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권현빈
전시 전경
권현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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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빈 개인전 《We Go》는 이미 완료된 듯 보이는 대상들의 움직임을 상상한다. 이때의 ‘우리(We)’는 조각을 둘러싼 여러 주체를 포함하며, ‘움직임(Go)’은 조각이 담보하는 여러 종류의 운동성을 지시한다. 이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몇 번의 시간 이동과 거리 조정이 필요하다.
권현빈은 자신의 조각이 물질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들여다보고 그것이 안내한 길을 좇아 함께한 시간의 흔적이라 여긴다. 돌을 주재료로 다루는 그는 돌의 누수 지점을 찾는다. 오랜 시간을 바라보다가 기꺼이 갈라지기를 허락하는 돌의 틈새를 찾아 쪼개고, 두드리고, 파내거나 붙여 보는 행위들.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 듯한 선과 면과 색은 그저 이 행위들의 궤적에 가깝다. 권현빈에게 시간의 적층이 뒤엉킨 돌에 이 같은 조각적 행위를 가한다는 것의 의미는 완결로 도달하는 게 아닌 계속해서 작아지며, 틈새를 통해 나아가는 상태를 예고한다.
그렇다면 거의 영원의 시간이 응축된 듯한 돌의 시간을 가늠하는 일은 가능한 것일까? 작가에 의해 돌은 잠시 움직임을 멈춘 듯 익명의 형상을 갖게 되었다. 쪼개진 파편은 커다랗던 전체를 상상하게 하고, 그어진 선은 어딘 가에 맞닿을 모서리를 떠오르게 한다. 채워 넣은 검은색 잉크는 모든 색과 빛을 흡수한 듯한 깊은 어둠을 낳는다. 그러나 이내 돌은 정박한 상태를 경계하듯 더 깊은 내부로 침투하던 색을 흘려보내기도 하고, 더 작은 면면으로 부서지기도 하며 자연의 일부로서 자신의 시간이 여전히 멈추지 않았음을 감각하게 만든다.
이들을 현재의 전시장으로 불러올 때 주체는 조각을 감상하는 자들로 확장된다. 회화를 감상하는 행위가 주어진 단면을 보고 이른바 환영(illusion)을 상상하는 일에 가까운 것이라면, 조각을 감상하는 행위는 한 면에서 출발해 그것에 연결된 여러 면을 이어 붙여 하나의 형상을 조립해 보는 일과 같다. 그러므로 이때의 감상은 필연적으로 직접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운동성을 수반한다. 전시장 벽에 걸린 권현빈의 납작한 조각은 언뜻 변형 캔버스에 그려진 추상화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를 증명하기 위해 그 두께가 얼마만큼 입체적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앞서 말했듯 이 조각들이 커다란 전체에서 쪼개져 나온 부분들이라는 점이다. 전시장의 벽을 따라 길게 나열된 부분들의 행진은 하나의 조각, 혹은 하나의 시간이 n개의 면으로 펼쳐진 전개도와 같다.
이제 보는 이에게 주어진 몫은 전개도를 다시 조립해 그 형상과 시간을 추적하는 일이다. 이 시간을 잇기 위해 관객은 전시장 가운데에 서서 내 주위를 둘러싼 조각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해 보거나,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가 그것에 새겨진 희미한 흔적들을 더듬으며 완결되지 않은 어떤 이야기를 상상해야 한다. 그렇게 만든 이의 움직임과 보는 이의 움직임이 교차할 때 발생하는 일종의 조각적 상태는 비로소 분산된 주어들을 그러모으며 서로의 시공간을 이을 실마리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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