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미술

한국미술사발해의 미술

대륙에서 빛나는 고구려의 혼

발해의 문화는 고도의 당 문화를 수용하고, 고구려 문화의 전통을 계승함으로써 독특한 문화로 창조되었다.
발해는 멸망 후에도 많은 유민들이 부흥운동을 하거나 고려로 들어와 활동하는 등 그 맥이 우리 민족사에 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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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성기의 발해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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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이룽장 성 상경성 항공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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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머리

    헤이룽장 성 상경성 제1궁전지, 높이 37cm, 도쿄대학문학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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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안 신포시 오매리 절터 건물지의 구들(온돌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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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등(石燈), 헤이룽장 성 상경성 제2절터, 높이 약6m

    발해의 석조 미술을 대표하는 이 석등은 팔각의 기단 위에 중간이 볼록한 간석이 있고, 간석의 아래와 위에는 탐스러운 연꽃이 조각되어 있어서 힘찬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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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란히 앉은 두 부처[二佛竝坐像], 지린성 팔련성, 높이 29cm, 도쿄대학 문학부

    발해의 조각은 솜씨가 뛰어났는데, 불상은 전불이나 철불, 금동불이 있으며, 얼굴이나 광배, 의상 등에 이르기까지 그 조각 수법이 웅장하면서도 균형이 잘 잡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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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화4년’이 새겨진 불비상[咸和四年銘佛碑像]

    높이(대좌포함), 73.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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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무늬 수막새

    지름 20cm 안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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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짐승얼굴 수막새

    궁궐터나 절터에서 발견된 기와, 벽돌 등의 무늬는 소박하고 직선적이다. 특히 기와는 일반적으로 그 형태와 크기가 아주 다양하며, 질이 좋고 단단하여 실용적이었다. 또, 다양한 형태와 어우러진 연화무늬의 기와는 강건한 기풍을 지닌 고구려 와당에서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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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효공주의 무덤

    길림성 돈화현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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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효공주 무덤 해부도

    1949년에 발굴된 정혜공주(貞惠公主:문왕의 둘째 딸)묘가 고구려에서 유행하던 굴식돌방무덤인 것과 달리 먼저 벽돌로 쌓고 그 위에 벽석탑을 세운, 발해 무덤양식에서는 보기 드문 특이한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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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효공주 무덤 벽화

    무덤 벽면에는 12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으며, 발해의 사회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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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효공주 묘비, 화강암, 높이 105cm, 너비 58cm, 두께 26cm

    정효공주의 묘비는 무덤 안길에서 발견되었는데, 묘비 앞면에는 해서체로 쓴 18행 728자의 묘지(墓誌)가 새겨져 있다. 서문 12행과 명문 6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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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사자상, 정혜공주무덤 출토

    이 사자상은 표면적으로는 당의 돌사자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어 발해 왕실 문화가 당 문화에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내용면에서 당당하면서 힘 있는 자세를 나타내고 있어, 문화적 성격 면에서 고구려 미술의 패기와 정열을 계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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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해사신 관련 목간

    일본 나라 헤이조쿄, 24.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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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해 중대성에서 일본에 보낸 문서

    841년, 29×48.8cm, 일본 궁내청 서릉부

  • Description

    발해의 문화는 고도의 당 문화를 수용하고, 고구려 문화의 전통을 계승함으로써 독특한 문화로 창조되었다. 발해는 멸망 후에도 많은 유민들이 부흥운동을 하거나 고려로 들어와 활동하는 등 그 맥이 우리 민족사에 계승되었다. 


     

    고구려를 이은 나라, 발해

    발해(渤海)는 고구려 장수 대조영(大祚榮)이 고구려 유민들을 모아 만주(滿洲)에 세운 나라로, 고구려 문화의 기반 위에서 당(唐)문화를 받아들여 독자적인 문화를 이룩했다. 도성이었던 상경성, 중경성, 동경성에는 잘 계획된 궁전 건축물과 함께, 궁전 터에서 온돌 장치, 기와의 연화문(蓮花文), 굴식 돌방무덤이 발견되어 고구려 문화의 영향이 엿보인다. 발해는 불교가 성하였고, 그에 따라 불교 예술이 발달하여 불상·석등 등 우수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발해 문화는 독자성을 띠고 고도로 발달하였지만, 거란에게 망한 뒤 고구려 유민이 고려로 망명하고, 이 지방에 있던 말갈인은 그 문화를 계승할 능력이 없어 후대에 계승되지 못했다.

     


    잘 닦인 계획도시, 상경성

    발해인이 남긴 가장 큰 유적은 수도였던 상경의 도시 유지(遺址)이다. 지상 건물은 없어졌지만, 궁전과 절 등 주요 건물의 유지와 성곽을 통해 당시의 면모를 파악해 볼 수 있다. 상경은 정연한 도시계획에 따라 건설되었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전체 둘레는 16킬로미터로, 당시 동아시아에서 당나라의 장안성 다음으로 큰 도시였다. 성내에는 왕성(王城)이 있고, 그 정문에서 남으로 뻗은 큰 도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관청들이 늘어서 있었으며, 그 바깥에 민가들이 있었다. 주요 건물의 유지에선 온돌이 확인된다. 온돌이 고구려의 전통을 이은 것임은 물론이다. 중경과 동경의 옛터에서도 도시 유적이 확인된다.

     

    발해 건축의 특징은 도성 안팎에 있던 궁전, 관청, 집, 사원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러한 건축물들은 서로 복합되어 도성으로 기능을 하였다. 발해 건물터에서 발견되는 잘 다듬은 주춧돌과 녹색 유약을 발라 구운 주춧돌 장식, 건물 기단을 장식하는데 쓰였던 용머리상, 갖가지 문양의 화려한 기와 등의 건축 부재에는 발해 특유의 미감이 잘 나타나 있다.

     

     

    고구려 불교문화의 계승

    발해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것은 불교였다. 절터는 대개 상경, 동경, 중경 등 지배계층이 살고 있던 도성에서 집중적으로 확인되어 불교가 지배층을 중심으로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정효공주 무덤이나 마적달 무덤처럼 왕족이나 귀족의 무덤에는 무덤탑[墓塔]과 능사(陵寺)가 만들어진 경우가 많아 지배계층의 장묘의식에 불교의 영향이 지대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발해불교는 고구려에서 계승된 것으로, 이는 곳곳에서 발견되는 불상을 통해 확인된다. 상경성이나 팔련성의 절터에서 대량으로 발견된 전불(塼佛)은 납작한 형태의 중국이나 일본의 것과 달리 둥글고 입체적이어서 고구려 전통을 계승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고구려의 책성지역인 발해의 동경 부근에서 고구려 계통의 이불병좌상(二佛竝坐像)이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함남 신포시 오매리 절터의 발해 문화층에서 고구려 금동판이 출토되어 고구려 불교의 계승성이 확인된다.

     

     

    발해의 무덤과 ‘정효공주’

    발해 지배층의 무덤은 돌로 무덤 칸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덮은 ‘봉토돌방무덤’이다. 매장 방식으로는 단인장(單人葬), 부부합장(夫婦合葬),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묻는 다인장(多人葬), 화장(火葬), 이차장(二次葬) 등이 있다. 이런 무덤에서 벽면에 회칠을 하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린 벽화가 발견되고 있다. 이 역시 무덤 양식과 함께 고구려의 전통을 이은 것이다. 

     

    10세기 후반 이후에는 벽돌을 사용하여 만든 무덤이 나타나는데, 이 중에도 벽화가 그려진 것이 있다. 그 중 유명한 것이 정효공주(貞孝公主) 무덤의 벽화이다. 이런 무덤 양식은 당나라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인물화가 중심인 벽화의 기법도 그러하다. 

     

    정효공주는 발해의 제3대 왕인 문왕(文王)의 넷째 딸로, 757년(문왕 22)에 태어나 793년 6월 19일에 죽었다. 같은 해 12월 28일 이 무덤에 묻혔다. 무덤은 크게 무덤 바깥길·안길·널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벽돌과 돌로 쌓은 지하무덤이자 외칸무덤으로, 바깥 길은 표면에서 밑으로 내려 판 계단형이다. 바깥길 수평거리는 7.1m이다.

     

     

    대외 교류 및 영향

    발해는 고구려의 멸망, 신라의 삼국통일, 당의 급속한 세력 확장 등으로 이어지는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건국되었다. 따라서 초기에는 안정적인 대외관계를 지향했고, 국가 체제가 정비되어 안정된 이후에는 주변국과 활발하게 교류하였다. 발해에는 다섯 개의 주요한 대외 교통로가 있었다.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 용천부에는 바다를 통해 일본으로 가는 일본도(日本道), 함경도의 동해 연안을 따라 신라로 들어가던 신라도(新羅道), 부여부(夫餘府)를 지나 거란으로 이어지는 거란도(契丹道)가 있었고, 당나라와 왕래하던 두 개의 길이 있었다. 이 중 하나가 랴오둥 반도와 산둥반도를 잇는 바닷길인 조공도(朝貢道)이고, 다른 하나는 육로로서 당나라 동북지방의 거점인 영주와 통하는 영주도(營州道)이다. 이 밖에도 ‘담비의 길’이라 하여 발해 수도에서 남부 시베리아 및 중앙아시아와 연결되는 모피 교역로가 있었다. 이렇듯 주변국들과 활발한 관계를 보인 발해의 대외교류는 주로 목간(木簡)과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뮤움 미술사연구팀 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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