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dscapes
2024.10.16 ▶ 2024.11.24
2024.10.16 ▶ 2024.11.24
전시 포스터
후지쿠라 아사코
Behind Those Mountains 2023, Single channel video, sound ©Courtesy of the arist
카와시마 히데아키
Dawn 2024, Oil on canvas, 113.3 x 145.5 cm, 44.6 x 57.3 in.©Courtesy of the arist and Tomio Koyama Gallery, Tokyo
쿠도 마키코
Water Surface (ミナモ 2024, Oil on canvas, 116.7 x 91.2 cm, 45.9 x 35.9 in. ©Courtesy of the arist and Tomio Koyama Gallery, Tokyo
츠치야 노부코
protone tail 2024, Mixed media, 120 x 70 x 70 cm, 47.2 x 27.5 x 27.5 in. ©Courtesy of SCAI THE BATHHOUSE
요코야마 유이치
Ourselves 2001, Acrylic, ink, marker, and screentone on paper, 39.5 x 37 cm, 15.6 x 14.6 in.©Yuichi Yokoyama
가나아트는 도쿄 모리 미술관의 큐레이터 츠바키 레이코(Tsubaki Reiko b. 1973-)와 공동 기획으로 진행되는 그룹전 《Mindscapes》에서 일본 현대미술의 다양성과 지형도를 보여주는 6인의 작가 작품 6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에 참여하는 후지쿠라 아사코 (Fujikura Asako, b. 1992-), 가네우지 텟페이 (Kaneuji Teppei, b. 1978-), 카와시마 히데아키 (Kawashima Hideaki, b. 1969-), 쿠도 마키코 (Kudo Makiko, b. 1978-), 츠치야 노부코 (Tsuchiya Nobuko), 요코야마 유이치 (Yokoyama Yuichi, b. 1967-)는 자아와 타자, 꿈과 무의식, 삶과 죽음 등에 얽힌 각자의 내면세계를 회화, 사진, 만화, 조각 및 설치, 비디오 등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풀어낸다. 이번 전시가 여섯 작가의 작품 세계를 통해 동시대 일본 현대미술의 흐름을 살펴보는 기회이자, 각국의 현대미술에 대한 교류를 강화하는 뜻깊은 자리가 되길 바란다.
본 전시는’Mindscapes(심상 풍경)’을 주제로, 개인의 삶에서 특별한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나 공간을 시각화한 여섯 명의 일본 작가들을 조명하는 그룹전이다. 이들이 표상하는 심상의 풍경은 응집된 내면세계를 현실 또는 가상의 이미지들로 조합하거나, 섬세한 감성과 관찰력으로 일상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아낸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풍경들은 객관적이면서도 동시에 주관적인데, 사물과 대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작가의 관념과 감정, 상상 그리고 기억이 반영되어 주관이 객관을 침범하고, 변화시키고,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가들이 심상을 전달하고 미지의 세계를 구현하는 방식은 결과적으로 작품을 초현실적이고 낯설게 만들기도 하며, 때로는 익숙한 풍경을 통해 공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처럼 여섯 작가의 작업에서는 현실 속 공간과 가상의 공간이 서로 연결되어 작동하며, 전통적인 회화의 즉물적 표현에서 벗어나 두 공간의 지각이 교차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후지쿠라 아사코는 가상과 현실이 중첩된 상상 속 도시의 모습을 3D 그래픽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고, 가네우지 텟페이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물들과 세계 각지의 다양한 이미지를 콜라주 하여 물질과 이미지의 관계를 탐구한다. 카와시마 히데아키는 팬데믹 시기에 겪은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통해 삶과 죽음이라는 생명의 순환에 대해 고찰하는 신작을 선보인다. 쿠도 마키코는 일상 속에서 관찰한 소재, 꿈과 무의식과 같은 추상적 감각을 시각화하는 회화 작업을, 츠치야 노부코는 상상력과 우주물리학을 바탕으로 창조한 서사를 중심으로 설치 작업을 전개하며 미지의 우주 세계와 환상적 실제를 표현한다. “시간을 그릴 수 있는 매체”로서 만화를 선택한 요코야마 유이치는 대화 대신 특정 의성어와 역동적인 장면만으로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며, 만화의 전통적인 서사 구조를 재정의한다.
이번 전시는 기억과 경험에서 비롯된 비물질적이고 가상적인 요소들이 현실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현실 또한 이러한 가상적 요소들의 기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식, 실재, 지각이 서로 연결되는 것을 넘어 새로운 내면의 풍경을 창작하고 알아가는 과정은, 가상과 현실이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의미와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들 6인의 다채로운 예술 세계를 조명하는 본 전시가 우리 내면의 심리적, 감정적 감각을 일깨우고 그 의미를 고찰할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큐레이터 서문
‘마인드스케이프’(심상 풍경)란 일반적으로 생각, 감정, 기억, 지각 등 개인의 심적 풍경 또는 주관적 체험을 뜻한다. 또한 인간 의식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는 비유적 개념이기도 하다. 현실에 존재하는 물리적 공간은 개인의 체험과 기억, 때로는 무의식과 뒤섞여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일상에서 상대적으로 친숙한 장소는 안전하다고 인지하지만, 처음 방문하여 위험 요소가 도사리는 장소는 신선함을 느끼면서도 주의를 기울이곤 한다. 예를 들어, 실제로 가본 적이 없는 장소일지라도 다양한 정보를 통해 알고 있는 풍경이라면 어떠한 기시감이나 마음속에 그려진 이미지를 가지고 마주하게 된다.
현대에 이르러 이러한 물리적 공간에 대한 경험은 가상 공간과 긴밀하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휴대전화나 컴퓨터를 통해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주고받으며 소셜 미디어 플랫폼 등의 가상 공간에서 더욱 많은 시간을 보낸다. 따라서 집, 여행지의 호텔 방 또는 이동 수단인 지하철, 고속철도, 비행기 내부와 같은 일상 속의 물리적 공간에서도 가상 공간은 그 어디서나 존재한다. 즉, 현대인은 원격 커뮤니케이션이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일종의 홈그라운드를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오늘날 물리적 공간과 가상 공간은 상호 의존적이며 ‘마인드스케이프’는 이러한 복잡한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현실 공간과 가상 공간이 공존하며 상상 및 창조의 영역, 기억과 꿈 등 다양한 층위에서 나타나는 ‘마인드스케이프’, 즉 심상적 풍경을 표현하는 일본 현대 아티스트들의 작품에 주목한다.
- 모리미술관 큐레이터, 츠바키 레이코
The term ‘mindscape’ typically denotes the mental landscape or subjective experience of an individual, encompassing thoughts, emotions, memories, and perceptions. It serves as a metaphorical concept representing the inner world of human consciousness. Physical spaces, as they exist in reality, are intricately interwoven with an individual’s experiences, memories, and subconscious. For instance, familiar places often elicit feelings of safety, while unfamiliar places may evoke heightened awareness and caution. Even places we have never visited may be approached with preconceived notions, shaped by prior knowledge or imagination.
In contemporary society, this experience of physical space has become closely intertwined with virtual spaces. Increasingly, individuals engage in virtual realms—such as social media platforms—through mobile phones and computers, blurring the boundaries between real and virtual environments. Thus, virtual spaces permeate physical spaces, whether at home, in a hotel room, while travelling, or in public transport. This interconnectedness of physical and virtual spaces forms a new personal refuge through online communities and remote communication. The exhibition Mindscapes seeks to illuminate this multifaceted relationship, exploring how contemporary Japanese artists express mental landscapes where real and virtual spaces coalesce across dimensions of imagination, creation, memory, and dreams.
— Reiko Tsubaki (Curator, Mori Art Museum)
작가의 말
1. 후지쿠라 아사코 (Fujikura Asako, b. 1992-)
나는 도쿄 근교인 사이타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역 주변에는 주택이 밀집되어 있고, 5분 정도 차를 타고 나가면 논밭이 펼쳐지고 간간히 물류창고가 세워져 있다. 근대적인 풍경 위로 거대하고 현대적인 시설인 고속도로가 관통한다. 나는 그러한 풍경을 응시하면서 그 너머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규칙과 새로운 풍경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환상적이고 허구적인 서사적 상상력과의 연결지점을 고민하고 있다.
2. 가네우지 텟페이 (Kaneuji Teppei, b. 1978-)
나의 ‘마인드스케이프’는 언제나 현실 풍경, 물질, 역사 등과 밀접하게 관계하며, 거기에 비현실적인 경계와 스케일, 무게를 더하는 것으로 구축된다. 어떻게 마인드 속에 현실 물질을 쌓을지, 혹은 현실 공간에 마인드를 작동시킬 수 있을지, 이는 내가 지속적으로 시도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3. 카와시마 히데아키 (Kawashima Hideaki, b. 1969-)
서울에서의 전시는 오랜만이다. 나는 이전에 얼굴만을 자주 그렸다. 몸이 없는 유령과 같은 이미지들. 이는 불안한 마음을 투영한 자화상과도 같아서 당시에는 거울을 보듯 캔버스를 마주했던 것 같다. 자의식에 괴로워했고, 작가로서 이름을 파는 행위에 대해 항상 양가적인 감정을 느꼈다. 나이가 들고 몇 번의 사별을 경험하면서 이제는 그러한 것이 중요하지 않아졌다. 사회적 입장을 벗어나 죽음을 향했을 때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젊었을 때 배운 불교 사상이 이제서야 몸에 익은 게 아닌가 싶다. 지금은 작품을 자기표현의 일환이라 생각하지 않고 보고 듣는 것에 반응하듯이 그리고 있다. 오히려 그렇게 나온 것들이 나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심상적 풍경’이라는 주제는 도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예상치 못한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이런 나를 발견하여 흥미롭다.
4. 쿠도 마키코 (Kudo Makiko, b. 1978-)
”그것은 마음과 비슷한 것이다. 감정처럼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감각적인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풍경화라가 아닐까 싶다. 인물인 동시에 풍경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 graveyard ahead 〉
작업을 제작하던 시기에 나는 아토피성 피부 질환이 심해져 마음대로 작업을 하기도 힘들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인이 소개해 준 침술 치료를 받기 위해 매주 전철을 타고 약 한 시간 걸리는 도쿄로 왕래했다.
나에게는 값비싼 치료였지만 조금씩 좋아지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전철역을 나와 걷다 보면 오래된 묘지가 보이는데, 빨리 회복하고 싶다는 초조한 생각과 동시에 유령은 없으려나 태평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묘지의 우거진 녹음을 그린 그림이다.
〈 Daytime ghost 〉
어린 시절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무서웠다.
자란 곳이 시골이라 밤엔 어두워 무서움에 잠들지 못하기도 하고 목욕도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렇지도 않구나, 문득 생각했다.
요즘은 밤에도 밝아서 그런가,
유령은 어디로 갔을까,
거처를 잃어 난감해하고 있진 않을까, 오갈 곳 없이 인기 많은 어둠을 두고 영역 싸움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낮의 주택가에 위치한 작은 공원은 한산했다.
나는 유령이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 The Other Side 〉
이 작품의 강은 니가타에서 본 웅대한 시나노강이다.
양미역취라는 외래종 식물로 강가가 노랗게 뒤덮여 있었다.
옛날 풍경과는 달라졌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자연의 축복과 위협,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잠시 상상해 보았다.
그림에 등장한 인물은 그곳에 사는 아이의 조상일 수도, 그 아이의 미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그렸다.
〈 Water Surface 〉
의도치 않게 강 바로 옆에 살게 되었다.
발을 담그기조차 싫은 강이고 처음에는 폭우가 쏟아질 때마다 걱정도 컸지만, 강변 산책이 일과가 되었다. 강가엔 여러 생물이 산다. 잉어, 거북이, 다양한 종류의 새, 곤충. 물결만 보고 있어도 즐겁다. 강가의 식물은 어디에서 출발한 씨앗이 와서 자라난 것일까. 계절에 따라 가지각색이다. 물은 항상 주변에 있고 없어서는 안 될 것인데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초봄에 매화꽃이 피었다. 수면에 봄빛이 반사된다. 봄은 모든 것이 눈부시다.
5. 츠치야 노부코 (Tsuchiya Nobuko)
나는 고고학과 물리학, 생물학을 공부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인류에게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미지의 세계이고, 알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하다. 따라서 호기심이 들고 가슴이 뛰며 상상력은 무한대로 펼쳐진다.
이번 전시는 그 중에서도 내가 특히 좋아하는 우주물리학에 빠져 있던 일상에서 출발하였다. 내게 우주는 사회적 사고나 지금까지 받아온 교육, 그리고 나를 만들어 온 아이덴티티마저도 벗어나게 하는, 원시적 상상력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무한대의 영역이다.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SDGs)가 널리 요구되는 지금, 우리는 우주선을 타지 않고도 달 여행을 갈 수 있으리라 상상하는 것이다.
6. 요코야마 유이치 (Yokoyama Yuichi, b. 1967-)
〈 Waterfall 〉은 중세 수묵화를 모방한 것으로 셋슈(雪舟)와 같은 화가가 현재 살아있다면 어떤 그림을 그릴지 상상하며 제작했다. 〈 Colored Dog 〉는 개의 윤곽에 따라 구멍을 뚫었는데, 뒷면에 조명을 두어 그 형상을 부각하는 방향을 검토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열리는 한국 전시가 기대된다.
참여 작가 소개
1. 후지쿠라 아사코 (Fujikura Asako, b. 1992-)
도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후지쿠라 아사코는 도시 풍경, 낙원, 자연, 디스토피아를 주제로 인공적인 색감과 질감을 강조한 3D 그래픽 애니메이션 작업을 선보인다. 작가는 인간이 설계, 제조, 설치한 산업 제품에서 영감을 받아, 그 사물들을 본래 기능과 인간의 통제에서 해방시키고자 한다. 그녀의 영상 작업 속 사물들은 각자의 영혼이 깃든 것과 같이 자율적으로 존재하며 운동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 Colony Highway Broadcast >(2018-19)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보이는 풍경을 비추는데, 영상 전체에서 인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인간이 없는 도시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물들은 본래의 기능에서 벗어나 자율적인 움직임을 수행한다. 그녀는 CG 애니메이션 기법과 3D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이용하여 사물이 제작자의 의도를 초월하는 움직임을 생성하고, 스크린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조작된 현실을 만들어낸다. 후지쿠라는 최근 도시의 물류 시스템 및 도심 속 정원을 주제로 작업을 지속하고 있으며, 2025년에 열릴 제19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서 일본관 전시 "IN-BETWEEN — A Future with Generative AI"의 프로젝트 멤버로 선정되었다.
2. 가네우지 텟페이 (Kaneuji Teppei, b. 1978-)
가네우지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물들과 미술사, 보도영상, 영화, 웹 사이트 등 세계 각지의 다양한 이미지를 콜라주 하여 물질과 이미지의 관계를 탐구한다. 작가는 미술의 경계를 벗어나 음악, 연극, 건축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2009년 서른 살의 나이에 일본 요코하마 미술관에서 열린 이례적으로 이른 회고전을 통해 주목을 받았다. 작가는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물체들을 물리적으로 해체하고 이들을 하나의 작품 요소로 사용해 재조합 함으로써 기존의 사물이 내포하는 고유 의미를 허문다. 그는 물체가 작품의 일부가 되는 과정을 통해 기존의 역할로부터 해방된다고 표현하는데 이러한 표현 방식은 물체를 단순히 사용 목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작가의 독특한 관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2.5D 입체 프린트 기술을 사용하여 사진 콜라주 작품 11점, 현대미술사 속 주요 작가의 조각 작품을 포함한 다양한 오브제가 인쇄된 매체를 활용한 조각 3점, 일상 속 사물과 풍경을 새로운 시각으로 표현한 영상 12점 등의 작품을 선보인다. 그의 작품은 본래 의미를 잃고 해체된 이미지와 사물들이 새롭게 재구성됨으로써, 물질적 존재의 의미가 흐려져 가는 현대의 현실을 재검토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3. 카와시마 히데아키 (Kawashima Hideaki, b. 1969-)
카와시마는 도쿄 조형대학을 졸업한 뒤 1995년부터 2년 동안 천태종 총본산인 히에이산 엔랴쿠지(比叡山 延暦寺)에서 불교 수행을 하고, 2001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수행하던 당시 강한 자의식과 대립하며 시행착오를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작가는 자신의 자아를 투영하는 영혼의 형상을 한 소녀의 초상을 그려왔다.
최근 작가는 팬데믹 기간 가족과 동료 예술가의 죽음을 겪으며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인식하기 시작했다. 또한 같은 시기에 친구의 어린 자녀를 보며 죽음이 있다면 탄생도 있다는 생명의 순환을 깨닫고, 스스로가 커다란 생명의 순환 속에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는 자의식과 자아로부터 점차 해방되어 확장된 시각으로 작업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지금은 작품을 자기표현의 일환이라 생각하지 않고 보고 듣는 것에 반응하듯이 그리고 있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는 일상 속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캔버스에 풍경화로 옮겨 닮은 후 상상 속 어린아이의 도상을 배치하는 형식의 신작을 통해 어린 시절의 자의식, 가족의 변화, 죽음에 대한 인식 등을 은유적으로 반영한다.
4. 쿠도 마키코 (Kudo Makiko, b. 1978-)
쿠도의 회화는 일상에서 겪는 경험과 당시 느낀 감정의 풍경을 시각화한다.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하여 제작된 그의 작품은 내밀한 정서와 감정이 특징적이다. 특히 꿈과 무의식을 기반하여 제작된 그녀의 작품은 자유로우면서도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기도 한다. 본 전시에서는 그녀의 신작 2점을 포함한 총 4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 graveyard ahead 〉(2009)는 피부염 치료를 위해 도쿄로 통원할 때 지나다니던 오래된 묘지의 기억을, 〈 Daytime ghost 〉(2010)은 어린 시절 유령에 대해 품었던 감정을 모티프로 삼았다. 신작 〈 The Other Side 〉(2024)은 외래종 식물인 양미역취에 뒤덮여 태고의 모습에서 변화한 시나노강 제방을 통해 작가가 상상한 ‘자연의 축복과 위협,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테마가 되었다. 또다른 신작 〈 Water Surface 〉(2024)는 집 근처 물가에 사는 다양한 생물을 관찰하며 삶의 언저리에 고요한 자세로 머무르는 대상들 내면에 깃든 생명력을 재발견하고자 했다.
5. 츠치야 노부코 (Tsuchiya Nobuko)
츠치야 노부코는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폐자재를 활용해 설치 작업과 퍼포먼스, 관객 참여형 워크숍을 선보이고 있다. 작가는 다른 세상의 시공을 연상시키는 시적인 서사성과 이를 물질화하는 조형성을 바탕으로 작업을 전개한다. 우주의 기원, 생물학, 고고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제작되는 그녀의 작품은 공상과학 소설의 한 페이지를 펼친 듯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신작 〈 30 Ways To Go To The Moon 〉(2024)은 작가가 2018년부터 지속적으로 발표해 온 설치 작업을 확장한 것이다. 해당 작업은 2024년 2월 도쿄도 사진 미술관에서 개최된 에비스 영상제(Yebisu International Festival for Art & Alternative Vision)의 메인 테마로 다뤄지기도 했다. 해당 연작은 논리나 언어보다는 냄새, 촉감, 소음, 온도, 색, 모양 등의 감각을 강조하며, 원시적인 인간의 감각과 상상력을 동원해 달에 가는 30가지 방법을 추상적으로 제시한다.
6. 요코야마 유이치 (Yokoyama Yuichi, b. 1967-)
요코야마 유이치는 1990년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유화 석사 학위를 받은 이후 1995년부터 만화가로 활동해 왔다. “어떤 주제나 모티프를 선택하든 제가 그리는 것은 그림 속의 물리적 사물이 아니라 그곳에 존재하는 특정한 종류의 시간입니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요코야마의 작품에서 반복되는 핵심 주제는 시간, 과정, 흐름이다. ‘네오 망가(Neo Manga)’라고 불리는 요코야마의 만화는 명확한 스토리가 없는 것이 그 특징이다. 종(種)과 문명, 시대를 초월하는 등장인물과 불가사의한 물체들이 기묘한 대화를 나누고, 과거이자 미래가 될 수 있는 미지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의 초기 회화 작품에서는 인간의 시간 축과 인간 문명을 넘어선 우주적 존재가 부감하는 시점으로 세계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듯한 특징이 두드러진다. 본 전시에서는 그의 대학원 졸업 이후 제작된 초기 회화 작품 〈 Waterfall 〉(1992), 〈 Colored Dog 〉(1994)를 비롯하여 독특한 구도와 색감의 초상화 연작 〈 Ourselves 〉와 건축물의 제작 과정을 담은 만화 연작 〈 Color Engineering 〉(2004)의 원화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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