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룡 회고전: 창작과 싫증

2023.03.23 ▶ 2023.04.23

가나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평창30길 28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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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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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천룡

    Cellist 1963, Oil on canvas, 146 x 113cm, 57.5 x 44.5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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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천룡

    Opus 16 1966, Oil on canvas, 150 x 150cm, 59.1 x 59.1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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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천룡

    Greenhouse and Garden 1994, Oil on canvas, 130 x 324cm, 51.2 x 127.6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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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천룡

    Composition 2015, Oil on canvas, 81 x 100cm, 31.9 x 39.4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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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천룡

    Hand in Hand 2007, Oil on canvas, 116 x 89 cm, 45.6 x 35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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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천룡

    Embrace 2016, Oil on canvasm, 54 x 65 cm, 21.3 x 25.6 in

  • Press Release

    파리의 화가 오천룡, 평면 위를 놀다

    홍현아(조형예술학 박사)

    땅을 다지다
    오천룡의 진지한 태도는 창작의 시작인 캔버스 만들기부터 하루의 일을 정리하는 붓세척까지 일관되게 나타난다. 작업의 모든 과정은 지켜야 할 규칙과 표현의 자유로움을 줄타기하며 진전된다. 화가는 중세 수도사처럼 보이지 않는 곳부터 정성을 다하여 캔버스를 짜고, 바닥 작업을 한다. 뼈대를 만들고 살을 입힌다. 나무틀에 천을 고정하고, 아교와 카세인, 젯소를 입히는 이 번거로운 일이 그에겐 작업의 출발이다. 천에 그림이라는 목적을 부여하는 이 바닥 만드는 일은 반복적인 단순노동으로 이루어진다. 풀을 먹이고 스며들고 마르면 다시 바른다. 밑칠의 횟수만큼 건조시간은 길어진다. 하얀 캔버스와 마주한 그 기다림의 시간은 새 작업에 대한 기대와 고민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모든 화가에게 숙명적으로 평생 따라다니는 이 질문이 오 화백에게는 바닥 작업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떤 선과 색을 담아도 다 받아줄 수 있는 단단한 바닥, 완성되는 순간까지 화가의 모든 궤적을 담을 이 사각형의 공간은 그야말로 작품의 기본이 된다. 평면을 마주하는 일에 기본에 충실할 것.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현대미술에서는 고리타분하게 들릴 수 있는 이 말이 그에겐 창작을 이어가는 원동력이다.

    그림을 일구다
    오랜 가뭄 속 단비처럼 씨실과 날실에 아교풀과 석회물이 차례로 스며들며 대리석 같은 단단한 화면이 완성된다. 그 곳엔 화가가 거닐고 쉬던 풍경과 그가 만난 많은 사람들이 선과 색으로 춤을 추게 된다. 1971년 도불 이후, 오천룡은 이전의 추상화 작업을 중단하고 구상화의 세계에 들어선다. 새로운 환경에서 스스로를 미술을 처음 시작하는 초심자로 돌려놓는다. 나는 왜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동시대의 흐름이나 유행하는 화풍 너머로 평면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에 마주하기로 한다. 작품의 제목부터 서정적 추상화 시절의 ‘Opus’1,2,3 같은 관념적인 것이 아닌, ‘과들루프 여인’, ‘남자와 악기’, ‘등을 보인 누드모델’처럼 분명하고 친절한 제목으로 바뀐다. 오천룡은 아카데미 그랑드 쇼미에르와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인물화 중심의 수업에 흥미를 느끼며 그만의 회화 세계를 열기 시작한다. 이 시기 그간 사용해온 화려한 색채들이 점차 사라지며 6년간 무채색조의 그림을 그린다. 거창한 수식어들을 밀어내고 잘라내며 최후의 순간까지 지켜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는 자유로운 색채사용이 혼란의 요소라 여기고, 색을 자제하며 화면 안의 구성에 집중한다. 선과 색의 관계나 면의 분할처럼, 그림에서 드러난 것과 감춰진 것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운용한다. 이런 회화의 기본요소에 대한 연구는 화가가 선택한 유화라는 재료와 만나 더 큰 성과를 얻게 된다. 이전부터 유화를 주로 제작하여 왔지만, 무채색 시기의 유화는 앞으로의 작업에 초석이 되어준다. 일찍이 카라바조와 렘브란트의 작품처럼 명암대비가 강렬한 그림에 매력을 느껴왔던 화가는 빛이 주는 미묘한 변화들을 투명하면서도 견고한 유화로 표현한다. 유화 물감층이 중복되며 이루어지는 다양한 색 변화, 형태를 벗어난 색면과 윤곽선은 이 무채색 사용 시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꿈을 새기다 : Ô Line
    무채색 (couleur achromatique) 계열의 작업은 이후 회화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지속적으로 야기한다. 오천룡은 그가 새 터전으로 삼은 프랑스 파리에서 서구 유럽의 미술, 서양화를 제대로 공부하기로 한다. 인쇄된 화보 속의 그림이 아닌, 파리의 미술관과 갤러리에 걸린 명화들을 직접 보며 선배 화가들의 그림을 연구한다. 그러던 중, 대가들의 그림에서 형태를 결정짓는 윤곽선이 작가만의 고유한 표현을 이끌어내는 동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때부터 형상과 배경을 나누고, 안과 밖을 창조하는 선(線)에 대한 연구에 천착하며 결국 자신만의 선을 만든다.
    본인의 성을 따라 오라인(Ô Line)이라고 이름 지은 이 선은 흰색의 선 안에 검정색 선을 한 번 더 입힌 독특한 형태이다. 흰색 두 줄과 흑색 한 줄로 이루어진 세 겹의 선이 결국 하나의 선의 되는 것이다. 오라인은 기존 선의 의미를 벗어난 하나의 형태가 되는데, 검은색 선에 의해 고정된 흰색 선은 형상과 배경의 충돌을 완화해주며 동시에 그 둘의 차이를 극명히 드러낸다. 고려청자의 상감기법을 떠올리게 하는 오라인은 나이프로 다듬은 건조한 바닥화면 위를 대담하고도 힘차게 가른다. 거친 화면을 긁으며 새겨진 선에서는 바삐 움직이는 나이프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단호하면서도 자유로운 오라인은 화면을 나누고 색을 가둔다. 그간 무채색 작업으로 절제되었던 색이 오라인과 함께 다시 등장한다. 오라인이 계획하고 지시한 공간에 색은 안주한다. 색은 종속된 공간 안에서 열심히 숨을 불어넣으며 제 역할을 다한다. 이때 색면은 울림을 낳을 뿐 선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선과 색과 면이 한 화면 안에서 각각 공존의 방법을 찾는다. 선이자 동시에 면인 오라인은 기꺼이 그림에 튼튼한 골격이 되어주고 색을 보호해준다. 화면을 구성하는 이 방법은 우리에게 프랑스의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한다.
    프랑스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그림을 그리며, 오천룡의 선, 오라인은 그가 의도했든 아니든 자연스럽게 프랑스 미술을 비추고 있다. 스테인드글라스의 색유리를 이어주는 검은 선, 유선칠보(에마유, Émail cloisonné)의 색채 유약과 금속 선 그리고 퐁 타방파(Pont-Aven)와 나비파(Nabis) 화가들의 굵은 윤곽선이 그것이다. 프랑스 미술의 이 선(線)들은 원근감이나 입체감 같은 회화의 눈속임 효과를 배척하며 화면을 철저히 2차원 평면으로 만든다.
    (중략) 오라인이 그려 놓은 파리지앵의 일상은 자유롭지만 즉흥적이지는 않다. 캔버스 바닥 천을 다듬는 일부터 시작하는 오화백은 그가 펼칠 세상을 미리 치밀하게 계획한다. 색면 간의 크기와 위치를 계산하고 선의 과장할 부분과 절제할 부분을 정하며, 그림은 그가 정한 규칙 위에서 진행된다. 흰 바탕의 캔버스는 거울처럼 색면 조각들을 비추고 현실 세계와 꿈꾸는 세계를 이어준다. 세 겹의 선으로 확실하게 고정된 차갑고 단단한 색면들은 서로를 침범하지 않으며 있어야 할 곳에 있다. 기하학적인 선들과 화사하고 맑은 원색들이 화폭 안에서 상하좌우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고전적 면모를 감추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상이 경직되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희의 유머러스한 포즈나 인물크기 만한 꽃잎과 잎사귀 등 예술가의 상상력이 이끌어낸 고유한 형식미 때문일 것이다.

    색, 공간을 울리다 : 나뭇잎 연작
    실내풍경화와 인물화뿐만 아니라 90년대 중반부터 오천룡은 나뭇잎 그리는 작업을 시작한다. 오라인과 색면으로 이루어진 일련의 작업들은 작가를 색에 대한 고민에 들게 한다. 그는 앙리 마티스가 남긴 색상의 절대적 가치에 대한 연구에 깊이 공감하며, 색상과 형태의 관계에 대해 집중한다. ‘나뭇잎 연작’들은 대다수가 대형 캔버스에 제작되었고, 커다란 흰색 바탕 위에 형형색색의 나뭇잎들이 포개짐 없이 일정한 간격으로 그려져 있다. 이 작업은 화면 전체를 보아야 그 진가를 알게 된다. 커다란 화폭과 마주한 순간, 각양각색의 나무 잎사귀들이 만들어내는 운동감과 공간이 보인다. 반달이나 송편, 아라베스크 문양 같기도 한 이파리들이 진공의 공간에 부유하고 있다. 오라인으로 분리된 각각의 개체들은 우주의 작은 입자가 되어 무한의 공간에서 운동감을 만들어낸다. 일찍이 마티스는 그림에서 색이 작용하는 방식에 주목했다.
    ‘내가 모든 색조에서 찾아낸 관계는 색들의 살아있는 조화, 음악을 작곡할 때의 그런 조화를 낳아야 한다...다양한 색조는 서로를 악화시킨다. 내가 바른 이런저런 색들이 서로를 파괴하지 않도록 조화를 이루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여러 번 수정을 거쳐 그림이 완전히 바뀐 것처럼 보일 때까지 나는 그림을 계속 고쳐야 한다.’
    마티스는 고유색의 가치가 그림 안에서 제대로 발현되려면, 그 색상과 이웃하는 색상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었다. 오천룡은 이 선배 화가의 방법대로, 과학적 색이론을 따르기 보다는 관찰과 감각, 체험을 통해 색을 선택한다. 흰색 공간 위에 흰색 잎, 강렬한 자줏빛 이파리 옆에 희미한 연노란색 이파리, 밝은 하늘색 잎 옆에 짙푸른 색의 잎... 나뭇잎들은 제 모양과 색을 바꿔가며 보는 이의 시선을 부단히 움직이게 한다. 낙엽이 곱게 지는 가을날, 숲길을 걸으며 만나는 단풍 비처럼 오천룡의 잎들은 우리를 선과 색이 춤추는 공간으로 안내한다. 같은 패턴의 형상들이지만 들여다보면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고, 각각의 형상은 그가 소유한 색으로 서로 다른 에너지를 뿜어낸다. 개성이 가득한 오천룡의 잎사귀는 우리 인간들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자아처럼, 커다란 이파리는 작은 이파리로 인해 부각되고 화려한 원색의 잎은 주변의 묵묵한 무채색의 잎에 의해 움직인다. 잎맥을 따라 완벽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는 이파리들은 우리네 인간처럼 그 자체로 충분한 하나의 우주이기도 한다. 8년이라는 긴 시간, 화가의 끈질긴 노력으로 만들어진 나뭇잎 연작은 간결한 형태와 화려한 색채들이 경쾌하게 조화를 이루는 조형교본과도 같다.

    경계를 넘다 : 서예풍 풍경화
    선과 색이라는 회화의 기본요소에 대한 연구로 점철되어온 오천룡의 작업은 그의 학구적인 면모와 작가적 고집을 보여준다. 프랑스에 도착한 후, 그가 이전의 작업방식과는 결별하고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임했던 것은 ‘제대로’ 일을 해보겠다는 결의였다. 그는 언제나 그림에 진심이었다. 미술사와 미술재료에 대한 공부로 자신을 갈고 닦으며, 화려한 테크닉으로 순간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그림보다는 단단한 바닥 만들기, 물감들의 특성에 대한 이해나 형과 색의 관계처럼, 회화의 본질에 대한 추구가 우선이었다. 그렇게 삼십여 년 열심히 달려온 화가는 나뭇잎 연작 후, 1년 동안 작업을 중단한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화단의 반응과 대중의 무관심이 그를 지치게 만든 것이다. 화가는 그 때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냥 쉬고 싶기만 했다. 그래서 1년간 그림을 그리지 않고 빈둥거리며 놀았다. 놀다 보니 그것은 어려웠던 작업일보다 더욱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무관심으로 인한 좌절이 그를 지치게 하였지만, 그보다 더 힘든 것은 그림을 그리지 않는 일이었다. 화가에게 작업을 중단하는 것보다 더한 고통은 없을 것이다. 그는 다시 붓을 들고 거리로 나가기 시작한다. 처음 파리에 정착해 거리 곳곳을 사생하던 행복한 시절을 떠올리며, 보이는 대로, 붓 가는 대로 자유롭게 그리기로 한다. 마치 서예가가 화선지 위에 붓을 놀리듯이, 오천룡은 파리의 골목골목을 신나게 재구성해 나아간다. 오스만대로, 퐁뇌프 다리, 에펠탑... 그는 그간의 갈증을 해소하듯 거침없이 선을 긋고 색을 입힌다. 갖고 싶던 미술재료를 처음으로 선물 받은 어린 시절의 어느 날처럼 매일매일 그릴 것이 넘쳐났고, 온전히 그림 그리는 사람, 화가로 숨 쉬는 시간들이었다. 자유롭게 그리다 보니 그간 응축 되어있던 필력이 다양한 모습으로 발화한다. 오라인의 엄격함과 분리된 색면이 점차 서로 스며들고 융화되어 꿈틀거린다. ‘마르셀-빠뇰 공원’과 ‘노트르담 성당’에서는 선과 색이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가 ‘서예풍 풍경유화’라고 칭한 2년간의 그림들은 막다른 골목에서 만난 새로운 풍경처럼, 그간의 조형적 고민을 뛰어넘는 기회가 되어준다. 빠른 붓터치의 생동하는 파리 거리와 일-드-프랑스 시골마을 풍경들은 나뭇잎 연작에서 보여주었던 팽팽한 긴장과 힘의 관계에서 잠시 벗어나 화가의 감각을 모든 통제에서 해방시키는 듯하다. 그는 이 사생 풍경화들이 구시대적인 그림 같아 공개하기가 꺼려졌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를 보고 그리는 것이 시대의 문제이겠는가. 화가는 눈으로 관찰하고 온 몸의 감각으로 그린다. 오천룡의 도시 풍경에서 우리는 그동안 그가 이해하고 체득한 회화에 대한 생각이 의도하지 않고도 무의식적으로 표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장고의 고민 끝에 색면을 배치하던 습관은 그가 빠르게 붓질을 할 때에도 화면 깊은 곳을 지탱하고 있다. 이미 체화 된 균형감, 조화, 생동감 등은 절제된 표현에서뿐만이 아니라 과장되고 복잡한 표현에서도 똑같이 드러난다. 화가는 그림으로 좌절하고 그림으로 희열감을 느낀다. 슬럼프를 뛰어 넘게 한 이 자유로운 풍경화들은 그에게는 꿀맛 같은 쉼터였고, 결국 표현방식에 또 다른 장을 열어주는 계기가 된다.

    비움으로서 채우다 : 선묘화
    지난 2년, 거리 위에 쏟아 부은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은 새로운 형식을 이끌어내는 힘이 되어준다. 그는 풍경화를 그릴 때에도 선과 색에 대한 고민을 놓은 적이 없다. 회화의 기본요소만으로 평면을 충만하게 하는 것, 오천룡은 그간 그의 머리를 떠난 적 없는 이 과제에 집중하기로 한다. 선(線), 선이다. 이제는 오라인이 전면에 나서서 색면 위를 긁고 새기고 힘차게 가른다. 빨간색, 파란색, 녹색의 색선들이 빠르게 유연함을 뽐내기도 하고, 굵고 둔탁하게 별안간 멈춰서기도 한다. 그의 작업실을 가득 채우던 음악이 그림 안으로 들어왔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이, 베토벤의 교향곡이 화면 위에서 화려한 색실로 연주된다. 실내 풍경으로, 나뭇잎으로, 여인으로 변신한 음표들은 화면을 오선지 삼아 우리의 시선을 화면 안으로 안내한다. 가볍고 경쾌하며 힘이 넘친다. 선과 색에 대한 그간의 연구가 최소한의 형태와 최소한의 색으로 집약되어 나타난 것이다. 이전의 구획된 색면들은 화면 전체가 되어버리고, 선은 색이 되고 색은 선이 되었다. 선과 색이 더 이상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형태로 융합된 것이다. 결국 명암과 양감은 종적을 감추고 색선만으로 완전한 평면이 되었다. 주관과 객관을 종합하려 한 19세기 말 종합주의(Synthétisme) 화가들이 표현하고자 한 회화를 멀리 동양, 한국에서 온 화가가 기운 생동한 필력으로 완성한 것이다. 미술의 역사에 박학다식한 화가는 많은 선배화가들을 관찰하고 연모하며 그들이 남긴 회화 언어에서 작업의 실마리를 찾아 나아갔다. 선만으로 대상을 묘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윌리암 터너와 앙리 마티스는 오천룡의 스승이었고, 발튀스, 샤갈, 세잔은 조언을 아끼지 않는 마음의 친구였다. 그들을 배우며 과장과 절제, 열정과 냉철함을 화면 안에 녹여내어, 단순하며 동시에 충만한 오천룡의 그림 세계를 펼친 것이다. 또한 그의 여유롭고 서정적 면모는 자연스럽게 고려시대 보물, 청동 은입사 물가풍경 무늬 정병(국보 92호)을 떠올리게 한다. 산들바람에 나부끼는 수양버들, 호숫가를 한가로이 노니는 오리와 그 위를 가로지르는 기러기 떼들이 은실로 그려진 정병의 무늬는 오천룡의 그림과 많이 닮아있다. 정병 풍경이 단순한 몇 개의 선만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를 들려주는 것처럼, 오라인이 만든 풍경에도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절제된 감성이 묻어난다. 열린 선과 닫힌 선의 강약, 전체이자 부분인 여백이 공간에 숨을 불어넣으며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그야말로 유화라는 서양의 전통 회화재료를 사용하여 한국 옛 문인의 기개와 여유로움을 상기시키는 절묘한 기법이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프랑스에 체류한지 어언 오십여년의 세월이 되었음에도, 화가의 내면에 잠재하던 한국의 정서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림에 스며들어 있었다. 선과 색의 융합은 오천룡이 체득한 동서양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인 파리파’ 오천룡 회고전, 창작과 싫증

    김형국(가나문화재단 이사장)

    20세기의 세계미술 패권은 단연 프랑스였다. 그 파리로 세계의 미술 천재들이 대거 몰려들었으니 이름하여 ‘파리파(École de Paris)’라 했다. 6.25 전후복구기의 현대한국 미술 야망인들도 거기서 제작도 하고 전시도 한다며 다투어 파리행에 올랐다.

    체류 정도로 그칠 게 아니라 아예 공부부터 시작하겠다는 근본주의자도 등장할 법했다. 개화기 일본화단을 매개로 익혔던 서양화였는데, 본방에서 정통으로 배워보겠다는 각성의 표출이었다.
    여기 오천룡 화백은 근본주의 길을 길어왔던 ‘한국인 파리파’다. 1971년 파리에 왔으니 이제 입성이 50년⦁반세기도 조금 더 넘었다.

    서울 미대를 졸업했을 때 그러니까 1960년대 전반까지 프랑스를 휩쓸던 앵포르멜 파급이었든가 전 세계를 휩쓸던 추상화풍에 몰두했다. 오천룡도 다르지 않았다. 만학으로 파리 국립미술학교를 거치는 사이 방향을 선회했다.

    구상으로 돌아왔다. 처음에 “파리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의지를 담아 “파리(巴里)의 화가”라는 뜻으로 스스로를 ‘파화(巴畵)’라 불렀다.

    고쳐 생각했다. 파리라는 국제무대에서 살아남자면 자기 경신이 절대 필요라는 확신에 이르렀다. “창조적 파괴”의 다짐으로 스스로를 계속 혁신하겠다며 ‘파화(破畵)’라 새로 별호했다.

    당신이 시도한 방식은 선묘의 강화였다. 수묵화의 그 붓질, 전각의 칼질이 모두 동양 쪽 장기, 아니 한∙중∙일 삼국 조형예술에서 선미(線美)가 가장 특출하다는 한국 전통미술 핵심의 심화였다.

    마침내 도달한 파화 오천룡의 구상 그림은 청대 말 제백석(齊白石, 1860- 1957)이 강조하던 그림 묘미에 이르렀다. 일컬어 “닮음(似之, likeness)과 닮지 않음(不似之, unlikeness) 사이”에 있음이었다. 그렇게 오천룡의 화의(畫意)는 파리 시내 풍경, 프랑스 자연 풍경, 당신의 음악사랑, 만난 사람 등을 그림에 담아왔다. 그리하여 산문집(오천룡,『서울의 햇빛, 파리의 색채: 1971-2021』, 삶과 꿈, 2021) 출간과 더불어 회고전의 자리가 바로 여기다.

    전시제목오천룡 회고전: 창작과 싫증

    전시기간2023.03.23(목) - 2023.04.23(일)

    참여작가 오천룡

    관람시간10:00am - 07:00pm

    휴관일매주 월요일

    장르회화

    관람료.

    장소가나아트센터 Gan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평창30길 28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

    주최가나아트

    연락처02-7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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