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욱: 망각에 대한 감사
2019.03.02 ▶ 2019.03.24
2019.03.02 ▶ 2019.03.24
송영욱
망각에 대한 감사 2018
송영욱
forgetting 2019
송영욱
forgetting 2019
송영욱
forgetting 2019
영은미술관은 창작스튜디오 11기 입주작가 송영욱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송영욱은 전통 한지를 이용하여 인간 군상의 모습을 떠내듯이 캐스팅한 설치 작업을 선보임으로써 작품을 매개로 관람객을 사유의 장으로 초대한다.
작가가 자주 다루어 온 한지 캐스팅 방식의 작품은 분명한 형태를 갖는 반면 그 속은 물질이 비어있다. 이처럼 속은 비었으나 여러 겹으로 쌓인 한지의 지층으로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 송영욱의 작품은 누에고치를 연상시키는 일면이 있다. 누에가 실을 토해내어 자신을 감싸도록 만든 집의 일종인 누에고치 속에서, 누에는 번데기가 되고 후에는 나방이 된다. 한 존재의 탈화(脫化) 과정은 자연의 신비이다. 이러한 신비는 인간 존재에게서도 발견되는데, 세포분열을 통해 인간의 모습을 갖추어 가는 태아의 형성 과정, 자궁에서 이탈하여 완전히 다른 세계로 던져지는 출생, 성장하며 자라고 종국에는 신체의 노화와 죽음에 이르는 삶의 과정 역시 마찬가지로 신비롭다. 일종의 껍데기 같은 인체 형상으로 인해 송영욱의 작품은 일견 가벼워 보이나, 누에고치의 맥락에서 보면, 한 존재가 얼마나 상이한 모습으로 변모할 무한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지 상기시키기에 측정 불가능함에 대해 사유하게 만든다. 작가는 층층이 덧대진 한지의 겹과 그 이상으로 빈 무(無)의 공간이란 무게를 보여줌으로써, 관람자에게 ‘있음’과 ‘없음’, 존재와 무, 유한과 무한 등의 대립항을 제시함과 동시에, 대립항 간의 만남 또한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나아가 전시 제목인 ‘망각에 대한 감사’가 보여주듯이 송영욱은 ‘망각의 기억’에 무게를 두고 관람자로 하여금 잊혀진 무엇과의 조우를 요청한다. “망각은 고통과 행복 모두를 간직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을 지탱하기 위해 망각을 활용했고, 오늘 여기서 잠시 잊고 있었던 고통과 행복 앞에 다시 한 번 직면해 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망각된 기억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그 기억에 대해 감사를 한다.”(작가 노트 中) 또한 송영욱은 전시공간이 “단순한 시각 전시공간으로의 역할을 넘어 종교적 공간인 Temple과 같은 역할의 공간으로 만들어지기를 바라며 공간을 연출했다”고 전한다. 인체 형상을 뜬 작품이 취한 자세를 보면, 두 팔을 머리맡에 대어 깍지를 끼고 엎드려 웅크린 모습인데 이는 일상적인 자세는 아니다. 이는 종교적 공간에서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거나, 혹은 마주할 여력조차 없는 고통 속에서 토로할 때 취할 법한 자세로 보인다. 생사의 여정 속에 끼어드는 고통은 때때로 너무나 강렬하기에 레테(Lethe)의 강물을 마셔 망각하길 소원할 수도 있다. 따라서 “오늘을 지탱하기 위해 망각을 활용”했다는 작가의 언급은 망각에 관하여 감사할 여지를 남긴다. “망각의 품 안에서 잊혀야 할 것들은 잊히고 내가 가장 나다운 존재가 되게 해줄 것들, 내가 원하는 존재가 되게 해줄 것들은 살아남아 내게 불멸의 추억을 선사하는 것이다.“(최수철, 「망각의 대가들」, 『갓길에서의 짧은 잠』 中) 삶에서 도려내고픈 망각의 단편들을 치부해버리는 자세와는 다른 방식으로, 송영욱은 인간 존재를 이루는 경험, 기억, 망각을 사유하는 시간으로 관람자를 초대한다. ■ 선우지은(협력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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