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 포스터
‘두산아트랩’은 두산아트센터가 시각 예술과 공연 예술 부문의 신진 예술가를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해 2010년부터 진행해 온 프로그램으로, 시각 분야에서는 35세 이하의 작가 다섯 명을 공모로 선정해 단체전의 형태로 소개해오고 있다. 이번 《두산아트랩 전시 2026》에는 지난해 공모를 통해 선정한 박예림, 송지유, 오정민, 이동현, 이희단이 참여한다.
전시에 참여하는 다섯 명의 작가는 세계를 이미 주어진 단일한 구조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은 각자의 힘과 고유한 감각을 출발점 삼아, 서로 다른 매체와 서사를 통해 이곳에 자신만의 장소를 구축한다. 그 장소는 기억과 시간을 통과하며 형성된 흔적이자, 세계와 어긋나는 과정에서 생겨난 균열의 자리다. 작가들은 밀려난 자리에서 기묘한 평온을 감각하고, 신체 내부라는 가장 안쪽의 영역으로 거주지를 옮기기도 하며, 오류로 규정된 상태 안에서 기존의 정상성을 흔든다. 그렇게 구축된 세계는 이미 견고하게 자리 잡은 질서의 틈새로 스며들며 스스로의 몫을 조금씩 확장해 나간다.
박예림의 작업은 인간의 사용 목적과 관리 체계에서 이탈한 장소를 직접 찾아가는 답사에서 시작된다. 작가는 오랜 시간 방치되어 통제가 느슨해진 공간을 신체로 통과하며, 그 안에서 목격한 장면과 남겨진 물질, 흔적들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작가가 답사에서 주로 맞닥뜨리는 대상은 오래 방치된 곳에 남아 버텨온 괴괴한 유기물로, 해지고 바짝 마른 형상으로 존재한다. 작가는 이를 작업실로 옮겨와 작품의 뼈대로 만들거나 캐스팅하고, 관찰한 표면을 조각과 판화의 피부로 옮긴다. 그러나 자연과 시간, 우연이 겹치며 형성된 낭만적 상태를 그대로 재현하는 일은 언제나 불가능에 가깝다. 작가에게 있어 ‘낭만적 상태’란 인간의 이해와 계획으로는 끝내 도달할 수 없는 불안정하고 예측 불가한 조건들의 총체로, 그는 이 거리를 인식하면서도 대상에 대한 동경을 거두지 않은 채, 모방과 실패의 과정을 반복한다.
이번 전시에서 박예림은 답사에서 만난 폐허의 풍경을 전시장으로 불러온다. 한때 인간의 의지로 만들어진 구조물은 완전히 소멸되기보다, 시간의 겹 속에 붕괴되고 산화되며 본래의 질서와 기능을 잃어간다. 그러나 모든 것이 끝난 듯 보이는 순간에도 남겨진 것들의 변화는 멈추지 않는다. 다부진 형상이 허물어진 자리에서 물질은 시간과 사건, 예기치 않은 개입에 반응하며 흔들리고, 고정된 상태로 수렴되기를 거부한다. 전시장 바닥에 낮게 가라앉은 설치 작품 〈그들은 떠날 것이라고 말했고〉(2025)는 관객이 다가가는 순간,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한다. 공기를 떠도는 뒤엉킨 소리들은 바깥으로 이어진 금속관을 따라 퍼져 나오고, 집은 하나의 악기가 되어 과거와 지금, 여기와 저기의 소리를 동시에 울린다. 이때 남겨진 구조는 더 이상 정지된 흔적이 아니라 하나의 상황으로 작동한다. 한편 창문 너머에 걸린 판화 〈습관〉(2025)은 기능하던 인간의 신체와 소멸된 신체의 형상을 하나의 화면 위에 겹쳐 놓으며, 비워진 내부가 사라진 존재의 기억을 보관하고 환기하는 장소가 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
박예림의 폐허는 멈춰 선 장면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에서 발생한 사건들이 스며들며 이어지는 과정으로 존재한다. 시간은 이곳에서 더 이상 선후로 구분되지 않으며, 관객은 뒤엉킨 구조 안에서 시작을 보지 못한 것과 마지막에 남을 것들을 동시에 떠올리게 된다. 박예림은 인간 중심의 시간에서 이탈한 존재들이 여전히 각자의 리듬으로 지속되고 있음을 목도하며,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 폐허의 시간 속으로 계속해서 걸어 들어간다.
송지유는 자신을 둘러싼 사물과 공간 안에 머무르며, 그 안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감각과 피어오르는 몽상을 따라 작업한다. 드로잉, 조각, 글 등 매체에 경계를 두지 않고, 가장 적합한 방식을 골라 손을 움직인다. 작업에 사용되는 것은 살다 보니 몸에 걸린 사물, 부서진 조각, 언젠가 사둔 재료, 스며드는 빛처럼 가장 예사의 것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있는 그대로 재현되지 않고, 작가의 시간과 몸을 통과하며 기억과 감각이 겹쳐진 몽환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작업의 과정에서 그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미리 결정하지 않은 채, 감정과 기억을 따라 쌓고 깎고 그리고 오려내고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을 이어간다. 그렇게 반복되는 선택과 유예 끝에 남는 것은 아주 작은 씨앗과 같은, 온화하면서 분명한 감각이며, 각자의 시간을 통과한 작업들은 어느 순간 서로의 곁에 모여 하나의 장면을 이룬다.
이번 작업은 악몽에 시달리던 시절, 어머니가 건네준 작은 라파엘상을 머리맡에 두고 잠들던 기억에서 출발한다. 성경 속 힐러로 등장하는 대천사 라파엘은 늘 인간과 함께 다니며 누군가를 치유하는데, 하나가 또 다른 하나와 나란히 있는 장면은 자연히 그 사이에서 생겨나는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윈도우 공간을 점하는 작업 〈무엇을 담을까 (담을까) 무엇을 버릴까 (버릴까) 버렸나 (버렸나)〉(2026)는 이러한 관계가 서로 다른 형태와 거리로 이어지는 흐름을 따라 전개된다. 실수로 세 개만 도착한 테이블 다리는 세상을 떠받치던 아틀라스의 이야기와 만나 지탱 가능한 구조가 되고, 먹다 남은 체리 씨앗의 붉고 파란 색은 일출 직전 하늘의 푸른 빛을 떠올리게 한다. 매일같이 창밖으로 바라보았던 레몬 빛의 일몰은 언젠가 읽은 소설에서 얇은 바늘에 반사되던 캐모마일 빛과 겹쳐지며, 오른쪽 가장자리에 놓인 천사의 얼굴은 왼편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이야기들을 향한다. 각각의 조각들은 마치 희극의 무대 위에서 여기에 “있다면” 저기에도 “있다”고 말하듯, 곳곳에서 코러스처럼 울려 퍼진다. 전시장 안에는 매일 오후, 작가의 작업실로 쏟아지던 해를 담은 스톱 모션 영상이 천막 사이로 새어나오며 나른한 빛을 드리운다. 해를 오리던 손의 움직임에서 떠오른 사과 깎는 소리와 나무 작업대, 그리고 조각을 고정하던 도구의 흔적은 손의 노동이 그 자체로 축적된 시간이자, 작품을 이루는 또 하나의 이야기임을 드러낸다.
오정민은 신체 내부에서 발생하는 감각을 회화의 언어로 시각화한다. 그의 회화는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온 질병을 겪으며 마주한 내부의 변화를 관찰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때의 관찰은 보고, 듣고, 만지는 가시 세계의 감각을 넘어서는 상상력을 요한다. 뭉근하게 몸을 데우는 열감,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뒤엉키는 배열, 세포의 생성과 소멸이 만드는 큰 진폭의 울렁거림과 같이 병이 주관하는 몸속의 사건들은 의도적인 제스처와 우연에 가까운 물질적 만남들이 겹치며 가변적인 풍경으로 전환된다.
이번 신작에서 오정민은 ‘번지기’와 ‘들어가기’의 운동태를 통해 자기 몸과의 거리감을 재조정한다. 〈가라앉지 않는〉(2025)에는 사람의 신체 규모를 훌쩍 넘어서는 화면 위로, 선후를 가늠할 수 없는 붓질의 흔적들이 반투명하게 굳어가며 표면을 봉합하는 왁스와 함께 뒤엉켜 뿌연 장막을 이룬다. 몸이라는 가장 내밀한 장소에서 나의 의지를 넘어서는 일들이 끊임없이 번져가고 있다는 생경한 감각은 몸의 경계를 이탈해 밖보다 큰 안을 상상하게 만든다. 내 안을 파고들며 자라나던 것들은 어느새 서로를 옭아매며 나의 크기를 벗어난 새로운 덩어리를 낳는다. 한편 〈겹쳐진 곳을 지나〉(2025)에서는 다시 몸을 기울여 피막을 뚫고 내부로 더 깊이 들어가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작가는 중첩된 감각 한가운데로 한 걸음 더 들어가 그 내부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표면 아래에 산개한 진동과 분출, 해체와 엉킴이 반복되는 속살 같은 흔적들은 서로 다른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리듬과 겹겹이 쌓아 올린 색의 층위를 통해 응축된 상태로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처럼 오정민의 회화는 완전히 이해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신체 내부의 움직임을 따라 끊임없이 유동한다. 작가는 보거나 만질 수 없는 것들을 화면 위에 임시적으로 불러내며, 불완전한 몸이 외화 할 수 있는 장소를 짓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감각과 물질, 우연과 예감이 교차하며 하나의 감각장으로 확장된다.
이동현은 신체 깊숙이 각인된 기억이나 욕망을 호출하며, 안과 밖을 오가는 몸의 연결 구조를 통해 외부와 연결되는 방식을 탐구한다. 내장과 구멍을 통해 은밀하고 수치스럽고 쾌락적인 기억들이 배출되고, 동시에 타인의 흔적들이 흘러 들어와 내 것과 뒤섞인다. 한편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위치한 건물 배관에서 연기나 오수가 배출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순간, 그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의 몸처럼 작동하는 긴 연결을 감지한다. 저마다 다른 곳에서 출발한 물질들이 파이프를 따라 이동하며 출처를 가늠할 수 없게 혼재되는 풍경 속에서, 다른 이와 연결되기를 바라는 비밀스러운 소망은 배관의 구조를 타고 퍼져 나간다.
이번 전시에서 이동현은 이러한 연결 구조에서 착안한 조각 설치와 영상 작업을 선보인다. 점화와 배출을 위해 제작된 두 개의 캡슐 장치는 창자처럼 이어져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무형의 연기가 이 연결의 증거로 수집된다. 몸을 욱여넣어야만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비좁은 점화구는 신체를 압박하는 밀폐된 환경 속에서 서로의 야만성을 일깨우는 감옥 같은 공간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이 구조를 손창섭의 단편소설 『인간동물원초』(1955)가 그려낸 감방과 겹쳐 본다. 인간 십여 명이 갇혀 있는 제한된 공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그 안에서 형성되는 폭력의 질서와 자기본위적 충동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감방 안팎을 잇는 유일한 통로인 작은 창문을 사이에 두고 교차하는 시선은 흔적을 가두는 점화구와 외부로 분출하는 배출구 사이의 흐름과 맞닿는다. 배관을 따라 이동하는 이 흐름은 안과 밖, 능동과 수동, 위반과 순응의 역학을 가시화한다.
이동현은 소설의 주요 인물이자 감방 내 두 번째 권력자인 ‘주사장’을 위한 고백의 자리를 마련한다. 원초적인 본능을 거리낌 없이 휘두르는 포식자처럼 보이지만, 힘의 논리에 철저히 복무하며 끝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단 한 번도 얻지 못한 주사장의 모습에서 작가는 그 뒤틀린 욕망이 결코 타자의 것만은 아님을 인식한다. 영상 〈주사장의 고백〉(2026)에는 사건의 바깥에서 이를 관찰하는 타인의 시선과 내부에서 모든 충동과 감각을 통과하는 당사자의 시선이 뒤엉켜 있다. 긴 시간 장치를 닦고 조이며 연결하는 반복적인 행위를 마친 뒤, 작가는 들숨과 날숨을 서서히 내뱉는 캡슐 안으로 몸을 밀어 넣는다. 연막탄이 남긴 핑크빛 흔적들이 피부막처럼 둘러싼 내부는 외부의 규칙이 유예된 은밀한 보금자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안에서 그는 소리를 지르고, 울고, 웃으며 독백에 가까운 고백을 토해낸다. 두서없는 진심과 감추려 하지만 기어코 새어 나오는 원초적인 욕망은 밀폐된 공간 안에서 천천히 더께를 쌓아간다.
이희단은 동시대 미디어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전형화된 여성의 이미지를 포착하고, 그들이 놓인 환경이 내포한 기묘한 정서와 충돌시킨다. 실사, 2D 애니메이션, 생성형 AI 이미지 등 다양한 도구로 구현된 영상 속 인물들은 화려한 꾸밈과 과장된 제스처, 이른바 극단화된 여성성을 수행한다. 이들은 관습적 시선을 강화하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그 내부에서 균열을 일으키며 스스로를 역으로 분해한다.
작가는 무엇이든 빠르게 생산되고 소비되는 오늘날의 소비 문화를 겨누며, 어떤 대상이 어떠한 욕망의 형태로 유통되는지를 드러낸다. 신작 〈Wreckers〉(2026)에서 그는 동시대 자본주의 소비 미학의 정점에 놓인 두 대상, 자동차와 여성을 병치한다. 제 기능을 다한 이후에도 마디마디 분해되어 남김없이 소진되는 자동차의 운명과, 끊임없이 대상화되며 픽셀 단위로 분절되어 유통되는 여성의 존재 방식은 서로를 비추며 닮아 있다. 영상은 도로 위를 질주하는 운전자의 시선과 여성을 관찰하고 소비하는 관음증적 시선, CCTV의 건조한 시선이 교차하며 전개된다. 게임 캐릭터, 모델, 핀업 걸과 같이 암묵적으로 작동하는 미디어의 규칙을 따라 만들어진 여성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텅 빈 운명을 되뇌다 이를 비웃듯 스스로 차에 오르거나 그것을 부수기에 이른다. 화면 곳곳에 산발적으로 튀어나오는 기술적 결함과 오류는 폐차 시퀀스의 폭력적인 에너지와 맞물리며, 이들에게 새로운 운동성과 균열을 부여한다. 한편 차의 거센 움직임으로 형체가 식별 불가능하게 매핑된 여성 운전자의 데이터를 철판에 전사하고 이를 소음기, 블랙박스 등의 폐차 부품과 결합한 〈Junky Dates〉(2026)는 영상 속 소비되고 소멸될 운명에 놓인 이미지가 잔해처럼 남아 변이되는 지점을 드러낸다. 시선과 기술, 자본의 회로에 얽혀 있던 이미지는 파편화된 상태로 기존의 질서에서 튕겨져 나와 재구성된다.
다섯 명의 작가는 자신의 영역을 과도하게 넓히거나 다른 이를 대신해서 말하려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계속해서 자신의 테두리를 살피고 다듬으며 바깥과의 희미한 연결 고리를 만든다. 하고 싶은 일은 종종 의지의 언어로 드러나지만,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하지 않아야 할 일은 조건과 관계 속에서 조용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는 섬세하게 주위를 살피고, 불안정하게 변화하는 것들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발끝에 힘을 주어 균형을 유지하는 일과 같이 사려 깊고 정직한 선택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 강하람, 유진영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박예림(b. 1998)은 조각, 설치, 판화를 오가며 작업한다. 크라우파-투스카니 차이들러(2025, 베를린, 독일), LDK(2024, 서울), 실린더1(2023, 서울)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프라이머리 프랙티스(2025, 서울), 실린더2(2025, 서울), 살롱한남(2024, 서울), 디스위켄드룸(2023, 서울)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송지유(b. 1996)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조각, 드로잉, 설치 작업을 한다.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2024, 서울)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YPC 스페이스(2025, 서울), 하이트컬렉션(2024, 서울), 파이프갤러리(2023, 서울), 유영공간(2022, 서울) 등에서 열린 전시에 참여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창작스튜디오 10기(2025, 서울)에 입주한 바 있다.
오정민(b. 1994)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회화 작업을 한다. 다이브 서울(2022, 서울)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피코(2025, 서울), 황금향(2024, 서울), 뮤지엄헤드(2023, 서울), 스페이스 카다로그(2023, 서울), 갤러리 인(2022, 서울)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동현(b. 1993)은 드로잉, 퍼포먼스, 조각, 영상을 오가며 작업한다. 엑스라지(2025, 서울), 스페이스 카다로그(2024, 서울)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청년예술청 SAPY(2025, 서울), 프리즈 하우스 서울(2025, 서울), 수치(2024, 서울)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인터럼(2024, 서울)에서 퍼포먼스를 발표한 바 있다.
이희단(b. 1996)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조각과 영상을 만든다. 가삼로지을(2021, 서울), 공간 형(2019, 서울)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LDK(2024, 서울)에서 스크리닝을 진행했다. LDK.DT(2025, 서울), 아트 포 랩(2024, 안양), 서울대학교미술관(2024, 서울), 씨알콜렉티브(2024, 서울), 화이트노이즈(2024, 서울) 등에서 열린 전시에 참여한 바 있다.
기획: 강하람, 유진영 │진행 보조: 이예인, 이윤서, 장보미, 홍서희
전시제목두산아트랩 전시 2026
전시기간2026.01.28(수) - 2026.03.07(토)
참여작가 박예림, 송지유, 오정민, 이동현, 이희단
관람시간11:00am - 07:00pm
휴관일일, 월 휴관
장르회화, 설치
관람료무료
장소두산갤러리 DOOSAN Gallery (서울 종로구 종로33길 15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
기획강하람, 유진영
연락처02-708-5050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적군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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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마미술관
2025.09.26 ~ 2026.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