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경
Salute 싱글채널 비디오, 비디오 스틸, 2010
윤주경
경례 싱글채널 비디오, 비디오 스틸, 2010
윤주경
붉은 부처 싱글채널 비디오, 비디오 스틸, 2010
윤주경
검은 산 2 채널 비디오, 비디오 스틸, 2009-2010
낡은 낙원에서의 지난 여름
정현(미술비평)
노무현 정권 시절, 그 누구보다 그를 지지했던 윤주경은 잠시나마 도래한 신세계의 달콤한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가 비극적으로 사라진 후, 윤주경은 다시 광장으로 향했다. 많은 시민이 그처럼 광장을 찾았다. 지난 여름 그는 내내 카메라를 들고 어딘가로 향하는 행렬을 쫓아 다녔다. 이번 전시은 2010년 한국의 현재를 확장된 삼면화(triptych) 개념을 응용한 영상 설치작업이다. 윤주경은 본인이 살고 있는 장소와 그 곳의 사람을 사진으로 꾸준히 담아냈다. 그러나 작업 속에 등장하는 이미지는 오히려 생경하게 보인다. 집의 3/4이 잘려나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경기도 양주에서 발견한 어느 집 한 채(건물#1, 2006)이나 삼척의 남근 공원의 성기 조형물과 군악대의 연주장면을 편집해 만든 영상작업은 미래지향적인 IT 강국 한국의 오랜 역사의 층위를 대변하는 남근 중심적 토테미즘이 생존하여 일상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우리의 단면이다. 광활한 모뉴멘트 벨리의 사진 작업은 풍경으로서의 자연이 아닌 미대륙 개척사의 현장으로 원주민과 침입자가 대립하던 전투지로서의 대지다. 그곳은 기념비적인 공원이 되었고, 피의 역사는 승리라는 영웅적인 이미지로 대체되었다. 윤주경은 벨리 한 가운데 붉은 깃발을 들고 서있다. 붉은 색은 많은 함의를 담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종말을 고했다고들 하나, 여전히 이념은 우리의 일상과 가치관을 조절하는 비가시적인 권력의 효과로 남아있다. 이번 개인전에서 윤주경은 예찬(celebrations)을 표하는 두 가지 극단적인 행태를 영상으로 담는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낡은 낙원 #1 (8-90년대)
윤주경은 80년대 중반부터 사진을 찍었다. 아직 한 번도 선보인 적 없는 초기사진은 극적인 앵글로 당시 서울 종로거리의 풍경을 스케치했다. 처음부터 그의 관심은 역사라는 시간 속에 스며들어 있는 사건의 현장이었으며, 사건의 주체 인간이었다. 그가 포착했던 1985년도의 종로는 시차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모던하게 보였다. 성조기 프린트가 있는 셔츠를 입은 한 남자의 뒷모습이나 보안검색에 걸려 가방을 들추는 모습, 서있는 여자를 바라보기 위해 심하게 고개를 돌린 남자의 역동적 모습이 한 프레임에 담긴 사진은 제프 월의 연출사진이 연상될 정도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당시의 종로의 현실이다. 윤주경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언제나 권력과 민주주의를 꿈꾸는 저항의 힘이 충돌하는 장소였다. 80년대 말, 미국유학을 간 그가 시선을 던진 대상은 샌프란시스코 번화가 중심부의 텐터로인(Tenderloin)의 떠돌이, 노숙자, 마약중독자, 트랜스젠더나 창녀와 같은 타자들이었다.
이 무국적자 부류의 묵시록적 신체 이미지와 감시의 대상이었던 종로의 청년들은 저항과 순응 사이에서 무기력하게 보이는 불안한 신체처럼 보인다. 이후 캘리포니아로 학교를 옮긴 후 본격적으로 자기 자신을 대상화 시키면서 윤주경의 세계관이 작업으로 밀도 있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그는 대지, 국가, 문화, 개인, 정체성 사이의 제국화된 권력의 밀접한 관계를 일련의 자화상 시리즈로 등장한다. 그의 사진에 등장하는 대지는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장소, 또는 냉전시대의 제국주의적 환상을 기념비화 한 조각공원 같은 곳이다. 마치 지나간 전쟁을 증언이라도 하듯 붉은 깃발을 든 그가 그 안에 서있다. 당시 윤주경은 미국 역사 속에 기록된 한국의 흔적, 즉 외상을 쫓는다. 한국전쟁공원 안에 서있는 동상들 사이에 붉은 깃발을 들고 서있는 작가의 행위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각색된 ‘외상’에 끼어든 유일한 실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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