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화가 Ⅱ A Painter of Our Time Ⅱ
2022.04.14 ▶ 2022.05.20
2022.04.14 ▶ 2022.05.20
전시 포스터
구자승
속초 캔버스에 유채_71×116cm_1992
김서봉
설악의 3월 캔버스에 유채_70×115cm_1993
김용철
We love you 캔버스에 유채_130×162cm_1990
이원희
풍경 캔버스에 유채, 145×112cm, 1992
박상옥
화병 캔버스에-유채_44×36.5cm_1962
박광진
제주억새풀 캔버스에-유채_128×160cm_1989
신상국
탄광촌 전경 캔버스에 유채_89.4×145.5cm_1991
남관
봄 캔버스에-유채_98×80cm_1956
이경희
우시장 캔버스에 유채_129×161cm_1973
주태석
철길3 캔버스에 유채_114×110cm_1992
이청운
삶의 풍경 캔버스에 유채_110×160cm_1990
구자승
서울의 밤 캔버스에 유채_190.3×400cm_1985
오승우
민속놀이 소싸움 캔버스에 유채_79×89_1993
최명영
공식76-38 캔버스에 유채_100×80.5cm_1976
임종만
덕제 캔버스에 유채_51×64cm_1986
이승조
핵 캔버스에 유채_60.5×50cm_1969
김창열
물방울 캔버스에-유채_79.5×79.5cm_1974
미술관은 작품이 지니는 역사적, 문화적, 심미적 가치를 관람객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의미를 만드는 장소이다. 미술관 소장품은 공공의 문화적 자산일 뿐만 아니라, 미술관이 존재하는 근거이자 미래의 비전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임은 분명하다. 게다가 미술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늠케 하고 그 정체성을 수립하는데 핵심 역할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재)한원미술관은 그동안 한국미술을 조명하는 다양한 전시를 개최해왔고 미술사에 초점을 맞춘 우수한 소장품과 아카이브를 수집·보존해 왔다. 미술사적 가치가 검증된 작품, 동시대 미술 흐름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 미술관의 방향성에 맞는 작품의 카테고리로 작품 수집 방향을 정했으며, 이는 소장품 수집의 전문성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다양한 통로를 통해 양질의 작품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우리 문화자산에 대한 예술적 가치를 널리 알리는 동시에 공공의 미술관으로 임무를 수행해 온 (재)한원미술관의 안목을 검증하는 자리로써, 수집한 작품을 대중에게 공개하여 문화 향유의 기회를 확대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또한, 격동의 역사 속에 성장해온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이끄는 예술가들이 각자의 정체성을 어떻게 담아냈는지 고찰한 시도들도 함께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화가 Ⅱ A Painter of Our Time Ⅱ》는 지난해 (재)한원미술관의 대표 소장품 중 1900년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적 양식의 회화'로써 한국화의 미술사적 흐름을 조망하고 시대와 함께 호흡해온 예술가들의 정체성을 모색하고자 했던 《우리 시대의 화가 A Painter of Our Time》의 후속으로, 시대 사회적 관점으로 접근하여 한국 현대미술의 현장에서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견고하게 쌓아온 작가들의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서양화 작품을 선보인다.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사상가인 레프 톨스토이(Leo Tolstoy, 1828~1910)는 “예술은 손으로 만든 작품이 아니라 예술가가 경험한 감정의 전달이다. (Art is not a handicraft, it is the transmission of feeling the artist has experienced)”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의 예술가들은 일제강점기, 해방, 전쟁과 분단, 혁명, 군사독재로 이어지는 사회적 격변과 함께 역사적 질곡 속에서도 작품을 시대정신으로 구현하려는 치열한 작가 의식을 보여주었다. 본 전시는 현대미술사를 정리하면서 중진·원로 작가들의 초기작을 발견할 수 있어 의미가 있다. 한국미술에 대한 시대의 눈을 싹 틔우고 오늘날까지 서양화가 시대별로 어떻게 발전, 전개되었는지를 시간 여행을 하듯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미술은 정치적, 사회적 변화와 함께 전통적인 수묵화에서 벗어나 서구적 시각과 표현방식을 구사하는 서양미술을 접하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는다. 당시 예술가들에게 ‘미술(美術)’이란 주제, 소재 그리고 표현기법에서 서화동원론(書畵同原論)에 기초하여 글씨와 그림이 하나의 세계로 연결되었던 전통적인 서화관(書畵館)과는 달리, 다양한 조형방식, 작품을 다루고 감상하는 방식 등 이전에는 전혀 접하지 못한 새로운 과제였다. 한편 회화, 조각, 공예를 폭넓게 아우르는 ‘미술’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회화는 1915년 조선총독부가 개최한 《조선물산공진회(朝鮮物産共進會)》를 통해서 동양화와 서양화로 나뉘어 대중에게 널리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1] 예술가들은 한국인으로서의 감수성뿐 아니라 전통회화의 연계성을 염두에 두었고, 일본 화풍에 국한되지 않기 위해 미국과 유럽으로 건너가 서구미술을 직접 습득하고자 했다.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 유학을 떠났던 예술가들이 귀국함과 동시에 국내에서는 미술을 공부한 예술가들이 늘어나면서 여러 화단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예술가들은 기법과 양식에서 주로 일본에서 영향을 받아 고전주의적 사실주의, 일본 화풍의 인상주의를 위주로 작품을 선보였다. 대상의 재현을 위주로 한 사실주의 양식은 1922년부터 개최된 《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와 1950년대 이후 《대한민국미술전람회(大韓民國美術展覽會)》에서 중심축을 형성했다.[2] 또한, 1920년대 후반부터 점차 표현주의, 추상미술, 전위미술 등을 시도하면서 1930년대에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다루려는 경향이 등장하였고, 독창적인 작업세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미술의 개념이 성숙함에 따라 1950-70년대에는 광복 직후 사회적 혼란기와 한국전쟁의 흉터를 극복하고 사회가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한국미술계에서는 다양한 활동이 펼쳐졌다. 미술대학에서 정규교육을 받은 젊은 예술가들이 활동을 시작하면서 화단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 무렵, 구상 대 비구상, 아카데미즘 대 전위의 대립각을 세우는 시기로서 젊은 예술가들은 아카데미즘뿐만 아니라 기성 모더니즘 세대에게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에 힘입어 1970년대 들어서면서 추상미술은 실험미술과 함께 화단의 새로운 돌파구로 간주 되었고, 주도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으며 기하학적 추상과 단색의 모노크롬 회화로 이어졌다. 추상미술은 예술가들의 독자적인 개념과 자유로운 표현을 기반으로 이들의 정서나 사상을 담은 새로운 표현양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후, 경제발전에 따른 시대 환경의 급속한 변화와 추상미술에 전력을 다한 젊은 예술가들은 또 다른 조형적 실험을 추구하고자 했다. 이들 중 몇몇 예술가들은 재현에 기반을 둔 사실주의 회화로 복귀하였고,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문제를 작품 속에 반영하는 극사실 회화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는 당시 산업화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철도, 드럼통, 표지판 등이나 돌, 흙, 모래 등과 같은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요소들이 작품에 등장하는데 이러한 소재들은 오토바이, 고층빌딩, 클로즈업된 얼굴 등 산업사회와 도시적인 것이 아닌 “인간적인 체감이 배어 있는 것들”로, 이는 미국의 하이퍼 리얼리즘과 가장 크게 차이 나는 지점이다.[3] 즉, 미국의 하이퍼 리얼리즘의 목표가 대상의 사진상 재현이라면, 한국의 극사실 회화가 추구한 점은 캔버스에 재현된 대상 자체의 본질과 상징이라는 것이다.[4]
'정취적·목가적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진 박상옥(朴商玉, 1915∼1968)은 경기고등보통학교에 재학 당시 교사였던 서양화가 김주경의 지도를 받으며, 1937년 전주사범학교 강습과를 수료하고, 1939년 일본제국미술학교를 졸업했다.[5]《조선미술전람회》와 일본의 《이과전》등에서 활동하였고, 광복 후에는 이인성, 오지호, 박영선 등과 독립미술협회를 만들어 창립전을 열었다. 1954년 제3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부드럽고 소박한 색조와 사실주의 화풍으로 한국의 풍경과 풍물들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미술평론가 유준상 씨는 “투박하고 굵은 그의 구도를 통해 한국적인 조형을 읽게 된다. 그의 유형을 표현주의적이라고 하는 건 그의 민족적 개성의 발견 때문이며, 그것이 하나의 규율을 벗어나서 개인 사상의 극단적이고 강렬한 표현으로 무산되지 않는 건 그가 하나의 한국의 제어였다는데 있다”라고 평가했다.[6]
한국 추상회화의 선구자로 불리는 남관(南寬, 1911~1990)은 1914년 일본으로 건너가 1935년 동경 태평양미술학교를 졸업, 일본의 동광회(東光會), 국화회(國畵會), 문전(文展) 등에 출품하고 1942년에 후나오카상(船岡償), 1943년에 삼정상(三井償)을 각각 수상하며 미술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광복 후 귀국하여 1947년에 이쾌대, 이인성, 이규상 등과 함께 조선미술문화협회를 결성하였고, 1949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서양화부 추천작가로 선정되었다. 1954년 파리로 떠난 그는 그곳에서 앵포르멜 미술을 접하고 사실주의 회화에서 벗어나 추상회화로 전환한다. 낯선 이국 생활을 부단한 작업으로 채우며 그러한 각고의 노력은 서서히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 《현대국제조형예술전》과 《살롱 드 메》를 비롯한 유수의 전시회에 초대된다. 1966년에는 〈태양에 비친 허물어진 고적(古蹟)〉으로 《망통회화비엔날레》에서 1등 상을 수상하며 그 역량을 인정받기도 했다. 그는 역사적 비극의 체험을 앵포르멜 미술과 조화시킴으로써 특유의 비정형적 화면의 독자적인 추상회화 양식을 구축했다. 나아가 그는 전쟁의 폐허 위에서 끈질긴 생명력으로 다시금 일어서는 인간의 모습을 끄집어냈고, 이를 특유의 인간 형상을 한 문자 추상으로 발전시켰다. 특히 캔버스 위에 유화물감을 두껍게 바르면서 질감을 형성하고 얼룩을 만들거나, 데칼코마니 기법을 활용하여 여러 재료로 그 위에 콜라주 하는 등 재료와 기법에서 다양한 모색을 전개하였다. 그의 작품은 일견해서 상형문자나 기호, 혹은 우주의 별자리를 연상시키게 한다. 그것은 정갈하도록 단순화시켰거나 지극히 명료한 필치로 펼친 내면세계의 기록과도 같다.[7]
물방울 작가로 유명한 김창열(金昌烈, 1929~2021)은 1946년 월남하여 이쾌대가 운영했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다. 50~60년대 앵포르멜 운동을 이끌며, 액상의 형태가 흘러내리는 과도기를 거쳐 화면 위에 물방울이 맺힌 극사실적 화면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반부터이다. 우연한 기회에 물방울의 영롱함을 발견하고 매료된 그는 40여 년간 캔버스, 신문지, 마포, 모래, 나무판 등 다양한 물질 위에서 재료적 특성을 탐구하고, 하나의 물방울이 캔버스를 점유하고 있는 작품에서부터 캔버스 전면을 물방울로 뒤덮는 작품까지, 이제 막 맺힌 영롱한 물방울에서 금방이라도 밑으로 흘러내리거나 표면으로 스며든 물방울까지 다양한 작업을 선보여왔다. 물방울은 작가의 삶을 통해 만났던 수많은 사람과 사건의 기억을 담고 있으며, 한국의 비극적 근현대사 속에서 제기되었던 존재에 대한 실존적 질문과 사유들을 함축하고 있다.[8] 1980년대는 마대의 거친 표면에 물방울을 그리기 시작한다. 재료의 특질을 살리는 반면, 이러한 표면에 맺힐 수 없는 영롱한 물방울을 극사실적으로 그림으로써 바탕과의 이질감을 형성하여 실제 물방울이 가진 물질성을 상실하게 한다.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그는 화면의 바탕에 천자문을 그려 넣음으로써 동양의 철학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는 활자의 선이 물방울의 조형적 측면을 드러내기 위한 요소일 뿐만 아니라, 물방울에 의해 반사된 글자의 획을 화면에서 찾아내는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렇게 작가는 화면 위에 맺혔다가 이내 사라지는 물방울이라는 대상을 다루는 방식에서 영롱하고 아름답지만 이내 사라져버리는 흔적을 그렸다. 물방울은 말 그대로 연약하고 덧없는 상태를 보여주려는 대상으로서 문화적, 정신적, 역사적 정황들에 대한 작가의 깊은 철학적 사색의 결정체이다.[9]
파이프를 연상시키는 원통 형태를 다양하게 구성한 〈핵〉연작으로 널리 알려진 이승조(李承祚, 1941~1990)는 1968년 제1회 《동아국제전》 대상 수상, 같은 해 제17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문화공보부장관상 수상 등 활발한 작품활동을 이어나갔다. 그가 화단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기는 서승원, 최명영 등과 함께 그룹 오리진(Origin, 原)의 창립 멤버로 활동하던 1962년경이다.[10] 이후 이승조는 196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원통형의 구조, 즉 파이프 형상이 등장하는 회화를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1969년 작품인 〈핵〉은 연작의 초기 형태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원색의 기하 형태가 수평·수직·사선 등의 구도로 패턴처럼 배치되는 전형적인 기하학적 추상회화의 특징을 지닌다. 그는 1967년 〈핵1〉을 제작한 이후 오랫동안 〈핵〉뒤에 연번을 이어나가는 형식으로 작품의 제목을 붙였다. 그의 〈핵〉연작은 1967년 《청년작가연립전》에서 기하학적 색면 추상의 형식으로 처음 소개된 이후 특유의 회화적 양식을 정립해 나간다. 초기 파이프 형상은 시각적 재현에 집중하는 듯 보이지만, 작품이 거듭될수록 추상화된 형상으로 나아가게 된다. 1969년 이후 전위미술 단체인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의 창단 회원으로서 활동을 펼치는 동시에 1970년대 중반 그의 〈핵〉연작은 원통 형태의 역동적 구성 대신 수직 또는 수평의 정적인 구성을, 또한 강렬한 색채 대비의 효과 대신 차분하게 가라앉는 단색, 그중에서도 검은색의 사용을 주된 특징을 보인다.[11]
주태석(朱泰石, 1954~)은 한국 극사실 미술 1세대 작가로, 주로 대상을 확대한 구도를 기반으로 화면에 여러 형태의 구도적 변형을 선보이는데,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부감 시점을 적용하여 캔버스의 평면과 일치시켜 습관적으로 인식되어 온 기찻길의 모습을 낯설고 새롭게 변환시킨다.[12] 그는 1970년대 후반, 특정 사물을 집요한 관찰에 기반을 두어 사진에 가까운 사실성을 보여주는 극사실 회화 작업에 몰두했다. 〈기찻길〉연작은 1970년대 서울 당인리 발전소 인근 하숙집 옆 기차 철로를 그린 작품이다. 철길의 녹슨 표면, 갈라진 침목, 그 아래 깔린 자갈을 집요하고 끈질긴 관찰을 통해 사실적으로 재현한 이 작품은 정면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에서 평평하게 보이는 침목과 철로는 수직 수평의 단순한 구도를 이루고, 화면 전체에 뒤덮은 조약돌은 크기와 모양이 유사하여 균열해 보인다. 그는 〈기찻길〉연작에서 기차선로의 모습을 확대해서 보여주었다면, 1980년대 후반부터는 숲의 나무를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나무를 극사실적으로 묘사하는 표현방식은 그대로 이어가고, 배경에 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진 벽을 넣어 배경의 평면적 느낌을 극대화한다.
그 어느 때보다 혼돈 속이었던 격동의 시대. 그러한 시대의 흐름 위에서 생성된 화풍의 변화가 시대상의 거울처럼 발현되었다. 그 시대에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나의 예술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하며 자신과 시대의 정수를 작품에 녹여냈던 예술가들. 그들의 예술혼 속에서 우리는 작품 속의 다양한 풍경에서 과거를 회상하거나 현재를 투영하고 현실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들을 마주할 것이다. 끝으로, 동시대를 직시하고 미의식을 드러내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되짚어보고,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깊이 공감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재)한원미술관 선임 큐레이터
전승용
[1]일제는 한국을 강제로 병합한 이후, 정당성을 합리화하고 이른바 조선의 진보와 발전을 한국민에게 전시하려는 의도에서, 식민시정(施政)을 기념한다는 명분으로 1915년 9월 11일부터 10월 30일까지 경복궁 전역에서 박람회를 개최하였다. 이때 동양화, 서양화, 조각, 공예 등 새로운 유형의 미술이 대중에게 소개되었다.
[2]《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은 일제가 식민지 문화정책의 하나로 해마다 개최하였던 전국 규모의 미술공모전이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大韓民國美術展覽會)》는 조선미술전람회의 규약을 모태로 1948년 정부 수립 후 한국미술의 발전, 향상을 도모하고자 1949년 9월 22일 문교부 고시 제1호에 의하여 창설된 미술전람회이다.
[3]김복영,「70-80년대 신형상 회화: 극사실 회화의 기원」『사실과 환영: 극사실 회화의 세계』(전시도록), 삼성미술관, 2001. pp.33-34.
[4]김영호, 「한국 극사실 회화의 미술사적 규정 문제」『현대미술학 논문집』제13호,2009. p.24.
[5]‘정취적·목가적 리얼리즘’은 향토적인 정취와 일상의 단면을 정감있게 보여주는 한국적인 특색의 구상화풍으로 1960년대 초까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지류를 형성했다. 이러한 경향의 작품들은 자연과 인간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면서도 대상에 대한 작가의 서정적 감성과 정서를 주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6]편집부, "[아트뉴스] 박상옥 20주기 유작전 - 11월 21일부터 12월 20일, 호암갤러리",「미술세계」, 1987.12.p.34.
[7]윤범모,“남관 예술의 신경지”,「미술세계」,1984.10.p.88.
[8]양혜경, 「물방울, 길을 걷다 마주친 존재-김창열론」,수필시대12, p.218
[9]같은 책, p.218
[10]그룹 오리진(Origin, 原)은 앵포르멜 추상표현주의를 반대하며 원초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와 질서정연하며 본질적인 조형 요소를 중시하는 미술을 지향하였다.
[11]조수진,「이승조의 〈핵(核)〉연작-한국적 모더니즘의 또 다른 가능성」,『한국근현대미술사학』 제39집,2020,p.165.
[12]“자갈과 선로를 극사실적으로 묘사해냈던 작품들은 얕은 공간을 갖고 있으나 공간이라기보다 평면에 가까운 느낌을 주어, 대상을 바로 위에서 내려다본 형태로 그려 평면성을 강조하여 그런 것이다.” 한국미술사 99프로젝트 엮음(윤난지) 『한국미술과 사실성-조선시대 초상화에서 포스트모던 아트까지』, 눈빛, 2000, pp.184-191.
1941년 서울출생
1961년 출생
1929년 평안남도 맹산출생
1911년 경북 청송출생
1935년 서울출생
1915년 출생
1930년 전라남도 화순출생
1944년 출생
1941년 평안북도 용천출생
1956년 출생
1953년 인천출생
1947년 출생
1954년 출생
1941년 황해도 해주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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