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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중반에서 19세기 전반 유럽에서 발생한 미술양식인 신고전주의. 지나친 장식성으로 과도한 사치성까지 보이던 로코코양식에 반기를 들어 질서정연한 통일감과 명확성과 균형을 중요시하였다. 신고전주의는 그리스 로마식의 이성적인 분위기로의 복귀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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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아카데미 설립
18세기에 이르러서는 화가가 장인으로부터 도제로 전승되는 대신 미술아카데미에서 가르치는 철학과 같은 과목으로 그 입지를 바꾸었다. 아카데미의 성격상 옛 거장들의 위대함을 강조하며 교육했다. 그러므로 컬렉터들은 생존해있는 화가들에게 그림을 의뢰하기 보다는 거장의 작품을 사들이는 분위기였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화가들은 대중의 관심을 끌기위해서 시대에 맞는 새로운 주제를 찾게 되었으며, 혁명분위기에 걸맞는 그리스 로마식의 근엄함을 선택했다. 혁명의 기운과 함께 계몽주의 사상이 혼재되어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혼돈에 빠져있는 당시의 사회에 이상적 규범이 되는 행동과 사상을 만들어 도덕적인 합의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신고전주의는 이런 시대적 배경으로 탄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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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문화의 재발견
18세기 중반에 이루어진 헤르클라네움과 폼페이등 고대로마 건축의 발굴과 소아시아 여행에 의한 그리스 문화의 재발견으로 프랑스혁명 전후에는 고대에 대한 관심이 프랑스 사회전반을 지배했다. 이러한 고고학적 성과가 이론서들로 출간되고 이 시기에 대 미술사학자인 빙켈만의 <그리스미술 모방론>은 오늘날에도 신고전주의의 선언서로 인식될 만큼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고전 고대 미술작품에 대한 연구와 비평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동시대의 역사적인 주제를 다루다
신고전주의는 바로크와 로코코의 변덕스러움에 질려있던 유럽미술에 신선한 활력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주제가 역사와 신화 등에 한정되어 있지 않고 당대의 시사적 사건을 다루는 등 자유롭게 주제를 선택하여 고전주의와의 차이를 두었다. 르네상스 풍의 화법으로 아니 그보다 더 정교하며 입체감이 느껴지는 엄숙함으로 동시대를 표현한 것은 실로 신선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혁명정부는 명석하고 절제된 표현이 그들의 이상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하여 신고전주의를 열렬히 환영했다. 신고전주의의 양식을 이끌어간 화가는 혁명정부가 내세운 공식화가였던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1748-1825)와 도미니크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1780-1867)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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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전주의의 창시자 자크 루이 다비드
1774년 로마대상을 수상하고 이후 5년동안의 이탈리아 유학을 하면서 고대의 유물이나 르네상스대가들의 작품을 열심히 묘사하며 이탈리아 회화의 특징을 익혔다. 다비드의 1784년작 <호라티우스 형제들의 맹세>는 프랑스의 신고전주의가 시작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1789년 혁명이 일어나자 다비드는 혁명파편에 서서 의원으로 정치적인 활동을 하다 감금되기도 한다. 이 때 그린 그림이 <마라의 암살>이라는 그림이다. 그 후 나폴레옹이라는 영웅의 그림을 그리게 되고 <황제 나폴레옹 1세 대관식>을 3년 만에 제작하기도 한다. 정부의 공식화가가 된 다비드는 신고전주의를 탄생시키고 이 후까지 프랑스회화의 주류를 만들었으며 그 영향력이 회화를 넘어 가구양식, 복장의 장식, 헤어스타일까지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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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전주의를 완성한 도미니크 앵그르
앵그르는 자크루이다비드의 아틀리에에서 수학하였다. 로마대상을 수상하였으나 로마유학이 연기되고 대신 아틀리에의 지원으로 고전풍의 그림에 더욱 몰두라며 조금씩 스승이었던 다비드의 영향에서 벗어난다. 이후 로마유학 후에도 이탈리아에 18년간 체류하며 르네상스의 거장 라파엘로의 화풍을 연구한다. 그가 그린 <그랑드 오달리스크>,<목욕하는여자>,<터키목욕탕>을 보면 인체의 아름다움을 최대화시키려는 앵그르의 도전의식을 느낄 수 있다. 고전파가 형식에 집착한 나머지 인간적 감정이 그림에 들어있지 않았다면 앵그르는 인간적 아름다움 또한 놓치지 않는 능력이 있었다. 더구나 앵그르는 화면에서 모든 노력의 흔적, 즉 붓질로 생기는 마티에르까지 남기지 않겠다는 신념을 가졌기에 그림의 바탕을 거울과도 같이 매끄러워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들기도 했다. 신고전주의가 명확한 윤곽, 입체적인 묘사, 절제된 색채를 가졌지만 생명감이 적었다면 이 생명감을 완성시켜 마침내 신고전파의 완성자라는 칭호를 받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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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움 미술사연구팀 김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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