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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주의는 19세기 이후 나타나는 다양한 사조들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인상파와 신인상파 회화 기법에 불만은 품었던 집단이다. 작품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극도로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를 도발적이고도 강렬한 기법으로 사용하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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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색을 찾아서
1905년 ‘살롱 도톤느’전에서 처음으로 야수파는 함께 전시를 열었는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바로 이 전시회에서 ‘야수’라는 전시를 얻게 되었다. 특히 드랭과 블라맹크는 반 고흐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두텁고 육중한 붓질을 이용해서 강렬한 색채를 화면에 입히곤 했다. 사과는 빨강색 나무는 초록색이라는 고정된 색채관념을 버리고 색 자체의 조화에 의미를 두고 있으므로 화면에서 야수처럼 뛰어다니며 충돌하는 색의 향연을 느끼는 것이 감상의 포인트이다. 야수주의는 대상이 지닌 고유색에 상관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무들이 오렌지 색깔을 칠해지거나 하늘은 핑크색으로 사람의 얼굴은 녹색으로 칠해지기도 했다. 야수주의 화가들은 당시 유행하던 인상주의와 신인상주의에 영향을 받고는 있었으나 빛의 변화에 따른 색의 본질을 찾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사실성을 뒤쫓고 있는 그들과는 다른 방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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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원색의 향연
야수주의 작품은 명암을 이용하여 입체감있는 실제를 나타내거나 사물 원래의 색을 충실히 표현하는 대신 색면 자체를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혼합하지 않은 원래의 물감색을 그대로 사용하여 화폭은 화려하고 강한 원색들이 경연이라도 하듯 저마다 펼쳐져 있다. 과거 실물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하는데 이용되었던 색깔은 야수파화가들의 붓질에 힘입어 자신의 자율성으로도 휼륭한 회화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마음껏 드러냈다. 야수파는 과학적 합리주의와 이성을 거부하고 직관과 본능, 감성, 상상력 등 추상성을 지향하게 되었고 타성과 관습을 버리고 새로운 진리에 도전하려는 의욕이 만발했으며, 질서를 이탈아여 독립하려는 자의식이 강조되었다. 야수파 이후로는 회화가 완전한 추상성을 추구하며 더욱 작가개인의 문제로 한정되는 개별성을 띠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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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색과 무거운 색의 리듬감
야수파의 가장 큰 특징은 색채의 해방에 있다. 그들이 보는 것은 마음으로 보는 것으로 화가의 개성이 창작의 원천임을 보호해 주는 테두리가 되었다. 색이 주인공이 되면서 거이감 깊이감 등 기존의 회화의 원칙들은 불필요해졌고 색들은 차별없이 평면 위에서 저마다의 특성으로 빛을 발했다. 색채자체가 회화의 목적이 된다는 것은 사실적인 묘사를 하지 않겠다는 의도이기 때문이다. 색을 강조하기 위해 색면을 넓히다보니 입체감이 사라졌고 명암또한 약해졌다. 그래서 이들의 그림은 마치 색종이를 오려붙인것처럼 단순해졌다. 순수색채는 화면을 구성하는 데에도 이용되었으나 감정표현과 장식효과를 내는 것에 더 큰 역할을 했다. 가장 순수한 상태로 야수주의를 완성했던 마티스는 밝은 색이 어두운 색보다 더 가벼워보이는 것 등 색의 크기와 무게에 따른 리듬감까지도 염두해두었다. 블라맹크는 색면마다 검은색 테두리를 둘러 색의 특성을 강조했고, 드랭은 실제 색을 무시하고 자신이 원하는 색만으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만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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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주의 그 후
야수주의 운동은 이후로 주관적 표현과 형식은 해방이라는 의미로 표현주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고,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도 야수주의를 근거로 하고 있다. 색채를 떠나서 미술사적으로도 야수파만큼 쉽게 그린것과 같은 자유로움을 선사한 사조는 없을 것이다. 1907년 세잔의 회고전은 야수파 화가들의 전향에 중요한 지표가 되었다. 처음부터 공통의 주장이나 이론이 없었기에 야수파는 입체파 운동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그 결속만큼이나 빠르게 해체되며 각자가 기질에 따라 개성적이고 독자적인 화풍으로 발전해나가게 된다. 1908년에는 주된 표현의 기법이 ‘색채’에서 ‘입체’로 옮겨지게 된다. 가장 늦게 야수적 표현에 참가했던 브라크는 이미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여 입체주의에 도달하게 되었고, 드랭은 입체주의 영향을 입은 후 고전주의적 화풍으로 되돌아갔으며, 가장 야수적이었던 블라맹크도 세잔풍의 엄격한 구성을 보이게 된다. 마지막까지 색채에 충실하며 야수적 체질을 심화발전시킨 화가는 앙리 마티스였다.

 

뮤움 미술사연구팀 김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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