없는 빛의 진동을 표현한다. 입자이자 파동이기도 한 빛은 명확히 경계 짓기 힘들다. 시야는 한 곳에 고정되지 않고 빛/색과 어둠이 교차되는 영역을 배회한다. 빛 속에 잠재된 수많은 색을 끌어내서 화면 위에 고정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작가는 ‘캔버스가 팔레트인 듯 아래 색과 위색이 섞여 원하는 색감이 나올 때까지 수 천 번이고 칠하면서 색의 변화를 만들어간다’고 말한다. 응시된 빛이 만들어내는 잔상은 작품마다 수많은 차이를 만들어내는 불확정적 요소이다. 미술사에서 매 순간 변화하는 색의 유희는 고전주의를 거부했던 인상파에서 두드러졌다. 그러나 이지수는 몇 가지 대상을 정해놓고 탐구적인 자세로 작업하는 고전주의의 방식이 내재되어 있으면서도 유동적이다. 어릴 적부터 작가가 응시하기 좋아했던 노란 촛불은 결코 하나의 빛과 색, 그리고 형태로 고정될 수 없는 살아있는 것이다.

    작업이이란 한 작품에서 잠재적이었던 것이 다른 작품에서 현실화되고, 또 그 반대의 과정이 되는 연속이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다른 모습의 같은 빛’이라고 말한다. 정보혁명을 통해 각종 스펙터클이 매순간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시대에 어둑한 실내를 밝히는 한줄기 빛을 응시하는 행위는 눈을 감은 채 보는 것과 같다. 작가에게는 감았을 때 보이는 것이 더 실재적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역설은 그 만큼 작가와 세상과는 어떤 막의 존재를 생각하게 한다. 그래도 꽉 막힌 벽은 아니다. 빛이 가득 스며들며 변모하는 듯한 화면은 벽보다는 막을 떠올리며, 다양한 공간 변주를 통해 과육을 감싸는 껍질이나 기관을 감싸는 피부 같은 느낌으로 확장된다. 부드럽게 번지는 빛은 어디로부터 조명 받은 것이기 보다는 자체 발산하는 듯 은은하다. 조명이든 자체발산이든 빛은 어둠과 짝을 이루는 근원적 요소이다. 한스 블루멘베르크는 [진리의 은유로서의 빛]에서 빛이라는 개념은 원래 이원론적 세계관에 속했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빛은 다른 모든 것들에 가시성과 대상성을 부여하지만 그것 자체로는 어떤 대상으로서의 성격을 지닐 수 없다. 즉 빛은 그것이 가시적이게 한 것들을 통해서만 보여 질 수 있다는 점에서 초월의 기미를 띠고 있다. 빛은 비록 누추한 방구석일지라도 초월이라는 은유로 자신이 속한 장소를 변화시킨다. 빛은 ‘공간, 거리, 방향, 고요한 명상’(한스 블루멘베르크)을 강조한다. 이지수의 작품에서 빛은 특히 공간을 강조한다. 막스 야머는 [공간개념-물리학에 나타난 공간이론의 역사]에서 공간을 빛과 같게 여긴 이론적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선사시대부터 빛은 초자연적 힘들의 상징이었다. [신약성서]에 의하면 신은 ‘세상의 빛’이다. 존 하비도 [블랙 패션의 문화사]에서 기독교 초상에서는 가끔 예수를 밝은 빛 한가운데보다 아주 강렬한 어둠 가운데 표현하는 전통이 있다고 말한다. 존 하비에 의하면 이런 전통은 유대교 신앙에 기반 한 것으로, 이에 따르면 신은 형언할 수 없는 어둠 --‘신성한 어둠이란 근접할 수 없는 빛으로 거기에 신이 있다’(디오니시우스)--속에 있었다.

    물론 작가는 종교인이 아니다. 그러나 이지수에게는 어떤 종교라고 갖고 싶을 만큼 절박한 시기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유일한 친구가 되어 주었던 그림 그리기가 지금까지도 그 역할을 대신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빛의 관찰이나 그리기는 그저 놀이에 불과할 수가 없었다. 특히 빛은 어린이나 원시인이 아니더라도 의미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막스 야머에 의하면 공간을 빛과 같게 여기는 이론들은 본질적으로 신학적 특징을 지닌다. [공간 개념]은 공간을 빛과 같게 여긴 것의 출처를 프로클로스의 [공간론]이라고 밝힌다. 프로클로스에 의하면, 공간은 물질세계 전체를 담고 있지만 세계에 의해 담기지 않으며, 따라서 빛의 영역과 같은 공간에 걸쳐 있게 된다. 이지수의 작품은 확산되는 빛이 연장하는 공간과 관련된다. 빛은 공간을 열며 궁극적으로 빛과 공간은 하나가 된다. 막스 야머에 의하면 공간은 물질적이지도 않고 비물질적이지도 않은 존재자이기에 두 세계를 중개하는 역할을 하며, 공간을 첫 번째로 채우는 것은 모든 곳에 퍼져 있으며, 모든 것을 보존하는 3차원의 매체인 빛이다.

    르네상스를 비롯해서 이전시대에 빛은 형이상학적으로 신에게 이르는 길이기도 했지만, 현대의 작가에게 그것은 지금 여기의 나를 변화시키고, 때로 세상도 변화시키는 예술작품에 이르는 길이다. 짙은 색으로 표현되는 틈은 공간에 펼쳐졌던 빛이 수축되는 지점으로 생각된다. 그녀의 작품에서는 빛 만큼이나 틈도 중요하다. 여러 색조가 깔려 있기는 하지만 어두컴컴하게 보이는 틈은 표면에 부드럽게 펼쳐진 빛이 접혀진(또는 말려진) 자리이다. 시점일지 종점일지 알 수 없지만 무엇인가가 들고나는 중간 지점이다. 펼쳐진 빛이 충만하다면 틈은 상대적으로 빈 곳이다. 활주하는 붓처럼 활주하는 시선에 불연속의 지점을 마련한다. 결여와 부재의 지점들은 감춰져 있지만, 각 작품마다의 독특함을 결정짓는 요소로 작동한다. 작가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게 한다. 또는 명백한 것을 흐릿하게 한다. 라깡으로 대표되는 현대의 정신분석학자들은 기본적인 기표들의 사슬에 생기는 틈새 때문에 생기는 정신병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적 조건 그자체가 이러한 틈새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정신병은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언어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늘 크고 작은 장애에 직면해 있다. 작가는 이 틈을 감추지 않고 빛만큼이나 작품의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표면과 주름의 관계 속에서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예술은 그자체가 표현 불가능한 무엇이 있다는 지속적인 표명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설적 방식으로만 욕망의 해방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을 따름이다. 물론 정신분석학은 욕망이 궁극적으로 만족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에의 무한한 추구는 있을 수 있다. 예술 또한 그러한 욕망추구의 장이다. 욕망이 무한하다고 하니 예술과 욕망은 어울리기 까지 한다. 마단 사럽은 라깡의 해설서 [알기 쉬운 라깡]에서 욕망을 해방시키는 대상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적 장치인 라깡의 ‘대상a’를 설명한다. 라깡의 이론에서 대상a는 욕망의 기표이다. 그에 의하면 대상a는 구멍일수도 젖가슴일수도 있다.

    이것은 끄트머리나 절단과 관계가 있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 마단 사럽이 설명하는 라깡의 이론에 의하면, 대상a는 분리의 틈새를 채우는 첫 번째 이미지이다. 이것은 실지로 욕망을 위한, 그리고 상실된 대상을 위해 라깡이 만든 공식이다. 대상a는 신체 위에 내면과 외면을 연결시켜주는 통로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발견된다. [알기 쉬운 라깡]에서는 소설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살 한 덩어리와 대상a를 비교한다. 소설에서,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엉덩이 살을 떼어야하는 불가능한 기획은 욕망의 대상에 대한 적절한 비유가 된다. 소설 속 살 한 덩어리는 대상a가 띨 수 있는 형상 중 하나인데, 즉 대상이 분리되어질 수 없는 어떤 것의 부분, 보다 커다란 전체 중에서 쉽게 얻을 수 없는 부분으로서의 대상을 말한다. 그것은 언젠가는 가졌던 것일 수도 있다. 가령 모든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인간에게 가장 원초적으로 다가오는 상실된 대상은 젖가슴일 것이다.

    과일의 일부 여성 신체의 일부처럼 보이는 이지수의 작품에는 현대의 정신분석학이 말하는 상실된 욕망의 대상과 비교될 만한 것이 있다. 어둡고 좁은 산도를 통과하여 태어난 모든 아이들이 맨 먼저 맞딱뜨리는 빛, 그 이전부터 들려왔던 타자의 목소리(가 나오는 구멍)의 이미지들도 편재한다. 욕망은 상실된 대상을 되찾기 위한 시도들이다. 종교적 직관을 가진 이들만이 이러한 욕망을 초월할 수 있었고, 그것이 부질없음을 일깨우려 했다. 라깡의 이론에 의하면 주체는 평생에 걸쳐 이 상실된 대상을 찾기 위해 반복적인 시도를 한다. 이지수의 작품에서 외곽선이 뿌옇게 처리되어 있어 저편으로 사라지거나 이편으로 나타나려 하는 듯한 어떤 덩어리는 출몰하는 욕망에 대한 이미지이다. 빈방에서 빛을 밝힌 벽을 마주한 작가는 일상의 잡다함을 쓸어 담는 평온한 표면을 창출한다. 이러한 창출은 끝이 없을 것이며, 이러한 끝없음 자체를 즐기는 화가라고 할 수 있다.

    전시제목As You Can See

    전시기간2018.12.05(수) - 2018.12.10(월)

    참여작가 이지수

    관람시간10:00am -07:00pm

    휴관일없음

    장르회화

    관람료없음

    장소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1-1 (관훈동, 인사가나아트센터) 2층 전시실)

    연락처02-73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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