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원
2017-M-201, 2017, 한지, 먹, 145x103cm
이길원
2020년 2020-A-204, 2020, 장지,먹,아크릴, 75x144cm
갤러리도올은 안평안견 창작상을 수상한 이길원 작가의 초대 개인전을 오는 6월 10일부터 6월 21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먹을 중심에 두고 지속해 온 추상 회화를 통해 반복적 수행과 물질의 관계를 더욱 심화시킨 작업들을 선보인다.
먹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길원의 작업은 동양화의 전통 위에 놓여 있지만, 특정 장르의 범주에 머물지 않는 회화적 언어 안에서 다양한 평면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유연하면서도 깊이 있는 사유 속에서 먹은 단순한 재현의 도구가 아니라, 행위와 시간, 물질이 서로 충돌하며 화면을 생성하는 조건으로 다루어진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무엇을 그릴 것인가보다 어떻게 화면이 형성되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경험과 기억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몸에 각인되듯, 먹 또한 평면 위를 자유롭게 이동하면서도 일정한 조건 안에서 스스로의 질서를 만들어낸다. 몸의 움직임과 반복되는 행위가 축적될수록 먹은 단순한 재료를 넘어 화면의 구조와 리듬을 결정하는 물질적 조건으로 변화한다.
초기의 작업에서 먹은 부드럽게 번지고 겹쳐지며 형상을 은유한다. 화면 위에 남겨진 흔적들은 문자처럼 읽히기도 하고, 단순한 타격의 결과처럼 보이기도 하며, 읽힘과 비가독성 사이를 끊임없이 오간다. 이때 평면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 가깝다. 의미와 물질, 통제와 우연은 아직 분리되지 않은 채 하나의 장 안에서 동시에 작동하며, 화면은 끊임없이 생성 중인 상태로 남는다.
이후 작업은 점차 상호 간의 조화와 균형 속에서 구조를 획득한다. 평면은 균질한 밀도로 확장되거나 특정 영역으로 분할되며 서로 다른 긴장을 만들어낸다. 반복적 행위는 단순한 수행에 머물지 않고, 분포와 구획 속에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특히 비워진 영역과 억제된 공간의 등장은 화면을 채우는 행위만으로는 성립되지 않는 또 다른 조건을 제시한다. 회화는 더 이상 하나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일이 아니라, 제한과 분할, 충돌과 공존 속에서 서로 다른 상태들이 관계를 맺는 구조가 된다.
최근 작업에 이르러 이러한 탐구는 보다 구체적인 방식으로 전개된다. 작가는 커다란 장지 위에 일정한 격자를 설정하고, 일부 영역을 종이로 덮어 물리적 경계를 만든다. 이후 진한 먹을 머금은 붓을 반복적으로 내려치며 그 경계 위에서 행위를 지속한다. 이러한 반복적 수행은 단순한 노동이나 기계적 행위가 아니다. 붓을 내리치는 힘의 강약, 속도와 거리, 손목의 떨림, 중력과 시간의 차이가 미세하게 개입하면서 먹은 예측할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종이에 의해 차단된 영역과 드러난 표면 사이에서는 튕겨 나온 먹이 얼룩과 선, 입자와 번짐의 형태로 축적되고, 그 과정에서 작가의 통제를 벗어난 물질의 자율성이 드러난다.
이처럼 반복은 동일한 결과를 생산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차이와 우연을 발생시키는 조건으로 작동한다. 화면은 반복 속에서 균질해지는 것이 아니라, 미세한 흔들림과 물질의 변화가 켜켜이 쌓이며 독특한 밀도를 형성한다. 먹은 더 이상 단순한 표현 수단이 아니라, 종이의 재질과 수분의 침투, 압력과 흡수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 움직이고 반응하는 물질적 존재가 된다. 이때 평면은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라, 행위와 물질이 서로 충돌하며 사건이 발생하는 장소로 전환된다.
작가는 사각형의 범주 안에서 다양한 변형과 변주를 구축해 나간다. 어느 한 지점에서 완결되는 이미지를 제시하지 않으며, 반복되는 격자와 먹의 흔적들은 중심을 고정시키기보다 시선을 끊임없이 이동시킨다. 그 안에는 붓의 움직임과 신체의 리듬, 종이의 층위와 스며드는 시간들이 동시에 축적된다. 관람자는 하나의 장면을 바라보기보다 화면 속에 침전된 시간과 행위의 흐름을 따라가게 된다.
고정될 수 없는 조건을 만들고, 스스로 또한 수행의 과정 속으로 들어가는 그의 작업에서 화면을 가득 채운 사각형은 현실의 은유이자 각자가 살아가는 존재론적 형식을 드러낸다. 서로를 알지 못하더라도 관계로 연결된 거대한 범주 안에서 시간의 축적은 또 다른 양식을 만들어내고, 기호의 범람은 문화라는 구조로 확장된다.
최근의 작업은 이전보다 더욱 선명하면서도 동시에 흐릿한 상태를 드러낸다. 격자는 더 이상 견고한 구조로 기능하지 않으며, 오히려 침식되고 흔들리는 흔적처럼 등장해 구조와 비구조 사이를 오간다. 특히 배채법을 활용한 작업에서는 화면의 앞과 뒤, 표면과 내부가 서로 스며들며 새로운 물질적 관계를 형성한다. 먹과 아크릴은 종이의 층위 안에서 흡수와 차단, 번짐과 고착 사이를 반복적으로 오가고, 그 과정 속에서 화면은 하나의 고정된 형식이 아니라 내부에서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하는 유기적 상태로 변모한다.
작가의 작업은 전통 동양화의 다차원적 공간 개념을 그만의 조건성 속에서 오늘의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한다. 이동하는 시선과 시간의 흐름, 가까움과 멀어짐이 하나의 화면 안에 공존하며, 화면은 재현된 풍경을 넘어 몸과 감각이 머무는 장이 된다. 이는 단순히 여러 방향의 풍경을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라, 행위와 시간, 구조와 물질, 표면과 내부가 동시에 작동하는 생성의 상태에 가깝다. 무엇을 보여주는 그림이라기보다, 화면 안과 밖의 경계에서 회화가 어떻게 스스로 발생하고 변화하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과정이다. 반복과 침식, 스며듦과 축적의 시간 속에서 그의 평면은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로 환원되지 않는다.
전시제목이길원: 스며드는 구조 Permeating Structure
전시기간2026.06.10(수) - 2026.06.21(일)
참여작가 이길원
관람시간11:00pm - 06:00pm
휴관일없음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갤러리 도올 Gallery Doll (서울 종로구 삼청로 87 (팔판동) )
연락처02-739-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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