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희 초대전

2019.07.04 ▶ 2019.07.14

금보성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평창36길 20 (평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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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희

    The Masquerade (Series) 80x60.5cm,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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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희

    HomeTown (고향) Series - the way home 43x33cm,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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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희

    하루 80.3x100cm, Oil on Canvas,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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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희

    물들이다 (Diffusion) 3x(120x40)cm, Acrylic,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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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희

    Dream Series - Summer 120x40cm, Acrylic on Canvas,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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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희

    Identity 120x40cm, acrylic on canvas,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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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희

    기다림 91x116.8cm, Oil on Canvas,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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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희

    평온(Peace) ; 가을 50x50cm, Acrylic on Canvas, 2014

  • Press Release

    기억과 욕망
    평론 최윤재(서울대 철학과)


    인간이 외적 세계를 향해 무언가를 표현(expression)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그것은 자신의 내면 세계를 드러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내적인 것을 외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다음으로 그것은 외적 세계 즉 자연에 대한 해석을 의미한다.
    이 해석에는 표현된 대상이 갖는 여러 측면, 예컨대 그것의 본질, 그것이 상징하고 의미하는 바가 포함된다. 그런데 자신의 내면 세계라는 것은 외적 세계와의 접촉의 산물이므로 그것은 외적 세계에 대한 해석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인간의 표현이라는 것은 모두 한 가지로 묶어 생각 할 수 있을 것인데, 이를 포괄하여 이름 짓는다면 그것은 외적 세계에 대한 “질서 부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표현 방식은 여러 가지이지만, 예술적 표현이야 말로 가장 인간적인, 아니 이 세상 모든 존재 중에서 인간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외적 세계에 대한 질서 부여의 방식으로서는 예술적 표현이 가장 세련되고 고상하며 “가장 인간적인” 표현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순희 화백의 그림들을 보면 이러한 예술적 표현의 특성이 잘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다.

    1. 얽히고설킴의 질서
    자연법칙이 자연에 ‘과학적’ 질서를 부여한다면, 예술은 인간이 외적 세계 즉 자연에 ‘예술적’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예술적 질서 부여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연법칙이 그 근거를 자연에서 찾듯이 예술 역시 그 근거를 자연에서 가져온다. 이순희 화백의 여러 작품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자연 현상을 화포에 가져와 거기에 질서를 부여하고 있다. <꿈> 시리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그러하고, <평온> 시리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그러하다.

    이 화백은 자연의 사계절에 주기적 변화라는 질서를 부여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러한 질서부여는 자연과학적 작업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화백은 구태여 계절의 주기적 변화에 의탁해 그 나름의 질서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우선 <꿈> 시리즈를 보도록 하자. 네 폭의 그림의 구도에는 변화가 거의 없다. 색상의 변화가 우선 눈에 띄는데, 그러나 그것은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계절적 감각을 반영하는 것에 불과하다. 한편 봄의 경우에는 하늘에 떠 있는 씨앗이, 그리고 여름의 경우에는 푸른 창공으로 비상하는 풍선이 생명이 생장하고 상승하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음에 반하여, 가을에는 낙하는 단풍잎이, 겨울에는 하강하는 눈 분자 기호가 생명의 응축과 하강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생장과 상승, 응축과 하강의 이미지가 이 화백이 자연에, 그리고 그변화에 부여한 질서라고 하겠다. 그런데 여기에 이 화백의 그림에서만 보이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네 폭의 그림 모두에서 보이는 구름을 보자. 구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장미 무늬다. 장미 문양은이 화백이 다른 그림에서도 즐겨 사용하고 있는 ‘기호’이다. 그런데 장미는 문화적으로 다양하게 해석되는 기호다.
    <평온> 시리즈에서는 이 장미 문양이 더욱 도드라지게 ‘기호화’되고 있다. 이 시리즈에서도 계절별 변화를 보여주는 배경 색상들은 관행(convention)에 벗어나 있지 않다. 이런 관행적 표현에 더하여 이 화백이 부여한 질서는 무엇인가. 이 화백이 창조한 질서를 관통하는 주제는 ‘사랑’이다. 꽃이 사랑과 연결되는 기호로 작용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장미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만큼 사랑의 다양한 모습을 기호화해왔다. 이를테면 “욕망, 사랑, 기쁨, 아름다움, 순결, 고백, 맹세, 행복, 기적, 치명적 매력, 영원한 사랑, 영원한 혹은 불완전한 사랑, 질투, 비극적 사랑” 등등. 이 화백은 다양한 기호적 의미를 지닌 장미를 자신의 따뜻한 시선으로 버무려서 화포에 반영하고 있다. 이런 이 화백의 의도가 <꿈> 시리즈에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이다. 꽃은 식물의 ‘생식기’다. 생식기는 사랑의 원초적 기호로서 생명력의 상징이다. <평온, 봄>은 이 생명력이 응축되어 표현되어 있다. 풍성한 나무의 자태는 그 밑에 있는 남녀의 사랑의 밀도를 대변해준다. 나뭇잎을 이루고 있는 장미 문양 색채의 농도가 짙고 옅은 것은 음양으로 차이진 남녀의 사랑의 마음이 미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음양의 얽히고 섞임과 조화는 이 시리즈에서 일관되게 추구되고 있다. 이런 서로간의 섞임과 조화는 두 그루의 나무가 얽히고설켜 있는 <평온, 겨울>에서 그 절정의 극치를 보여주고있다.

    2. 시간과 기억
    우리 인간을 인간이게끔 해주는 것이 기억 능력이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생명체가 공유하는 동물적 본능 차원에서의 기억 능력이 아니다. 하다못해 원생 동물조차도 기억 능력은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고유하고 특징적인 능력으로서 기억 능력은 기억된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추억 능력’이다. 이것은 의식 차원에서뿐만이 아니라 무의식 차원에서도 이루어진다.

    이 화백의 <탄생 1, 2>는 무의식 차원에서 형성된 추억의 표현이다. 원은 우주이며 모든 것을 통합하는 전체성과 완전성을 상징한다. 하나의 생명의 탄생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인간은 하나의 소우주(Microcosmos)다. 어둠을 뚫고 밝은 빛으로 빚어진 원은 바로 생명의 탄생이 우주임을, 그것의 우주적 성격을 상징한다. 그 안에 세로로 그어진 선들과 그것들을 꿰는 듯하게 가로로 굵게 그어진 선, 이것들은 생명이 씨줄과 날줄의 얽힘이며, 이것들을 전체로서 아우르는 원의 형상은 생명이 우주의 모든 것들의 전체성이며 총화이고 완전함임을 드러내주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밝은 원을 향하여 총신의 탄도가 밀착된 듯이 어지럽게 그어진 하얀 선들은 생명의 탄생이 지난한 과정임을 보여준다.

    우리 인간의 기억은 자기 동일성 혹은 자기 정체성(self-identity)을 이루는 요소이다. <물들이다>,<눈물>, <아이덴티티> 등 세 작품은 장미 문양이 흰색과 적색, 그리고 검은색으로 물들여져 어우러 져있다. ‘물들임’은 생명의 잉태이다. 음과 양의 교접은 서로가 서로를 물들임을 의미한다. 순결을 상징하는 하얀색 장미와 사랑과 욕망, 기쁨을 상징하는 붉은색 장미, 그리고 영원성을 상징하는 검은색 장미의 어우러짐은 ‘물들임’ 즉 생명 잉태를 일구어내는 생명 작용이다. 그 결과는 새로운 생명의 울음이다. 자신이 새로운 생명으로서 세상에 탄생하게 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하나의 생명의 정체성 혹은 동일성이 <아이덴티티>에서처럼 안정되게 형성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human nature)은 영어 문자 그대로 보면 ‘인간의 자연’이다. 이 화백은 <탄생 1, 2> 와 <물들이다>, <눈물>, <아이덴티티> 등의 다섯 작품을 통해서 바로 ‘인간의 자연’에 질서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사모관대를 쓰고 춤을 추고 있는 <페스티벌>과 <페스티벌 2>은 하나의 ‘소우주’인 인간 생명의 원천인 음과 양의 어우러짐과 환희를 그려내고 있다. 변화와 기적을 상징하는 색인 파란 복색의 남성(신랑)과 기쁨과 사랑을 상징하는 색인 붉은 복색의 여성(신부)이 행복하고 즐거운 표정으로 어우러진 모습은, 생명 잉태가 소우주 창조를 위한 기쁨이요 축복이며 축제임을 상징해주고 있다.

    3. 기억의 집요함과 기억 비우기
    <잃어버린 기억 중에> 시리즈는 이 화백의 연륜이 가장 짙게 드러나 있는 작품들이다. 한 평생을 산중에 칩거하며 살아가는 수도승의 생애가 아닌 바에야 다사다난하고 파란만장하지 않은 인간의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 인간은 망각의 존재라 매순간 삶에서 중요하게 겪었을 사건과 에피소드에 관한 기억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 자신의 삶이 어느 정도 성숙해졌다 싶으면 지나간 일들을, 잃어버렸다고 생각되는 사건들을, 망각하고 싶었던 에피소드들을 집요하게 기억하고 추억하려는 경향이 있다. 만약 기억력이 유달라서 몇 십 년 동안의 일들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해도, 그것들에 질서를 부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물며 잃어버렸던 기억들을 되살려 질서를 잡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으리라. 이 시리즈 중의 <조각 맞추기>는 바로 그런 어려움을 말하고 있다.

    <잃어버린 기억 중에 1, 2, 3, 4, 5>는 화면의 한쪽 위에서 다른 한쪽 아래로 그어진 경계선을 중심으로 위에는 장미 문양의 원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 술이나 물 등을 담을 수 있는 용기들(컵이나 병 등)이 그려져 있다. 원들은 기억하려는 주체(인간, 이 화백)이며, 용기들은 기억의 주체에게 있었던 사건이나 에피소드들이다. 빗금에 원의 일부가 아주 적게 걸쳐 있는데, 이는 지금 회상해내고 있는 기억이 그만큼 희미하다는 의미, 즉 잃어버렸던 기억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원이 수평선이 아니라 빗금과 함께 그려진 것은 원이 정지된 것이 아니라 움직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기억의 주체가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동시에 잃어버렸던 기억이 그 생명력의 변화(생명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인다. 즉 변화하는 것이다.)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추억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보는 시각에 따라 각 용기들이 상징하는 것이 서로 다른 사건이나
    에피소드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시리즈 맨 마지막 작품인 <잃어버린 기억 중에서 5>는 특히 인상적인데, 이 화백은 이 작품을 그릴 즈음에 이르면 잃어버렸던 기억들을 되살렸다가 다시 ‘망각의 강’에 빠뜨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지금까지의 회상이 부질없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이. 이 작품을 앞선 것들과 전혀 다른 사건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4. 꿈과 욕망, 그리고 추억
    꿈은 또 다른 의미에서 기억이요, 기억 되살리기인 동시에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 발산되는 기제이다. 작품 제목에 ‘꿈’이 들어간 <몽 1, 2>뿐만 아니라, <거창의 봄>과 <봄의 향기 1, 2>, <추억 여행 1, 2>, 그리고 유화로 그린 , <기다림>도 이 화백의 꿈이 형상화된 것이다. 한 어린 소녀가 고즈넉한 한옥 한 귀퉁이에서 웅크리고 앉아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기다림>). 흑백 그림 안에서 유독 이 소녀만이 원색으로 그려져 있다. 이것은 이 화백의 꿈속에 나타난 자기 자신이다. <몽 1, 2>에서 그려진 인물도 <기다림> 속의 소녀다. 장미에 푹 파묻혀 있는 듯한 소녀는 무언가를 누군가를 욕망하고 있는 것이다. 장미는 사랑이자 욕망의 상징이다. 그런데 에는 아무도 없다. 소녀가 기다리는 대상이 부재하는 것이다.

    꿈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두서가 없는 법이다. 하지만 그러는 중에도 꿈꾸는 사람의 바람과 욕망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추억 여행 1, 2>에서 왜 <기다림>에서 소녀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에서 왜 기다림의 대상이 부재하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추억 여행 1, 2>에서 실루엣으로 그려진 남녀 모두가 부재하는 것이다. 눈을 감고 있는 여성이 기다리는 주체이며, 그녀는 바로 <기다림>에 있는 어린 소녀이다. 대상으로서 남성도 부재하는데, 기다림의 주체인 자기 자신도 부재하는 것이다. 역설인가? 그렇지 않다. 주체의 부재란 바로 젊은 시절의 자기 자신이 이제는 사라진 것을 의미한다.

    이순희 화백의 작품을 시인 코울리지(S. T. Coleridge)의 말을 빌려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외적인것을 내적인 것으로 내적인 것을 외적인 것으로 만들며, 본질이 생각하게 하고 본질을 생각하게” 한다.

    전시제목이순희 초대전

    전시기간2019.07.04(목) - 2019.07.14(일)

    참여작가 이순희

    관람시간11:00am - 06:00pm

    휴관일일요일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금보성아트센터 KumBoseong Art Center (서울 종로구 평창36길 20 (평창동) )

    연락처02-396-8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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