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엽(Lee Sang-Yup)

1967년12월03일 출생

서울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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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말

DMZ, 6월의 그 푸르고 이상한 숲
철원에 다녀왔다. 서울도 비가 온다기에 취재 망치는 것 아닌가 했는데, 이곳은 비가 오지 않는다. 작년부터 DMZ가 보이는 전망대에 수 없이 올랐지만 이곳 태풍 전망대는 민간인 비공개지역이라 조금은 특별하다. 그곳에서 대대장에게 사진에 대한 준수사항은 이미 알고 있으니 조금만 더 시간을 내달라하고 풍경을 감상했다. 역시나 이날도 흐리다. 거의 한 번도 맑은 날을 보지 못했다. 운이라 생각할 밖에. 하지만 그 풍경이 내겐 더 좋다. 무엇인가 감춘 듯, 슬픈 듯, 우울한 듯. 마침 비도 내려줄 것 같다. 수첩을 꺼내 평소와 다르게 시 한줄 적는다.

남북이 싸질러놓은 불길에도 / 푸르렀다. / 한 치 틈도 없이
6월, DMZ는 그랬다. / 골프장처럼 / 화원처럼 / 원시림처럼 / 푸르렀다.
그곳에서 민족을 생각했냐고? / 그곳에서 분단을 생각했냐고?
그냥 푸르렀다.

내 망막은 / 내 뇌는 / 그저 푸르름을 먼저 알았다.
300mm 망원 렌즈 너머로 빠져들 듯 / 임진강을 본다. / 하지만 내가 다가간 것은 아니다. / 그저 확대됐을 뿐 / 나는 제자리에서 한 치도 다가서지 못했다.

강은 푸르렀다. / 푸른 제복 입은 GOP 경계병이 담배를 핀다. / 웃음기 없는 이 청춘의 연기도 푸르렀다.

태풍전망대로 세찬 바람이 지난다. / 펄럭이는 유엔기도 푸르렀다. / 그냥 모든 것이 푸르렀다.

요즘 참 우울한 날들이다. 누군가의 죽음은 타인에게 많은 고민의 시간을 준다. 나 역시 그 고민 속에서 걷고 찍고 생각한다. 분단의 땅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하지만 황홀함이 아닌 쓸쓸함이다. 이 땅 DMZ는 전쟁 중에 죽어간 수많은 영혼들을 품고 있고, 수많은 지뢰를 품고 있으며, 주기적으로 맹렬한 불덩어리를 품고 있다. 인간의 인위적인 조작은 아니지만 이 풍경은 결코 자연 그대로는 아니다. 그 변형된 풍경은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슬픈 아름다움이다. 저 푸른 나무들과 숲을 보면서, 사랑하게 됐다. DMZ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