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안용선
천음-토왕지심 한지에 수묵, 200×220cm, 2020
안용선
천음(天音)-군자지정(君子之情) 한지에 수묵, 63.5×161cm, 2019
안용선
천음-군자지의 한지에 수묵 161×130cm, 2021
안용선
천음(天音)-군자지정(君子之情) 113×97cm 한지에 수묵 2020
언젠가 현장사생을 위해 강원도의 자연을 돌아보던 중 도로변 길가에서 잠시 쉰 적이 있었다. 도로 건너에는 여러 산봉우리들이 중첩되어 위치해 있었고 나는 잠시 그들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그러던 중 문득 그들의 나에게 보여주는 모습들이 하나하나 획(畫)으로 인지되는 것에 스스로 놀란 적이 있었다.
그것들은 자연이 나에게 전해주는 하나하나의 단어이자 문장이었으며, 아름다운 음악과도 같았다. 그때 생각이 들었다. ‘자연은 이러한 방법을 통해 우리와 본질적인 소통을 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시의 나는 감상자였다. 자연은 거대한 추상회화였고, 나는 이를 감상하는 감상자의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감상은 곧 대상과의 소통의지가 바탕이 되는 예술방법이다. 지속적인 감상을 통해 감상법은 점차 다듬어지고 대상의 본성과 어울리게 된다. 이러한 과정속에서 감상법은 회화적 실천의지를 통해 표현법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실천과정에서 일어나는 예술적 인식의 단서를 ‘천음(天音)’이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자적 의미를 말하자면 ‘천’은 자연을 의미하고, ‘음’은 드러난 현상에 대한 인식기준을 의미한다. 이렇게 ‘천음’은 자연을 감상하면서 동시에 표현하는 예술방법이 되었다.
‘천음’은 자연의 천연적인 예술 요소이디. 이들은 회화적 단서로 작용할 수 있으며, 화면 속에서 획(畫), 먹(墨), 여백(餘白) 등의 예술요소로 변환된다. 이들이 서로 상응하며 조화를 이룰 때 기운생동(氣韻生動)의 예술 혼(魂)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자연에서 비롯된 조형언어들은 획, 먹, 여백으로 변환되어 회화적 표현과 소통의 근거가 된다.
나는 화면에 적용된 획, 먹, 여백의 3요소에 주목한다. 먹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다. 그 자체가 자연현상에 대한 본질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획과 여백 또한 상대적이지만 하나로 작용한다. 이들은 표현자체가 자연에 대한 이치를 상징하며, 단순히 표현과 남김의 기법이나 조형적 의미가 아니라, 동시에 서로를 그려내며, 하나의 현상이 완성되는 원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현상과 본질을 함께 그려내는 최적의 요소이자 방법론이다. 화면 속에서 이들은 회화적 음(기준)과 같다. 이들은 서로 부딪히고 소통하며 조화를 이루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전달하고 확장한다.
나의 작업은 회화이지 음악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단일적 개념 속에 제한할 이유 또한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눈을 통해서만 보고, 귀를 통해서만 듣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때로 귀로 보고, 눈으로 듣기도 한다. 혹은 눈으로 맛보기도 한다. 우리의 모든 감각은 서로 통하며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자연을 감상하고 표현하면서 바람직한 사람다움에 대한 본질을 찾고 있다. 진정한 사람다움은 곧 천지자연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연은 다양한 인간미를 보여준다. 어짊(仁)과 지혜로움(智), 곧은 절개, 꿋꿋한 기상, 변치 않는 의지, 초지일관의 자세, 겸손함, 자애로움 등, 자연현상들은 모두 사람다움에 대해 은유하고 상징한다. 이들이 갖춘 자연스러움은 곧 우리에게 사람다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준다. 이곳에 내가 걸어가고자 하는 삶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자연으로부터 사람다움의 근거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소통이 있을 때 가능해진다. 이러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할 때, 비로소 우리는 본성을 공유하며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화폭에 담았을 때 비로소 진정한 ‘비덕(比德)’의 예술방법이 된다.
나의 작업은 세 가지 양식을 가진다. 첫째는 획의(畫意)이다. 획은 현상에 대한 인식의 시작이자, 의지를 담고 있다. 하나의 획을 그음으로 예술적 의지를 드러내고, 이를 회화적으로 실천한다. 둘째는 사생(寫生)이다. 사생은 실질적으로 자연과의 교감을 이루는 예술방법이다. 사생은 곧 실(實)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들의 진면목을 바라보고 이에 대한 조형적 기준을 세울 수 있다. 셋째는 진경(眞景)이다. 진(眞)이란 자연의 본질을 의미한다. 실제적 경험을 통해 얻은 조형적 기초와 획의를 바탕으로 참된 자연의 이치를 그려보고자 하는 것이다. 대상의 외양을 표현하는 조형성만으로는 진정한 예술을 이룰 수 없다. 대상은 물론 자신과의 진실한 조우를 통해 궁극적인 예술적 묘(妙)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이를 얻기 위한 예술적 단서를 천음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천음은 나의 예술방법’이 되었다.
-안용선-
1975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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