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팔렝프세스트, In the memory of a palimpseste'
2006.11.01 ▶ 2006.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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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원
무제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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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팔렝프세스트(In the memory of a palimpseste')
사진은 있는 대상을 그대로 재현한다. 그러나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언제나 특이한 형태를 재현하거나 그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사진은 오히려 심리적 재현 장치로서 예견치 않은 대상으로부터 추상적이고 심정적인 것을 재현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럴 경우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사진 이미지는 상황 그 자체의 설명이 아니라 최초 작가가 포착한 극히 주관적이고 원인적인 무엇(생성)을 암시한다.
이러한 심리적 장치에서 사진은 더 이상 대상을 복제하는 도구가 아니라 어떤 형이상학적인 것을 재현하는 정신적 이미지가 된다. 특히 “사진은 기억적인 은유(필립 뒤봐)”라고 단언하듯이 사진 이미지는 과거 지나간 장면의 시각적 재현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자신이 과거 경험한 기억은 언제나 장면 그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불확실하고 모호한 기억을 암시하거나 재구성하게 하는 어떤 단편적인 사물로 위장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위장은 무의식적인 심리기능에서 “응축”이나 “이전(移轉)”으로 설명된다. 응축은 예컨대 과거 첫사랑의 달콤한 기억이 그 여인의 스카프로 축약되어 나타나는 경우를 말할 때, 이전은 특히 꿈에서 촛불의 불꽃이 한편으로는 꽃봉오리로도 보이고, 예쁜 젖가슴으로도 보이고, 심지어 산봉우리처럼 보이기도 하는 경우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꽃봉오리, 젖가슴, 산봉우리는 공통적으로 연상자 자신의 억압된 욕구와 무의식적 충동에 관계한다는 사실이다.
프로이드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보고 들은 것들은 쉽게 잊어버리지만 어린 시절의 특별한 충격이나 사건들은 다소 분명히 기억한다”라고 언급하면서, 의식에 떠오르는 단편 이미지들은 단순히 시각적인 사실이 아니라 그 단편적 사물이 이끌고 있는 과거 기억적인 인상이나 음색에 관계한다고 설명한다. 사실상 과거 어떤 상황이나 사물에 각인된 인상이나 음색은 평소 우리의 의식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인상은 예견치 않은 어떤 단편적인 자극물에 의해 언제 어디서든 의식에 돌출되는데 사진 이미지는 바로 이러한 자극물들 중 탁월한 자극물이 된다.
여기 보여주는 작가 강기원의 꽃과 풀 사진들은 바로 이러한 위장된 기억의 단편들이다. 물론 그의 사진들은 첫 눈에 얼핏 꽃무늬 장식이나 도안을 위한 모자이크 패턴 혹은 작가의 모든 서정성을 비우는 유형학적 식물도감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라도 사진은 작가 자신의 경우를 떠나지 않는다. 사진들은 정 반대로 작가 자신의 기억적 단편으로서 과거 각인된 심리적 인상(impression)에 대한 정신적 흔적이나 자국으로 이해된다. 게다가 의도적으로 짙은 어두운 색조의 흑백 이미지는 희미하게 사라지는 기억의 은유를 더욱 분명하게 한다.
작가가 “나의 작업에는 거의 20년 가까이 보낸 나의 고향 산골마을의 어렴풋한 기억들이 나를 따라 다니면서 언제나 마음속 깊이 내재하고 있다”라고 진술하듯이, 사진으로 나타난 이미지들은 의심할 바 없이 바로 작가 자신의 이야기들이다 :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온 가족이 꾸불꾸불한 논길을 따라 윗동네로 이사를 가던 단편적인 장면, 새벽의 논길에 맺힌 이슬과 질경이 억센 풀, 여름이면 소를 몰고 꾸불꾸불한 산길을 따라 가던 어렴풋한 기억, 집 뒤 대나무 밭에서 부스럭거리는 대나무소리 그리고 처음 아들에게 지게를 맞기고 뒤뚱거리는 모습을 보며 웃음 짓던 아버지의 정겨운 미소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작가 노트에서).
이와 같이 작가의 사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진 읽기의 특별한 개종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미지가 은닉한 메시지는 작가 고유의 내부적 경험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미지들은 단순한 도안이나 유형학적 자료가 아니라 작가 자신의 어떤 발생적인 존재가 물질 이미지로 이동하는 개념적 전이물(轉移物) 즉 심리학적 관점에서 아주 특별한 인상이나 강렬한 여운이 만드는 일종의 은폐기억(souvenir-écran)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지시적인 특징을 가지는 사진 이미지는, 찍혀진 대상과 그 지시대상 사이의 논리적인 유사 관계가 아닌 물리적 원인 관계(지표 index)에서,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미지를 있게 한 상황적 원인성으로 응시자 각자의 경험적 상황에 따라 유추될 뿐이다. 이때 사진은 기능으로 위장된 진술일 뿐 사실상 그것이 지시하는 것은 물질적인 결과가 아니라 무기표의 신호로서 작가 고유의 “내재적 공명(共鳴)”이 된다.
작가가 독백 형식으로 우리에게 던지는 궁극적인 것은 자신의 삶에 투영되는 현재와 과거에 대한 존재론적 의문이다. 작가가 오랫동안 집착해 온 것들, 더욱이 노동과 일 그리고 직업으로서 몰두해 온 소재들 예컨대 계절이 바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수많은 꽃과 이름 모를 풀,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길가 하찮은 잡목 더미, 반복되는 장판 무늬와 같이 아무렇게나 돋아 있는 잡초들은 단순한 대상의 시적 감동이나 자연 예찬이 아니라 바로 작가 자신의 경험적 존재의 증거로서 부유(浮遊)하는 기억의 단편들이다.
결국 작가의 사진들은 단순히 무엇을 설명하기 위한 사진이 아니라 보이는 세상(le visible)을 넘어 보이지 않는 세상(l'invisible)을 “누설하는” 사진들이다. 그것들은 또한 작가의 은밀한 기억이 무의식으로부터 의식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이미 가변적으로 위장되어 나타나는 기억의 단편들임과 동시에 우리 모두의 공통된 삶의 애환이다. 그때 직감적으로 감지되는 형용할 수 없는 무엇의 순간 포착은 과거로 소급되어 드러나는 삶의 침전물로서 오랜 세월 동안 내면 깊숙이 침전된 욕망과 믿음, 더 이상 이룰 수 없는 아쉬움과 더 이상 볼 수 없는 얼굴들에 대한 일종의 반복적인 주술 즉 동어반복 형식으로 출현하는 기억의 팔렝프세스트1)이다.
1)팔렝프세스트(palimpseste) : 씌어 있던 글자를 지우고 다시 글자를 써넣는 양피지.
이경률 (사진이론가)
1972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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