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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고흐의 유명한 작품으로 그가 죽기 1년 전 정신병원에 투병 중 그린 그림이다. 평온해 보이는 마을, 인적이 없는 마을을 묘사하고 있다. 측백나무가 전면에 크게 위치하고 그 뒤에는 오밀조밀한 마을의 집들과 첨탑의 우뚝 솟은 교회가 등장한다. 마을의 정적인 모습과 달리 하늘은 노란색과 파란색이 대조를 이루면서 회오리치는 속에 별은 그 빛을 잃지 않으려고 누가 질세라 자기영역을 표시하듯 매우 크게 퍼져있습니다. 크게 퍼진 하늘의 별들과 동네 풍경은 추상을 시도하며 색채와 형태를 자유롭게 표현했다. 서로 감긴 소용돌이와 11개의 둥근 테를 두른 별 그리고 시골풍경의 정적인 대조를 통해 고흐만의 기법과 효과를 증대시킨 걸작이다. 소용돌이치는 하늘과 빛을 발하고 있는 별은 당시 방향을 잃고 떠도는 고흐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처럼, 작가는 자연이나 물체 대상을 통해 마법과도 같은 작가의 감성을 이입하여 자신만의 감성을 작품에 담아냈다.

 

 

 

비운의 화가 반 고흐
반 고흐는 네덜란드가 낳은 세계적인 화가다. 37년이라는 삶을 파란만장하게 살았던 고흐는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하고 죽은 작가이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1년 전 죽은 형의 이름을 따서 지은 고흐의 이름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죽음의 기운을 타고났다는  등의 이야기 거리를 남기고 있다. 고흐에게는 5명의 동생이 있었고 그 중 정신적, 물질적 지원자 테오(Theo)가 있다.
고흐의 가족사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그에게는 화상을 하는 3명의 숙부가 있었다고 한다. 그 중 유명한곳이 구필화랑인데, 고흐는 그곳에서 판화를 복제하는 일을 하는 성실한 직원이었다. 이곳에서부터  동생 테오와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고흐가 그림그리기를 시작한 것은 1880년 이후이다. 그가 1853년에 태어났으니 27살에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고 죽기 10년 후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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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작품은 귀가잘린 고흐의 자화상이다. 발작 후 2주가 지난 후 그린 그림이다. "화가이기 때문에 겪은 발작이었기를 바란다. 하루하루 내 머리는 평온을 회복하고 있다." 라고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를 통해 잘린 귀의 고통의 괴로움보다는 침착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함을 알 수 있다. 노란색의 밝은 작업실에 당당히 서있는 고흐의 모습이 보인다. 인물의 뒤에는 이젤과 캔버스, 그리고 일본 전통의상(기모노)를 입은 그림이 걸려 있다. 당시 고흐는 일본그림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또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유럽화가들에게 영향을 준 일본그림은 일본에서는 인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포장지 또는 달력의 용도로 값어치가 없이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유럽의 상인들이 그런 그림을 싼값에 사들여 비싸게 프랑스 사람들에게 팔았다고 한다.  고흐는 왜 귀를 잘랐을까 여기서 잠깐 고흐와 고갱이야기를 하면 고흐와 고갱은 동성애자였다는 설도 있다. 둘은 서로의 작업에 영향을 주면서 절친한 관계를 가졌다. 하지만 서로 맞지 않는 성격과 고흐의 집착하는 성격에 질려 떠나려는 고갱과의 갈등을 견디다 못한 고흐가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잘라버렸다는 설이 있다. 또한 이러한 비관적이며 돌출된 행동은 결국 고갱을 멀리 도망치게 만들게 된다.

 

희망의 노란색
이 작품이 배경이 되는 곳은 하루 1프랑을 주고 하숙하였던 아를의 카페 드 라르카사르의 내부를 사흘 밤, 잠도 자지 않고 화폭에 담은 카페의 모습이다. 이 카페는 아직도 프랑스 아를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고흐는 색상의 대비를 통해 인간의 고통을 표현하려 했다고 하는데, 노랑과 파랑 등 보색을 통해 작가 자신의 감성 속에서 꿈틀거리는 대립의 감정을 나타내고 싶었을 것이다. 이 시기 고흐가 "카페가 사람들을 망가뜨리고 미치게 하며,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장소일 수 있다" 고 한 말을 토대로 과로로 인한 그의 육체적 정신적인 상태를 알 수 있다. 그는 작품 속 카페에서 60~70도가 넘는 술을 즐겨마셨다고 한다. 밥을 먹을 돈이 없어도 술은 마신 그는 날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폐해져가고 있었다.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동생에게 편지를 쓰며 검은색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내용과 자신의 생은 고통과 슬픔의 연속이지만 꿈과 이상을 잃지 않았다고 이야기를 전했다. 잃지 않은 희망을 노랑색을 통해 나타냈다고 한 그는 하늘에 빛나는 노란 별들과, 카페를 비추고 있는 불빛을 빌어 희망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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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삼키는 검은 그림자
프랑스 북부 오베르는 그가 죽기 3개월 동안 머물렀던 곳으로 이곳에서의  단기간 생활동안 70여점이 넘는 작품을 남긴 장소이다. <오베르교회>는 죽기 1달 남짓 남긴 시기의 그림이다. 양 갈래의 갈림길사이에 우뚝서있는 교회가 있다. 일렁이는 형태의 교회는 오베르 사람들의 영혼의 안식처이며 인간과 하늘이 대화를 나누는 장소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의 따듯한 느낌보다는 푸른 하늘 속 어두운 그림이 죽음을 암시하듯 음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교회 앞에 갈림길에는 한 여성이 걸어가고 있는 길은 멀리 집이 보이듯 마을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교회의 공원묘지로 가는 길이다. 여성은 삶과 죽음이라는 갈림길에서 삶(마을)을 택한 모습에서 불안한 마음, 삶과 죽음 사이 방황하는 모습이 느껴지는 듯하다. 평온해 보이는 풍경인 듯 보이지만 하늘을 조금씩 삼키고 있는 듯한 검은 그림자의 거친 붓터치는 점점 다가오는 그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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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는 대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작품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죽기 얼마전부터 밀밭을 그리기 시작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서는 거친 바람에 흔들리는 밀밭과 그 위를 스산하게 떼지어 날아다니는 까마귀의 모습이 그의 죽음을 예견하듯 스산한 분위기를 주고 있다. 보색을 통해 자신의 격렬한 감정의 대립을 밀밭을 통해 묘사하고 그 결말을 까마귀라는 대상을 통한 표현한 작품이다. 고흐는 이 밀밭에서 자신의 가슴에 총을 쏘고 여인숙, 자신의 침실로 돌아와 숨을 거두게 된다. 고흐는 자살했다는 이유로 장례의식도 거절된 채 수레에 실려 마을 공동묘지에 안치되었다. 현재의 그의 명성과 어울리지 않은 초라한 죽음이 아닐 수 없다. 인생의 동지와도 같았던 동생 테오도 6개월 후 형의 죽음으로 정신이상증세를 보이다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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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고뇌를 추구하다
여기서 그가 평생 본질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바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내가 추구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것이 아니라 뿌리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깊이 고뇌하고 있다고 정말 경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느낄 정도의 경지에 오르고 싶다.” 이것은 그저 색상과 형태 변이의 즐거움이 아닌 본질을 이야기 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우리가 사랑하는 고흐는 예술을 위해 자신의 인생과 정신을 예술에 바친 작가이다. 독한 술에 취해 하늘의 별에게 다가가고 싶었던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고흐는 힘겨웠던 예술가로서의 37살이라는 짧은 생을 스스로 끊어버린 작가이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후대에도 남아 그의 예술관과, 인생관의 위대한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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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움(mu:um) 미술사 연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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