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더펑
≪명멸하는 장엄≫ installation view,
진더펑
파각 - 수많은 깨달음 破壳--万仟菩提, 2018, acrylic on canvas, 200×540cm
진더펑
≪명멸하는 장엄≫ installation view,
진더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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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더펑
≪명멸하는 장엄≫ installation view,
진더펑
미륵 弥, 2016, fiberglass, stainless steel, 80×45×45cm
진더펑
≪명멸하는 장엄≫ installation view,
명멸하는 장엄
‘그림을 부순다(破畵)’란 주제로 진더펑(金德峰)이 추구해 온 작업은 ‘파각(破壳, Broken Shell)’, ‘파동(破洞, Hole)’, ‘파해(破解, Decoding)’ 연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껍데기를 부수는 파각은 경계의 파열을 의미한다. 그런가 하면 화면에 무수하게 뚫어놓은 구멍이 블랙홀처럼 표면의 이미지를 빨아들이는 파동에서 마치 화면을 찢어놓은 듯한 상흔 같은 검은 구멍들은 공허의 심연이라 할 수 있다. 파해는 동일 형상 또는 패턴의 반복을 통해 화면의 균질화를 추구하고 있으나 기표처럼 부유하는 부호나 기호를 통해 의미를 독해 또는 재구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부순다’는 뜻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이 연작들은 모두 미술의 구태의연한 관습을 벗어난다는 선언적 의미를 담고 있다.
파괴는 그가 샤먼에서 미술대학을 다닐 때 목격한 중국 현대미술운동의 한 흐름인 ‘샤먼 다다’의 충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당시 황용핑(黄永砯) 등이 보여주었던 과격한 행위예술의 기억은 그가 사실주의 화풍으로 1992년에 가진 첫 개인전 이후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법을 찾으려 할 때 되살아났다. 직접적으로는 2008년 베이징의 숭좡(宋庄)에 작업실을 마련하였을 때 목격하였던 현실, 즉 급속한 자본주의화에 따라 눈앞의 이익만 좇는 중국 미술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시간이 그의 작업에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그는 샤먼으로 귀향하기 전 숭좡에서 지낸 8개월 동안 제작했던 작품들을 모두 가위로 잘라버렸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이러한 행위는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에서 표현한 알을 깨고 나오는 새의 고통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는 남들과 다른 작업을 하기 위해 다다에서 발견할 수 있는 부정과 파괴의 정신을 회화의 관습을 파괴하는 것으로 승화시켰다.
그가 왜 부수는 작업에 천착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이 세 연작의 대표적인 작품을 중심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먼저 ‘파각’ 연작에 속하는 <파각-수많은 깨달음(万仟菩提)>을 보면 붉은색 계열의 꽃잎과 원으로 이루어진 녹색의 형태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런데 꽃잎의 붉은색도 수많은 원과 점으로 가득 채워진 까닭에 보색이 주는 시각적 자극과 함께 화면 전체를 현란한 빛과 색의 축제로 이끄는 듯하다. 심지어 꽃잎과 녹색 원반 사이의 짙게 칠한 부분도 무수하게 많은 색점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공간의 깊이나 원근은 사라지는 대신 화면은 균질한 평면으로 환원하고 있다. 점 하나는 물론 형태의 윤곽을 결정하는 선까지 섬세하게 그리는 엄청난 공력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매우 디지털적이다. 그러나 디지털의 기계적 공정이 만들어낸 건조한 결과와 달리 그의 작품은 거의 수행에 가까운 집요한 노동의 산물인 까닭에 생명의 숨결을 지니고 있다. 근접 촬영한 꽃을 묘사한 것 같지만 세포 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집요함에서 볼 수 있는 공예적 기량과 장식성이 만들어낸 이 작품은 뜻밖에도 초현실적 풍경을 보여준다. 꽃잎의 중심마다 그려 넣은 눈은 불화(佛畫)의 부처나 보살의 눈을 연상시킨다. 이 눈은 우리를 화려한 화면 속으로 빨려들도록 이끈다. 다른 관점으로 보자면 그림 속 응시하는 눈에 의해 우리의 존재가 노출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기도 한다. 기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꽃의 아름다운 장식성 이면에 숨겨진 수많은 ‘응시’는, 존재의 근원적 쓸쓸함과 인식의 무한한 확장을 동시에 시사한다.
같은 주제의 <응시가 극본이 되었을 때(当凝望成为剧本)>은 솟아오른 봉우리의 강렬한 주황색과 붉은색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 녹색의 산맥이 거대한 화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가운데 전통 복장을 한 인물이 청색의 절벽 위에서 이 웅장한 자연을 감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대경(大景) 산수인물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 풍경은 현실의 자연을 묘사했다기보다는, 내면의 풍경이나 격렬한 감정이 응축된 환영적인 산수에 가깝다. 그러나 작품은 산수화와 전혀 상관없다. 단지 산수화의 구도만 가져온 이 작품의 화려한 색채와 마치 유리구슬처럼 투명한 원들이 불러일으키는 신비로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쓸쓸함’이 느껴지는 것은, 이 풍경이 실제 우리가 발 딛고 선 세계가 아닌, 고립된 몽환(夢幻)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두 작품에서 화려한 표면에 비해 압도적인 크기는 숭고의 아름다움마저 느끼도록 만든다. 반면에 인간적 규격으로 동물, 인물, 식물에 집중한 ‘파동’ 연작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형식적 특징은 화면에 무수하게 뚫린 검은 구멍이다. 화려한 표면에 난 균열이자 우리가 모르는 낯선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입구이기도 한 구멍은 화면에 생동감과 함께 입체감을 부여하는 요소이다. 그것은 화면을 채우고 있는 형태와, 색, 그것을 연결하는 선이 살아있도록 만드는 숨구멍이기도 하다. ‘파동’ 연작에서 수초 사이를 가로지르며 유유하게 헤엄치는 한 쌍의 오리 또는 원앙을 표현한 <파동-사랑의 계면(爱的界面)>을 보면서 송대 휘종(徽宗)의 화조도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작품을 21세기 버전의 화조도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연작에 등장하는 부처의 형상을 보면서 불교를 떠올릴 수 있으나 진더펑의 작품에서 형상이 지닌 의미는 중요하지 않다. 이런 점은 화면에 동일한 패턴을 반복적으로 채워 형상의 서사적 의미를 비우는 ‘파해’ 연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연작의 하나인 <파해-평등의 산마루(平等山頭)>는 산이라는 자연 대상을 기하학적 패턴으로 치환한 균질화된 구조를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산은 더 이상 자연이 아니다. 그것은 수치화되고 도식화된 현대 문명의 기호이자 현대 사회의 규격화된 제도를 상징한다. 보기에 따라 무의미할 수 있는 동일한 패턴의 반복은 공예적으로 보이기조차 한다.
회화를 부수기로 결심한 그는 쑤저우 자수(苏繡), 법랑(景泰蓝)의 정교한 금실 세공(掐絲)과 같은 중국의 전통 공예뿐만 아니라 전통 연화의 화려한 원색에 주목했다. 그는 자신만의 고유한 기법을 만들기 위해 이방연속과 사방연속의 구성 미학으로 ‘파괴를 통한 재생(毀滅重生)’의 방법을 창안했다. 즉 판화 기법을 이용해 화면에 음양의 구조를 만든 후 점을 찍어 화면을 무수한 세포로 이루어진 생명체처럼 표현한다. 그의 화면에서 선은 한의학에서 인체 내의 기와 혈이 흐르는 통로를 의미하는 경락(經絡)처럼 화면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모세혈관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 작품들을 효과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시점이 필요하다. 먼저 일정한 거리를 두고 표면적인 이미지와 독특한 빛과 색의 효과, 재료와 기법이 만들어낸 시각적 특징을 보는 원관(遠觀)의 과정을 거쳐 재료와 질감 효과가 표면 이미지와 얽혀 시각과 의미 사이의 충돌을 일으키고, 관람자로 하여금 이미지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의미의 중첩과 왜곡을 재고하게 만드는 중관(中觀)에 이르게 된다. 마지막으로는 화면에 근접하여 작품을 보는 근관(近觀)에 이르러서야 표면 이미지는 사라지고 재료와 질감은 중관에서 발생한 시각적 파괴와 의미 왜곡을 기반으로 시각적 재생과 의미 재구성을 완성한다.
진더펑의 작품에서 혼색을 하지 않은 화려한 원색은 연화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원색 못지않게 두드러진 형광색과 네온사인 효과는 중국 개방개혁의 상징이자 자본의 팽창이 빚어낸 찬란한 인공광으로 넘쳐나는 샤먼의 도시문화로부터 자극받은 것이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그가 목격한 현대의 미학은 번영의 금빛과 소멸의 어둠이 공존하는 이원적 풍경이었다. 그는 이 휘발적인 광경을 단지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화려한 장식성과 쓸쓸하고 공허한 심연이 역설적으로 공존하는 화면을 창출했다. 그는 샤먼의 네온사인에서 발견한 명멸하는 환영이 불러일으키는 찰나의 쓸쓸함과 불안을 경락과 같은 선의 체계로 엮어 화면에 생성과 소멸이 순환하는 생명의 지도를 그린다. 무수한 선들은 생명의 그물망이자 화려한 도시에 내재한 소외의 상처를 치유하는 예술적 침술이기도 하다.
집요한 수공적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진더펑의 작품은 수행적 노동의 결과이다. 그는 명멸하는 도시의 형광 불빛과 부유하는 삶을 포착하여 찰나의 허상을 표현하되 화려함을 시각적 유희가 아닌 장엄으로 향한 수행으로 실천한다. 그의 이러한 태도와 방법은 소멸해 가는 것을 장엄이란 예술적 의식(儀式)을 통해 다시 살려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생성-파괴-소멸-재생이란 유기체적이고 변증법적 과정이 함축된 그의 작업의 출발점이 ‘회화를 부순다’였다는 사실로 돌아가 보자. 중국 선종에서 남종 5가의 한 가문인 임제종의 종조인 임제의현(臨濟義玄)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逢佛殺佛)”고 설법했다. 깨달음을 상징하는 개념적 대상인 부처나 조사, 이라한에 집착하지 말고 스스로의 본성을 드러내라는 이 가르침은 비단 종교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진더펑은 자신만의 어법을 구축하기 위해 회화의 타성을 부수고자 했다. 그가 부수고자 한 것은 회화의 형식뿐만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허구적 이론의 아성(牙城)이었다. 화면과 대결하는 집요하고 지독한 노동에 헌신하는 그의 수행적 태도는 여러 색의 모래로 만다라를 그리는 티베트 승려의 장엄 행위를 떠올리게 만든다. 진더펑의 사상과 방법은 『데미안』의 다음 구절과도 맞닿아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헤세에게 알이 고착화된 가치관이나 안락한 유년기의 세계를 의미한다면, 진더펑에게 그것은 전통적인 회화의 틀이자 샤먼과 같이 고도로 자본화된 사회의 화려한 물질적 풍요의 외피이다. 아브락사스는 선과 악, 빛과 어둠이 결합된 신이듯이 그의 작품에는 음과 양, 생성과 소멸, 화려함과 쓸쓸함이란 양가성이 공존한다. 결론적으로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명멸하는 장엄’은 이러한 양가성을 잘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파괴를 통한 창조, 이원성의 통합을 향한 회화적 선택의 결과이기도 하다.
최태만 | 국민대학교 교수·미술평론가
전시제목진더펑: 명멸하는 장엄
전시기간2026.02.27(금) - 2026.04.26(일)
참여작가 진더펑
관람시간11:00am - 06:00pm
주말, 공휴일: 11:00am - 06:30pm
휴관일없음
장르회화
관람료3,000원(카페 이용 시 무료)
장소아트센터 화이트블럭 Art Center White Block (경기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72 (법흥리) )
주최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주관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후원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메세나협회 / 지원: (주)자모네
연락처031-992-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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