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미나미카와 & 네이슨 힐든

2019.01.31 ▶ 2019.03.10

갤러리 학고재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89길 41 (청담동) B1 학고재 청담

Homepage Map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 아이콘
  • 작품 썸네일

    네이슨 힐든

    무제 Untitled 2018, 알루미늄에 아크릴릭 Acrylic on aluminum, 104x85.7cm

  • 작품 썸네일

    네이슨 힐든

    무제 Untitled 2018, 알루미늄에 아크릴릭 Acrylic on aluminum, 104x85.7cm

  • 작품 썸네일

    네이슨 힐든

    무제 Untitled 2019, 알루미늄에 아크릴릭 Acrylic on aluminum, 78.4x64.4cm

  • 작품 썸네일

    시몬 미나미카와

    팩트체크 Fact Check 2017,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130.5x194cm

  • 작품 썸네일

    시몬 미나미카와

    세 개의 스핑크스, Three Sphinx 2017,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145.5x112cm

  • 작품 썸네일

    시몬 미나미카와

    녹색 배경 (고양이 오브젝트) Green ground (Cat Object) 2018,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27.5x41cm

  • Press Release

    우리를 둘러싼 동시대 풍경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오늘날의 미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일까. 학고재는 미나미카와 시몬과 네이슨 힐든이 각자의 관점으로 포착하고 사유한 현대의 모습을 한자리에 모아 오늘날의 풍경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고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려 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두 작가는 각각 작가의 주변 환경과 이미지에 집중했다. 미나미카와 시몬은 외부에서 접하는 끝없는 이미지를 포착하고 재현하며, 네이슨 힐든은 이미지의 생산과정에 주목했다는 데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인다.

    1.미나미카와 시몬: 스펙터클 사회의 인상주의 회화

    도쿄에서 태어나 뉴욕과 베를린 등 국제적인 대도시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는 미나미카와는 동시대의 산책자(flâneur)다. 그는 오늘날 대도시에서 범람하는 이미지의 재현과 그 표현에 작업의 뿌리를 둔다. 그는 대도시의 파사드(façade)와 그리고 대중문화 속 무한하게 이어지는 이미지의 파노라마의 찰나를 선택해 맥락을 해체하고 이를 빠르고 감각적인 필치의 회화로 풀어낸다.
    미나미카와의 회화는 범람하는 이미지의 포착과 차용, 작가의 선택적 생략과 추상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대도시의 화려한 상점가들, 상품,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서로 간의 단절된 관계에 관심을 가졌다. 그의 작업 속 차용된 이미지들은 우리를 매일 스쳐 지나가는 무한한 파노라마의 정지 화면과도 같다. 대도시에는 의미가 퇴색된 이미지의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든다. 오늘날 이 이미지의 범람 속에서 어느 특정한 개별적인 대상과 긴밀한 관계를 맺거나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들은 우리와 단절된 채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그 잔상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부유할 뿐이다. 그의 작품들은 마치 해당 이미지가 우리 곁에 머물러 있는 그 잠깐의 순간에 속기로 받아쓴 것과 같이 서둘러 그려져 있다. 그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미지에 주목해 한순간을 포착해 그려낸다. 그중 일부는 미처 칠할 틈조차 없었다는 듯 캔버스의 맨살이 그대로 드러나 있기도 한다. 미나미카와의 회화는 마치 스펙터클의 한순간을 포착한 인상주의 회화와도 같다.
    미나미카와는 트렌디한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처럼 보이기도 하고, 추상표현주의 회화를 상기시키기도 한다. 그는 최근 마치 머릿속에 압축된 이미지를 잠깐의 시간 동안 크로키한 것과 같은 빠른 필치가 두드러지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를 통해 이미지의 재현보다 그 표현을 강조하며 점차 추상 표현주의에 가까운 형식을 보이고 있다. 본 전시는 미나미카와 시몬이 최근 3년간의 뉴욕 생활을 통해 발견한 새로운 이미지가 담긴 신작을 만나는 기회가 될 것이다.

    2.네이슨 힐든: 대량생산사회의 예술작품

    외부에서 접하는 이미지의 파노라마를 작업의 주요 소재로 삼는 미나미카와와 달리, 네이슨 힐든은 작업실 내부의 가장 사소한 사건에 집중해 이를 구조적이면서도 직관적인 방식으로 접근한다. 미나미카와가 대도시를 산책하는 사이 네이슨 힐든은 작업실 속에서 은둔한다. 그의 작품 속 이미지들은 재현이나 표현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오히려 작업 과정의 흔적에 가깝다.
    힐든은 작업 과정 자체를 작업의 주요 주제로 삼는다. 이는 이미지의 재현이 아닌 생산의 과정이다. 그는 작업 과정에 분업이나 대량 생산과 같은 산업 사회의 전형적인 특성을 끌어들인다. 예를 들어, 겹쳐 쌓은 캔버스에 스프레이로 페인트를 뿌림으로써 한 작품의 흔적이 다른 작품에 반영되게 하기도 한다. 또, 작업의 일부 과정을 전문가에게 위임한다. 그러나 작업을 할 때 콜라주와 판화, 회화적 요소를 가미하는 등 작가의 저자성을 부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작가는 “나는 사물에 구조적인 방식으로 접근한다. (작업을 할 때에) 한 캔버스 위에 다른 캔버스를 놓고 한 면씩 스프레이를 뿌린다. 그러나 결국 주관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때가 온다. 이를테면 색의 선택이 그러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구조적인 접근과 직관적인 방식의 균형을 통해 작업을 하는 그는 미니멀리즘 미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처럼 보인다. 그의 알루미늄판위에 그린 회화 작업은 고도의 기술 발달로 예술의 공예적 특징이 사라져 가는 오늘날 제품 생산과 예술 작업 간의 차이에 대해 질문한다. 또, 작가의 다른 작품의 흔적이 보이는 여러 작품들이 ‘연작’인지, 혹은 ‘연쇄적’ 작품인지에 대한 의문도 불러일으킨다. 학고재청담은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의 특징이 가장 잘 반영된 근작 5점과, 알루미늄 캔버스를 겹쳐서 가운데 부분을 잘라낸 최신작 두 점을 엄선했다.

    《시몬 미나미카와 & 네이슨 힐든》은 외부의 이미지의 범람을 포착하는 작가와 내부의 작업 과정에 집중하는 두 작가를 한곳에서 살펴보는 자리다. 미나미카와는 대중 매체를 타고 폭발적으로 흐르는 이미지의 파노라마를 회화의 방식으로 붙들려 한다. 그는 우리와 단절된 이 이미지의 폭발적인 흐름 중 일부에 주목해 이를 화폭으로 옮김으로써 자연을 가장 객관적으로 관찰해 캔버스에 붙들려 했던 인상주의 화파와 비슷한 시도를 한다. 반면, 힐든은 캔버스에서 대상을 걷어내고 작업 과정을 투명하게 반영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다른 사람에게 과정을 일부 위임하고 한 작업의 아우트라인이 다른 작업에서 보이게 하는 그의 독특한 작업 방식은 산업 혁명 이후 근대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인 분업과 대량생산 과정과 닮아 있다. 미나미카와는 감각적인 접근 방식이, 힐든은 구조적이고 직관적인 접근 방식의 균형이 돋보인다.
    학고재는 오늘날의 풍경을 포착하는 미나미카와와 오늘날의 사회적 특징을 반영하는 작업을 하는 힐든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 두 작가의 작품을 교차 배치함으로써 현대 미술의 다양한 성격과 가능성을 드러내고, 두 작가 간의 대화를 이끌어내려고 한다. 나아가, 기술이 극도로 발달한 오늘날 미술에 있어서 회화가 차지하는 위상을 재점검하고, 그것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자리를 가져보려 한다.


    시간의 창, 제 1장: 미나미카와 시몬의 회화
    우에사키 센(Sen Uesaki)

    “「웨이팅 그라운드(The Waiting Grounds)」는 외계 행성을 배경으로 한
    나의 몇 안 되는 글 중 하나다. 태양계에 있는 우리가 사실상 생명을 다한
    우주에 마지막으로 도착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순환적 관점으로
    보더라도 우리가 파티에 마지막으로 도착한 손님인지, 혹은 다음 파티의
    첫 손님이 될지 결정하기 어려울 수 있음에도 항상 나를 매혹시켰다.”
    - J. G. 밸러드 (J. G. Ballard) (1977)

    나는 작가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그의 작업실에 여러 번 방문했다. 그러나 벽에 기대어 둔 캔버스들은 항상 이미 완성되어 있거나 아직 칠을 시작하지 않은 상태였다. 미나미카와 시몬은 너무 늦게 찾아온 것일까, 아니면 너무 일찍 온 것일까? 나는 알 수 없었다. 이러한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너무 늦은 것인지, 혹은 너무 이른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우선, 나는 작가에게 있어 ‘제시간에’ 존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나는 여전히, 또는 더 이상, 누락을 결정하는 양극의 사이를 알 수 없다. 그것은 ‘너무 늦게 존재하는 것’과 ‘너무 일찍 존재하는 것’의 사이이다. 사실 지금은 빙하시대라고 한다. 회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우리의 시대, 즉 지난 4천만 년간 지속되어 온 것으로 추정되는 빙하시대에 관해 인정받고 있는 학설이다. 1만 년 전에 끝난 것은 빙하시대 그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사실상 정확한 온도 범위가 없는 ‘빙하시대’ 내의 상대적으로 추운 ‘빙’기에 가까운 듯하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란 이미 지나갔으며 다음 것이 찾아온다는 빙기 사이의 상대적으로 따뜻한 ‘간빙기’라는 것이다. 이 이론은 마치 내가 두꺼운 얼음판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 이는 아마도 내가 이번 빙하시대에서 돌고 도는 빙기 사이에 살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회화사에서 작가의 위치를 묻는 가식적이고 진부한 질문(갑절로 늦은)으로 미나미카와의 작품에 접근하는 것은 결코 나의 의도가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그의 작업 주제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을 하려고 하거나, 그의 작품 속 구성 요소들을 보다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그의 말을 신중하게 인용하거나, 소위 형식적 분석이라는 것을 시도함으로써 얼버무리거나, ‘... 로서의 회화’와 같은 바보 같은 문구를 통해 구성과 엮이기를 거부하면서도 작품으로부터 의미/가치를 훔치려고 하거나. 즉, 그러한 글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고 결정한 순간, 미나미카와에 대한 나의 생각은 극도로 애매한 시간대로 진입했다.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일본어로는 동음이의어인 ‘타소카레(黃昏, 황혼/그는 누구인가?’)나 ‘카와타레(彼者誰, 어슴새벽/누구인가, 그는?)’와 같이, 낮도 밤도 아닌 황혼의 때. 즉, 밤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낮을 기다리는 사람 모두를 위한 여기도 저기도 아닌 때.

    ‘어쩌면 회화 또한 어느 순간에서부터 이 시간대에서 멈춰버렸을 것이다’. 이미 오랫동안 그래왔으며, 앞으로도 한동안 그럴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회화 예술로 생긴 이 시간대 정체와 회화의 장르로 인해 발생한 이 시간대의 연장은 늦어도 미니멀리즘의 발생과, 소위 미니멀 아트를 구성하는 작품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미니멀’이라고 묘사되었던 1960년대의 회화를 거의 완전히 무시했던 당대의 비평과 저널리즘과 함께 시작되었다. ‘미니멀’이라고 불리는 것과 미니멀 아트. 회화, 그리고 회화가 아닌 예술. 이 전혀 어렵지 않은 구별이 왜 아직 지어지지 않았으며 아직도 혼동을 불러일으키는지에 대해 여기서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다. 어쨌거나, 미술사가들과 자칭 ‘미니멀리스트’ 회화가들과 같은 사람들의 분노를 풀어주는 이 깨달음은 미나미카와와 함께한 회화의 장르와 그것의 예술 속 진부함에 관한 대화에서 비롯되었다. 실제로, 미나미카와는 회화의 진부함이 그가 작업하는 동기 중 하나라고 말한다.

    미나미카와가 소설가 J. G. 발라드(J. G. Ballard, 1930-2009)의 단편 「웨이팅 그라운드(The Waiting Grounds)」(1959)를 통해 이야기했던, 시간의 창(time windows)에 대한 비유를 통해 자신의 작업에 대한 생각을 피력했음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두 지질학자의 흔적을 찾으며 현장을 돌아다녔다. 한쪽에 찌그러진 캔이 가득 놓인 테이블은 녹색 페인트에 기포와 긁힌 자국이 있었다. 나는 뒤집어 보고, 서랍을 빼서 새카맣게 탄 공책과 수화기가 녹아서 받침대에 붙어버린 전화기를 발견했다.” 주인공 케인(Quaine)은 ‘전임자’ 탈리스(Tallis)가 일 년 전에 남긴 흔적을 따라가다가 지질학자들의 야영지를 찾았다. 말할 것도 없이, "탈리스는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전임자’가 그의 일을 후임에게 인계할 때에는 비밀이 지켜져야 한다. 주인공이 지질학자들로 추정되는 베일에 싸인 두 사람에 대해 아무 단서를 찾을 수 없을 때 느끼는 좌절, ‘뒤늦게 온 사람(late-comer)’를 기다리는 심리는 발라드의 캠프에 관한 모든 묘사에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웨이팅 그라운드」의 중간부에 쓰인 이 장면은 이야기의 클라이맥스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는 그저 많은 중간 장면들 중 하나일 뿐이며, 마침내 ‘늦게 온 사람’이 갑자기 다음에 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의 정체에 대해 추측한다(주인공의 마음이 ‘대지’와 하나가 되기 전까지). 다른 모든 중간 장면들과 같이, 이 장면은 「웨이팅 그라운드」의 서사 구조 전체와 닮아 있으며, 이 유사성은 각각의 미나미카와의 회화가 그의 전체 작업과 가지는 관계와도 같다.

    도쿄 스테이션 갤러리의 큐레이터 하지메 나리아이는 미나미카와의 회화가 "자유롭거나 게으른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붓질과 선들. 직관과 미완성 사이의 차이를 흐리는 노출된 캔버스와 희미한 색채"에 의해 특정 지어진다고 말했다. 하지메는 미나미카와의 작업이 회화에 있어 균형과 완성도가 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일까? 아니다. 그는 자신이 말하는 같은 묘사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모든 인상인 ‘자유’와 ‘게으름’ 그리고 ‘미숙함’과 ‘불완전성’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이들은 미나미카와의 작품에서 구분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작가의 의도에 대해 추측하는 것을 꺼리는 하지메의 글은 그림을 의인화하지도, 자신의 감성에 대한 ‘묘사’도 아니다. 대신, 그것은 그러한 분석에 대해 글로 저항하는 수행적인 반응이며, 그런 표현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래서 하지메는 미나미카와의 작업에 대해 ‘목소리 훈련’이라고 비유한다. "이는 공연을 적절히 끊는 휴식과 쾌감이다" 하지메의 이 표현이 비록 작가를 불편하게 만들더라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리허설’의 목적은 더 나은 공연에 있지만, 그 향상의 정도는 ‘쇼타임’ 전까지 알 방도가 없다. 이러한 평범한 가정을 바탕으로, 하지메는 미나미카와의 감상자들이 예정된 ‘쇼타임’을 미루고 때맞춘 클라이맥스를 누락시킨 작업에 관한 예술을 고찰하도록 이끈다.

    미나미카와의 회화는 분명, 내가 지금 그렇게 남겨두고 싶은 방식대로 오랫동안 알고 있던 바와 같이 ‘쇼타임’의 허식 바깥으로 튕겨나간 문제들을 주요시하고 확대한다. 이것은 관람자들이 미나미카와의 그림에서 현저하게 씻긴 사물의 흔적을 눈치챌 때 확실히 알아보는 것이다.

    2017년 9월 (다음에 계속)

    저자 노트: 위의 인용은 J. G. 발라드가 잡지 『뉴 월드(New Worlds)』 1959년 11월 호에 투고한 「웨이팅 그라운드」에서 가져온 것이다. 비문은 발라드의 『발라드가 쓴 베스트 공상과학소설』(1977, 퓨추라 출판사, p.54)에 다시 출판한 글에서 따왔다. 하지메가 미나미카와에 대해 한 언급은 전시 도록 『이뎀 패리스 동시대 작가 20인의 목소리: 몽파르나스의 어느 리소그래피 작업실』(도쿄 스테이션 갤러리, 2015)에 실렸다. 나의 글을 읽어본 미나미카와는 내게 "이것은 꼭 월병(月餠) 같은 글이군요"라고 했다. 이는 분명 최고의 찬사로 여겨졌으나, 나는 갑자기 미나미카와가 아직까지 월병을 그린 적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네이슨 힐든, 당분간 계속
    스튜어트 먼로(Stuart Munroe)

    벨기에에 위치한 SONS?(The Shoes Or No Shoes?) 뮤지엄은 다양한 종류의 신발을 수집한다. 네이슨 힐든은 SONS? 뮤지엄에 자신의 스니커즈를 기부할 생각을 해왔다. SONS? 뮤지엄의 컬렉션은 전통적인 신발부터 연예인이 신던 신발까지를 아우르는 방대한 발의 역사로, 여기에는 글과 그림, 그리고 디자이너, 음악가, 그리고 작가 등으로부터의 기증이 포함된다. 미국의 배우 겸 가수 라이자 미넬리(Liza Minnelli, b.1946)가 신던 펌프스와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1958-2009)이 신던 모카신이 있다. 부탄의 남성용 부츠 초글램(Tshoglam) 한 켤레와 미얀마의 한 도시 랑군(Rangoon, 오늘날의 양곤, Yangon)의 어린이용 슬리퍼, 남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온 부시먼족의 샌들, 그리고 부담스러운 여성용 샌들 쿱캅(Kub Kab) 한 켤레, 아프리카의 동쪽 국가인 지부티(Djibouti)에서 온 나무를 깎아 만든 샌들이 있다.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의 조각가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 b.1929)가 신던 신발도 있다. 물감으로 얼룩진 올덴버그의 더비 슈즈는 작가가 직접 신던 것처럼 보이지만 확실히 알 수는 없다. 이 부분은 추측에 맡겨야 한다.

    힐든은 작업실에서 신는 신발을 기증하는 것을 고민했지만, 그 결과로 작업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새 신발을 길들여야 할 텐데, 그러나 그렇게 되면 작업 방식도 다시 길들일 필요가 있을까? 매일 똑같은 신발을 신고 다니는 것에는 어떤 평온함이 있다. 그의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작업실에서는 제작하는 것, 혹은 보다 중요하게는 모든 ‘행위’가 작업이 된다. 어쩌면 신발을 기증하는 것은 그다지 나쁜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럼으로써 알맞은 새 신발의 필요에 따라 하나의 작업 방식을 내려놓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과정과 발견에 대한 질문이다.

    최근 도쿄의 미사코 & 로젠에서 진행했던 《당분간 계속(For Now and So)》은 이것의 전형적인 예다.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지속적인 과정이 회화에 반영된다. 기계적 생산의 측면과 팩시밀리가 이미지들이 만들어지는 대로 부서뜨리는 것처럼, 하나의 흔적은 다른 흔적으로 이어진다. 모두 '무제'로 명명된 최근의 몇몇 작품은 진정으로 끝나고 완성된 이미지들의 ‘실패’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포함되어 있다. 이 전시에는 다섯 점의 알루미늄판위에 그린 아크릴 회화, 겹쳐진 사진 실크스크린과 알루미늄판위의 스텐실 작업, 그리고 녹색에서 구릿빛으로 급격하게 색이 바뀌는 붓 자국이 지나간 오래된 신문 모음을 붙인 여섯 점의 작은 회화 콜라주가 포함되었다. 이 콜라주들은 다른 작품들과 차이점을 보이지만 작업실에 놓여있는 재료로 만들어진 듯, 형식과 과정에 대한 연구인 것처럼 과거의 워크북을 참고해 나머지 작품들과 연결성을 띄기도 한다. 이 작업들은 짧은 글에 담겼고, 나중에 이를 다듬어 ‘시간’과 ‘존재’, 그리고 같은 작업 공간에 반복해서 방문하는 행위에 대해 강조하는 전시 제목 ‘당분간 계속’이 되었다. 작업에 대한 고민은 작업실에서의 과정과 작업 방식 때문에 더 많은 일을 만드는 듯하다. 작업실은 작업의 주제가 탄생하는 곳이다. 작업실 바닥에 놓여 있던 물건들은 촬영되어 회화 속 요소가 된다. 이미지들은 과정을 거쳐 프린트되고, 잘리고, 스프레이가 뿌려진다. 작업실이 주제라면 회화는 도구다.

    힐든이 작업실에서 ‘현재를 시작하는’것은 물성 다루기와 관련이 있다. 미국의 추상화가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 b.1936)의 선언 “네가 보는 것이 곧 네가 보는 것이다”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그것은 물성의 현전(現前)을 가리키며, 또한 감각적 물성이 존재를 촉발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는 제작의 결과로 존재하는 작품들로 인해 더욱 힘을 얻는다. 미국의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인 마이크 켈리(Mike Kelly, b.1954)가 말했듯, "대량 생산된 대상을 그 '훼손되지 않은' 특징 덕에 완벽한 대상으로" 본다는 것은 완성된 ‘완벽한’ 대상이나 이미지로 마무리하는 데 있어 무엇이 필요한지를 배제한 일부 이야기일 뿐이다. 완벽한 대량생산된 물건과 그것의 필연적인 ‘실패’의 간극은 만들어진, 혹은 실제로 생산된 거의 모든 것들에서 나타난다. 힐든의 작업에서 보이는 잘라낸 자국, 여러 번 겹쳐 프린트된 모습, 씻어내리는 듯한 큰 붓 자국들은 스텔라의 선언과 켈리의 추상적 표현 모두를 자신만의 유머감각으로 풀어낸다. 그의 작업과정은 여러 번 반복된다. 알루미늄 시트와 콜라주에서 유머감각이 엿보인다. 은유적이고 직접적인 정교함이란 미술작품이 언제나 외견상 수작업과 정교한 생산 사이에서 불안하게 흔들린다는 것을 뜻한다. 저자성(큰 붓 터치)과 생산성(정교한 판화 작업, 가공된 알루미늄)의 오프셋 판화 작업은 작가의 몇몇 전작들이 특정한 프린트 방식과 마감을 위해 외부에 맡겨졌을 때 작품들이 작가의 손길을 거치지 않고, 별다른 특징 없이 작업된 것처럼 보이기 위함이다. 작가에게 있어 작품을 작업실로 가져와 다시 작업한다는 것은 그것이 대개 작업실에서만 할 수 있는 일부 재작업이거나, 아니면 작가가 직접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작업은 다른 작업에 영향을 미친다. 큰 붓 자국이 있는 다섯 점의 회화에는 다른 작품의 외곽선을 따라 뿌려진 스프레이 자국이 있다. 이 추상적이고 형체 없는 콜라주 모음은 일종의 규격이자 스프레이가 뿌려질 지점 역할을 하는, 작업실 바닥에 흩어진 종이와 만나 금속 위의 그래픽 성좌로서의 추상적 제스처를 가리킨다. 자신감 넘치는 작품들은 때때로 불안해 보이기도 하며, 작품 속 어색한 희극적인 면모는 원래 희극이 그러하듯,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에 의지하고 있다. 풍자가 그렇듯 회화는 일상 속에서 무작위로 중요한 점을 이끌어내는데, 이는 마치 작가 마이클 스미스(Michael Smith, b.1951)가 1986년 ‘사진의 세계(The World of Photography, 1986)’ 프로그램에서 연기한 캐릭터 마이크(Mike)가 이유도 모른 채 자신이 ‘사진에 소질이 있는지’ 고민함으로써 결핍을 표현한 방식과 비슷하다. 힐든의 회화는 마치 영상 속에 등장하는 마이크의 사진 현상소와 같이, 대개 배제되어 온 것들을 가장 중요하게 다룬다. 이 희극적 단면은 가장 단순하고 솔직한 것을 놀랍다 못해 거의 신화적인 기준으로 과장하는 데서 나온다. 이는 작품이 전시에 걸리는 방식까지 이어져, 일부 작품이 시야에서 벗어난다 할지라도 공간의 비율을 있는 그대로 취한다. 《당분간 계속》은 헛됨과 그 실패의 원인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은 각각의 재배열된 캔버스와 자유로운 붓 터치 속에 나름의 유머감각을 감추고 있다. 힐든의 작업방식이 어떻든 간에, 이 제목 없는 회화들의 모호하고 불특정한 특징은 힐든이 SONS?에 신발을 기증하게 된다 할지라도 잘 어우러졌을 것이다.

    『무스(Mousse)』 (2018년 6월 20일)

    전시제목시몬 미나미카와 & 네이슨 힐든

    전시기간2019.01.31(목) - 2019.03.10(일)

    참여작가 시몬 미나미카와, 네이슨 힐든

    관람시간10:00am - 06:00pm

    휴관일매주 월요일 휴관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갤러리 학고재 Gallery Hakgojae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89길 41 (청담동) B1 학고재 청담)

    연락처02-3448-4575

  • Artists in This Show

갤러리 학고재(Gallery Hakgojae) Shows on Mu:umView All

  • 작품 썸네일

    윤석구ᆞ윤석남 2인전: 뉴 라이프

    갤러리 학고재

    2024.04.26 ~ 2024.05.25

  • 작품 썸네일

    함(咸): Sentient Beings

    갤러리 학고재

    2024.03.13 ~ 2024.04.20

  • 작품 썸네일

    장재민: 라인 앤 스모크

    갤러리 학고재

    2024.01.31 ~ 2024.03.02

  • 작품 썸네일

    김영헌: 프리퀀시 Frequency

    갤러리 학고재

    2023.12.20 ~ 2024.01.20

Current Shows

  • 작품 썸네일

    박미나: 검은

    페리지갤러리

    2024.03.08 ~ 2024.04.27

  • 작품 썸네일

    (no-reply) 회신을 원하지 않음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2024.03.16 ~ 2024.04.27

  • 작품 썸네일

    봄 • 봄 ( Spring • See )

    갤러리 나우

    2024.04.16 ~ 2024.04.27

  • 작품 썸네일

    윤정미: 사진으로 읽는 인천 근현대 소설전

    한국근대문학관

    2023.11.24 ~ 2024.04.28

  • 작품 썸네일

    지역 근현대 미술전 : 바다는 잘 있습니다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2023.12.12 ~ 2024.04.28

  • 작품 썸네일

    «가장 깊은 것은 피부다», «4도씨»

    세화미술관

    2024.01.30 ~ 2024.04.28

  • 작품 썸네일

    박지수: 빛 나는 그늘 Shining Shade

    갤러리 도올

    2024.04.12 ~ 2024.04.28

  • 작품 썸네일

    김윤신 《Kim Yun Shin》

    국제갤러리

    2024.03.19 ~ 2024.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