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정
그 곶 Oil on canvas, 162.2×130cm, 2024
조윤정
그 곶 Oil and Acrylic on canvas, 162.2×112.1cm, 2024
조윤정
그 곶 Oil on canvas, 162.2×112.1cm, 2024
조윤정
그 곶 Oil on canvas, 116.8×91.0cm, 2023
자연과 호흡하는 법
최서원 / 갤러리 도스 큐레이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육안으로 노출된 환경과 이미지는 날것 그대로의 모습보다는 감추어진 혹은 다소 변형된 형태로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든 이들은 미관상으로, 미학적으로 더욱 맵시가 좋고 다듬어진 것들을 추구한다. 그 대상은 물질적인 사물로 선택되거나 공간 자체로 남아 단숨에 이목을 집중시킨다. 제주도는 누구나 한 번쯤 갈망하는 여행의 목적지 중 하나로 푸르른 바다와 맑은 공기, 드넓은 삼림이 펼쳐진 풍경을 자랑하며 우리를 사로잡는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근사한 경치에 감탄을 금치 못할 만큼 제주도는 우리나라의 여느 곳에서 쉽게 마주할 수 없는 아름다운 자연을 지닌 섬이다. 그러나 이토록 경이로운 화면에 둘러싸인 곳에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모를 사연이 있고 역사 속 씻을 수 없는 과거의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여행객들은 알지 못한 채 그저 관광 명소에 매혹되어 걸음을 뗄 뿐이다. 그렇게 수많은 걸음이 모여 지금의 명승지로 굳건히 입지를 다진 제주도에서 조윤정 작가는 진실로 이 섬을 알아가고 체득할 수 있는 곶자왈이라는 장소를 알게 되고 비로소 물아일체의 온전함을 경험하게 된다. 작가의 작품을 통해 흔히 표면상으로 인지해 왔던 자연의 보편성으로부터 잠시 멀어져 안쪽 깊이 자리한 심지로 들어가 보자.
곶자왈의 지명은 보이는 그대로를 말에 옮겨 담은듯하다. 곶은 숲을, 자왈은 덤불의 의미를 가진다. 나무뿌리가 한데 얽히고설켜 풀숲과 엉켜있는 형상은 마치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꾸며낸 것 같은 관광지와는 달리 본래의 실체를 가감 없이 드러낸 고유한 풍경을 갖추고 있다. 용암으로 인해 울퉁불퉁한 지형이 형성된 곶자왈은 걷기에 다소 불편한 요철이 많아 수려한 정경을 자아내지는 않지만 제주도의 진미가 오롯이 담겨 있는 감초와도 같은 존재이다. 나무 한 그루에서도 끝과 시작을 알 수 없는 무질서한 형체들을 대면하며 작가는 의식의 흐름을 더듬고 서 있는 공간에서 점차 스스로 자연과 완벽히 통일되는 순간을 맞닥뜨린다. 제주도의 고요한 숲속에서 임계점에 다다른 작가는 차곡차곡 기억의 흔적을 풀어나가며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특별한 경험을 기록한다. 우리가 현실에서 무언가와 일체화를 느끼는 순간 현장의 공기와 장소, 바람 등 스쳐 지나가는 모든 요소는 입체성을 잃으며 경계를 소실한다. 공간성을 상실하여 입체와 평면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의 경험은 회화 특유의 2차원적 상태로 조성되며 매우 두드러지는 작품성을 띤다. 먼 거리의 배경이 근거리로 가까워져 오고 근거리의 화면이 원경으로 멀어지는 모습은 시공간을 초월한 일루전의 흔적이 된다. 작가는 페인팅의 평면적 속성에서 나아가 풍경과 대비되거나 유사한 색상을 배치하여 공간을 구성하고 물감 사이의 간격에 배경이 나타나도록 구조화하며 프레임의 제한된 경계로부터 확장된 기법을 구현한다. 선명한 붓질은 이제 막 화폭에 닿았다 떨어진 것처럼 생생한 약동감을 연출한다. 작가에게 있어 붓질은 자연에서 실감한 감정을 재현하는 존재론적 행위가 되며 붓 자국은 수많은 자취를 남긴 하나의 작품으로 이루어진다.
많은 이들이 자연과 하나가 되는 일을 체감해 본 적이 있다고 말한다. 어떠한 인위적 장치나 접근 없이 인간이 온전히 자연에 녹아드는 경험은 기술과 문명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 사이에서 점점 드물어져 간다. 작가는 풍요롭고 무한한 풀과 나무에 파묻혀 숲이 제공하는 숨결에 귀 기울이며 보름달처럼 풍만한 의식을 작품에 투영하고 자연과 동화되어 가는 감각을 전달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품을 마주하며 작가가 이끄는 제주도 곶자왈 한복판으로 들어가 오감을 자극하는 숲의 향기를 느껴보고 아울러 작가가 공유한 무의식의 세계를 통해 사방에서 감싸오는 자연 치유적 힘을 만끽하기 바란다.
작가노트
늘 그렇듯이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곳에 진실이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제주도의 시공간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살펴보면 마치 알면서도 애써 외면했던 것처럼 아픈 역사가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음에 놀라면서 반성하게 된다. 그 현실을 직시하고 전체로써 온전하게 받아들일 때 나와 풍경, 나와 너, 또는 나와 내 자신이 하나가 되어 ‘완전함’에 다다르게 된다. 제주도는 스스로를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듯 하고 또 내가 그 아우라에 감응했을 때 나를 치유시키기도 하는 것 같다.
가꾸어지지 않고 무질서해 보이는 곶자왈에서 나는 제주도의 숨결을 느끼게 되었다. 아름다운 제주도 속에서 숨겨진 듯 보이지만 온전한 제주도의 모습이 담긴 곶자왈에 동화되었던 순간을 담아보고자 했다.
어디가 가지이고 잎인지 마구 형체와 경계를 무너뜨리는 흐트러진 뒤엉킨 곶자왈의 풍경을 마주대했을 때 나 또한 의식의 경계 속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해 내는 과정은 엉킨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내는 것과 같았다.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내며 탄생하는 또 다르게 만들어진 세계는 그 경계 어디쯤 하나의 순간, 찰나를 기록하는 것이라 생각됐다.
숲이라는 공간속에서 그 공간과 일체감을 느끼는 순간은 나와 외부세계의 경계가 사라지게 된다. 삼차원적 공간은 그 공간이 시간성을 초월하게 되면 사라지게 된다. 그 시간 초월적 풍경을 표현하기 위해서 평면에 긴밀하게 엉키면서 배경이 되는 원경이 앞으로 나오기도 하고 엉켜서 뒤로 물러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화면은 평평해지는데 그것을 대비해 회화성을 유지하기 위해 조율하게 된다. 붓질 자체를 살리면서도 형태를 해체하지 않는 방식으로 나아간다. 유화 특유의 긴밀하게 쌓이는 밀도감을 깨기 위해서 밑 작업에 초록풍경과 대비되는 색이나 아예 유사한 블루 계열로 바탕을 깔아주고 하늘 배경을 그 위에 위치시켜서 공간을 해체시켜거나 그 배경이 물감들 사이로 드러나게 하였다. 붓질은 최대한 그 첫 붓질이 살아있도록 칠했는데 그 이유는 붓이 화면에 닿을 때의 행위가 내가 그 풍경에서 느꼈던 그 일체감이 체험되기 때문에 그 행위자체에 의미를 두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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