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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후 민족미술건설을 위한 미술계의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진 가운데 서울대, 이화여대, 홍익대에 미술대학이 설립돼 체계적인 미술교육이 가능해졌다. 1948년 설립된 국전(國展)은 1981년까지 해방이후 미술계를 이끌어갔고, 국전외부에서는 추상화 경향의 확산과 함께 ‘앵포르멜’ 운동이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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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의 미술인식과 명제
1945년에서 48년까지 해방공간의 미술은 극심한 사회정치적 혼돈 속에서 새 국가의 문화건설에 복무할 것을 자처하는 입장들이 여과 없이 분출되었다. 미술단체의 이합집산(離合集散)이 유난히 극성을 부린 시기였지만, 그 모두가 향후 실현될 민족미술에 대한 이상적 조감도를 목적으로 했기에 일제강점기 아래 누려보지 못한 자유를 마음껏 향유한 시기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민족미술을 성취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는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극단적으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옹호하는 경향과 순수 민족미술을 지지하는 경향 그리고 어떤 정치적 경향성도 표방하지 않으면서 전통적 미의식을 현대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경향 등이 혼재해 있었다. 또 정치적 견해에 따라 미술인들도 좌익과 우익, 그리고 중도로 나뉘어 이합집산화 되어 ‘민족미술의 구현’이라는 대명제를 제대로 발현시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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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전(國展)의 성립과 쇠퇴
광복 후의 한국 화단은 광복의 감격과 정치적 혼란, 그리고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격동기를 거쳤다. 국전은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1949년에 창설되어, 1981년 30회전을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 그동안 동양화·서예·서양화·조각·공예·사진·건축 등 분야에 걸쳐 한국의 대표적인 화단의 등용문 구실을 하였다. 일제강점기의 조선미전의 형식과 제도를 그대로 답습했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나, 많은 작가를 배출하고 미술에 대한 관심을 높여 대한민국 미술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신인 작가 등용을 위한 공모전 외에도 초대작가전과 추천작가전을 혼합해 실시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국전은 본래 취지였던 신인작가 부문보다 기성작가 부문이 비대해졌고, 이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1981년의 제30회를 끝으로 폐지된 후, 신인작가 발굴만을 담당하는 대한민국미술대전이 1982년에 창설되었으며, 기성작가를 위한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현대미술초대전을 통해 대체하였다.

 

초기 국전의 구상화 경향
국전의 입선이나 특선에 따르는 명예는 많은 갈등과 잡음을 불러왔다. 심사위원 선정에서 특선작 선별에 이르기까지 ‘나누어 먹기’라는 불명예스러운 소문이 있었을 뿐 아니라, 서울대와 홍익대 미술대학의 경쟁의식이 시간이 갈수록 가시화되면서, ‘국전’은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돼 갔다. 특히, 초기 국전의 경우 일제 시대에 활약했던 미술인들이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동양화부문에서는 고희동, 김은호, 이상범이, 서양화부문에서는 이종우,장발,김인승,도상봉 등이, 그리고 조각부문에서는 김경승,윤효중 등의 구상계열 위주의 작가들이 심사위원으로 참가하였다. 실내나 야외정원에 앉아 있거나 서 있는 여인, 노인을 그린 작품들이 당시 가장 무난하게 입선되거나 상을 받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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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화 경향의 확산과 ‘앵포르멜’
1950년대 말, 젊은 나이에 ‘정신적 공황상태’를 경험한 해방 이후 세대들은 구시대의 잔재를 답습하는 기성세대들에 의한 화단의 분위기에 허무와 분노를 느꼈고, 그것은 50년대 말 집단적 추상운동을 일으키는 배경이 되었다. 1957년을 기점으로, 모던아트협회, 창작미협, 신조형파, 백양회 등 많은 미술단체들이 결성되었다. 모던아트협회는 유영국, 정점식, 한묵, 문신, 정규, 김경, 박고석, 황염수 등 당시 분명한 재야적 의식을 가지고 결속한 양식적 모더니즘 작가들이 40대의 기성작가들로 그 변모를 보여주었다. 창작미협은 국전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서정적 반추상 내지 추상적 양식화를 시도하던 작가들로 이봉상, 유경채, 고화음, 박항섭, 박창돈, 황유엽, 홍종명 등이 있다. 신조형파는 화가와 건축가 디자이너들의 구성체로 바우하우스의 이념의 구현이라는 종합적인 조형운동을 지향하던 단체로서 변희천, 조병현, 김관현, 이상순, 손계풍, 변영원, 이철이, 황규백 등으로 출발하여 김영환, 김충선, 정건모, 이철, 이상욱 등으로 결성 되었으나 59년 3회전으로 단명하였다.
가장 전위적으로 미술이념과 행동윤리를 결합시키고 있던 그룹은 현대미협이었다. 이 그룹은 김창렬, 하인두, 박서보, 장성순, 나병재, 조용익 등이 참여했고, 58년 4회전부터는 '앵포르멜' 이라는 분명한 조형이념을 내비치면서 성장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저항적 아방가르드로서의 위상을 갖추기 시작한 추상표현주의 운동은 1960년 4.19혁명과 함께 등장한 제2세대들에 의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4.19혁명의 기세를 타고 60년 10월 덕수궁 담벼락에 500호, 1000호 크기의 추상화 캔버스들이 등장했던 것이다. 이들은 대학을 갓 졸업한 학생들로 당시 미술대학의 분위기가 추상일도로 변해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렇게 추상표현주의의 열풍은 60년대에 오면서 벽전과 60년 미협, 악투엘로 이어져 전체화단의 지배적인 흐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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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움 미술사연구팀 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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