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기억공작소Ⅲ 서옥순 - 눈물 The tear
2018.07.13 ▶ 2018.09.30
2018.07.13 ▶ 2018.09.30
서옥순
눈물, 450X470cm, 천에 자수 / 눈물, 500X400cm, 실 / 눈물, 158X130cm, 패브릭, 솜, 실, 2018
서옥순
눈물, 158X130cm, 패브릭, 솜, 실, 2018
서옥순
눈물 158x130cm, 패브릭, 솜, 실, 2018
서옥순
전시전경
기억공작소Ⅲ『서옥순』展
‘기억공작소記憶工作所 A spot of recollections’는 예술을 통하여 무수한 ‘생’의 사건이 축적된 현재, 이곳의 가치를 기억하고 공작하려는 실천의 자리이며, 상상과 그 재생을 통하여 예술의 미래 정서를 주목하려는 미술가의 시도이다. 예술이 한 인간의 삶과 동화되어 생명의 생생한 가치를 노래하는 것이라면, 예술은 또한 그 기억의 보고寶庫이며, 지속적으로 그 기억을 새롭게 공작하는 실천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들로 인하여 예술은 자신이 탄생한 환경의 오래된 가치를 근원적으로 기억하게 되고 그 재생과 공작의 실천을 통하여 환경으로서 다시 기억하게 한다. 예술은 생의 사건을 가치 있게 살려 내려는 기억공작소이다.
그러니 멈추어 돌이켜보고 기억하라! 둘러앉아 함께 생각을 모아라.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금껏 우리 자신들에 대해 가졌던 전망 중에서 가장 거창한 전망의 가장 위대한 해석과 그 또 다른 가능성의 기억을 공작하라!
그러고 나서, 그런 전망을 단단하게 붙잡아 줄 가치와 개념들을 잡아서 그것들을 미래의 기억을 위해 제시할 것이다. 기억공작소는 창조와 환경적 특수성의 발견, 그리고 그것의 소통, 미래가 곧 현재로 바뀌고 다시 기억으로 남을 다른 역사를 공작한다.
‘눈물’
서옥순은 전시장 입구에서 보이는 전면의 높이5.14×폭4.96m 벽면에 눈물을 흘리는 자신의 자화상, ‘눈물’을 바느질로 그렸다. 흰색 천 바탕에 검은색 목실로 바느질한 흑백 선묘 방식의 얼굴 그림이다. 특이한 점은 얼굴의 검은 눈동자에서 흘러내린 두 줄기의 눈물인데, 그 눈물 중에서 한 줄기는 검은 실의 선이 길게 수직으로 흘러내려 얽힌 듯 자유롭게 바닥 면에 이어지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얼굴은 나 자신이 경험하는 수많은 감정의 변화를 담는 그릇”이라는 작가의 말에서처럼 이 얼굴은 자신과 현실세계 사이의 관계가 흔적으로 남는 장소로서 삶을 살아가는 존재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벽면 얼굴의 아래에는 좌우벽면 사이를 검은 실로 촘촘히 이어 만든 세로4.9×가로4.9m 정도의 사각 수평면이 바닥으로부터 30㎝정도 띄워져 설치되어 있다. 이 풍경은 가까운 쪽에서부터 멀어질수록 더 어두워지는 검은 색의 변화로 인해 신성함을 주기도 하며, 고요한 밤의 수면처럼 평안한 명상瞑想meditation의 상태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끊어진 실을 묶어 이은 몇 개의 매듭 때문인지, 정색한 듯 반듯하지만 내면의 굴곡과 희로애락의 격정을 숨겨 가리려는 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업의 형식면에서, 평면의 캔버스 천 표면을 바느질하는 작가의 행위가 이곳 장소에 특정적으로 설계되어 성립하면서 공간을 바느질하는 행위로 확장된 상황이 흥미롭다. 그리고 그 촘촘히 엮은 수평면의 검은 실 사이 아래로 울긋불긋한 천 재질의 실제 인물크기 인형이 보인다. 왼손은 주먹을 쥐고 오른손은 편 채로 누워 있으며, 흰 머리카락과 함께 얼굴에는 검은 나비 문양이 바느질되어있고 몸에는 꽃, 나뭇잎들이 프린트된 화려한 색상의 천이 여기저기 꿰매져 있는 입체 자화상이다. 평면에서 입체로 확대된 바느질 행위를 확인할 수 있는 이 작업은 작가 자신의 삶과 생을 시각화한 것으로도 보이지만, 세상에 내던져진 모든 인간의 존재를 다룬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얼굴, ‘눈물’이 설치된 벽의 반대편에는 바느질 행위의 흔적을 담은 9점의 평면작업이 시선을 머물게 한다. 그릇에 넘쳐흐르는 물, 뭉쳐진 실, 손바닥 위에 세워진 식물과 흐르는 흙, 벌레, 기울어진 그릇에 담긴 꽃잎과 흐르는 물, 입으로 물을 쏟아내는 얼굴, 식물의 액이 흐르도록 세게 쥔 손 등 작가의 기억에 남는 인생의 순간을 단순하게 시각화한 은유적 그림들이다. 앞서 본 ‘눈물’에서처럼 이 그림들도 몇 가닥의 검은 실들이 흘러내린다. 이 흘러내린 선을 두고 린하르트 폰 몽키비취Lienhard von Monkiewitsch는 이렇게 말했다. “캔버스에 서로 엉키고 또한 풀리면서 끝없이 뻗어 내리는 선들은 고정된 완벽성과 절대성에 대한 반어이며, 또한 짜인 공간을 소멸시키고 제거하는 힘의 역동성을 화면에 실어준다. 그리고 흘러나온 실은 또다시 머무르지 않고 어디론가 가는 인간의 여정에 대한 암시로서 표현된다. 이러한 확고부동한 흑백의 대비와 한편을 흘러내리는 듯한 유연함의 조화는 바로 우리의 삶에서 보여 지는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 이 세상에서의 영원불멸이라는 인간의 원천적인 욕구에 대한 반문으로 나타나는데, 그녀의 작업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욕구와 허상이 하나의 자연 법칙에 의해 흘러간다는 의미를 내재하고 있다.”
바느질 ‘행위’
얼굴, ‘눈물’은 세로80×가로70㎝ 캔버스 천위에 바느질했던 2001년 작업을 확대하여 제작한 것이다. 서옥순의 다른 작업들이 그렇듯이 이 ‘눈물’은 작가 자신의 경험과 기억으로 조직된 개인의 역사를 떠올리며, 자신이 흘린 눈물과 바느질 행위가 겹쳐지면서 자연 법칙에 순응하듯 상처의 치유와 봉합이 이루어지는 과정 지향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어두운 밤, 바느질로 복주머니를 만들어주시던 할머니에 관한 아득히 어린 시절의 기억과 완고한 아버지와 여린 어머니 사이에서 성장기에 겪었던 상처와 억압, 불안 그리고 1996년 낯선 유학생활에서의 두려움 등을 비롯하여 살아가는 동안의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사건의 사연들이 개인의 역사이며, 눈물은 개인의 역사가 거처하는 냉랭한 관념들을 감성적으로 전환 혹은 해소하는데 관여한다. 또 눈물은 명상과 사색의 스펙트럼처럼 생각이 흐트러지지 않는 상태에서 꼼꼼히 생각하고 여러 방향으로 고찰하며 자신을 되새기는 바느질 행위와 겹쳐지고 그 행위의 지속과 함께 감수성의 영역에 머물도록 한다. 이 때 고통과 상처와 복잡하고 부정적인 생각들은 미세한 감성의 울림과 함께 정화淨化의 영역에 이르게 된다.
서옥순의 작업의 본질은 천위에 그림을 실과 바늘로 떠서 놓는 바느질needlework ‘행위’이다. 무엇을 잇고 덧대고 꿰매고 수繡를 놓는 이 바느질 행위가 우리에게 울림을 전하는 것은 그 ‘행위’ 안에 정성을 더해 사려思慮와 심사숙고深思熟考하는 사색思索의 태도가 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서옥순의 바느질 행위는 낯선 세계를 향한 두려움과 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작가의 사유思惟와 정화 행위이며, 그 행위는 ‘살아가기’이고 생존의 지혜로 구축해가는 세계 ‘그리기’이다. 이 바느질 ‘행위’야말로 작가의 존재방식이다. 이것은 행위와 감성이 만나 현실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성장으로 나아가는 생의 지속적인 시도인 것이다.
우리 눈앞에 펼쳐진 ‘눈물’은 다름 아닌 자아와 현실 삶의 성찰을 반영하는 감성적 ‘자신되기’의 설계이며, 이때 작가가 다루려는 것은 삶을 응시하고 인간의 깊은 본성을 드러내어 공감하려는 태도이며, 현실의 삶이 예술에 관계하는 예지叡智적 해석과 미묘하지만 생생한 예술적 유효성의 추출이다. 현실REALITY를 인간 스스로의 생동生動 공감으로 확장하려는 이번 전시 ‘눈물’은 낯선 두려움에 반응하는 ‘행위’의 기억으로서 우리 자신의 태도들을 환기시켜준다.
■ 봉산문화회관큐레이터 정종구
작가노트
1.
2001년 초여름, 모두가 잠든 고요한 한밤중에 세수를 하며 거울을 들여다본 나의 얼굴.
나의 얼굴과 마주하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넌 누구지?
유학생활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터라 마음의 여유가 없어 가만히 들여다 본적이 없는 거울 저편에 있는 나의 얼굴은 이날따라 지쳐보였고 우울했다.
전시를 앞두고 하얀 캔버스 위에 바늘과 검정색실로 정면을 응시하듯 바라보는 나의 얼굴을 수놓기 시작했다. 수를 놓으며, 나는 왜 여기에 있으며 여기서 무얼 하고 있고 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가? 라는 생각으로 출발해서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수많은 기억의 저장소에서는,
바늘귀에 실을 꿰어 캔버스 위아래를 바느질하는 반복된 과정에서, 시간이 거꾸로 가듯 기억들이 하나, 둘 나와 내 주위를 맴돌아 살아나기 시작했고, 한숨과 기쁨, 슬픔, 고통스러웠던 일들이 교차하면서 기억과 망각을 오고갔다.
이런 생각이 거의 지나갈 무렵 마음은 평온을 되찾기 시작했고, 나의 얼굴 중에 거의 완성단계인 눈동자를 수놓으며, 마지막 매듭을 위해 실을 길게 뽑아 올리는 그 순간, 나의 시선은 눈동자에서 흐르는 듯한 뜻밖의 발견(serendipity), 눈물을 보았다.
그 눈물은
나의 기억저장소에 저장되어 있던 어떤 상황과 오버랩 되어 진짜 눈물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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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는 지금 생각해보면 나 스스로의 얼마나 많은 한계를 극복하며 또 그 때마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던가? 그러나 그 눈물은 나를 강하게 만든 바로 그 결정체였다. 기쁜 눈물과 아픈 눈물 그리고 절망의 눈물 희망의 눈물 그리고 감동의 눈물….
작게는 2013년 50여 일간, 27,000km의 대장정인 실크로드를 경험하면서 광활한 대자연 앞에 나의 존재가 얼마나 개미처럼 작고 나약한 것을 느꼈고 그 나약함으로 흘렸던 눈물.
어느 에세이에서 읽은 가난한 나라의 유학생의 이야기, 엄마가 딸을 위해 뜨는 뜨개질 속에 숨어있는 매듭에 대한 의미에 공감하며 흘렸던 눈물….
또한 눈물은 가끔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내가 나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물음은 기뻤을 때보다 힘들고 슬펐을 때였다.
이런 눈물에 대한 것들은 나의 기억의 방에 가득하다.
나의 작업, 바느질에는 이렇게 많은 눈물들이 그 눈물의 한계를 초월하여 새로운 경이에로의 세상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살아가는 동안 나에게 닥친 수많은 미션들은 나의 실매듭처럼 하나하나 풀어가며 때론 이것과 저것을 이어가며, 고통과 망각 그리고 그것을 초월한 현재를 살아가게 만들어 준다.
나에게 바느질 행위는 나의 삶에 정신적인 각박한 세상의 윤활유역할을 해주며 피안의 편안한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바로 그 자체이다.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고 현재를 살며, 미래를 상상하며 미완의 나를 완성하듯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서 나의 안과 나의 밖에 있는 나를 찾아 하나로 이어지듯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평면적인 것과 입체적인 것을 공간에 설치하므로 존재에 대한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 서옥순
1965년 대구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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