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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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소리는 음악이며 모든 행위는 음악이다.” - 존 케이지(J. Cage)
인간의 감각은 외부에서 오는 자극이 뇌에 전달되면서 연상 작용을 거쳐 감성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한 감각 중에서도 우리는 대부분의 정보들을 시각을 통하여 받아들이고 있다. 시각은 뇌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다양한 감각을 일깨운다. 시각적인 이미지는 청각을 자극하는 소리와 합쳐져 다중감각을 경험하게 될 때 비로소 공감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원래부터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은 시각적인 것과 청각적인 것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 얽혀있다. 사람들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만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음악은 순수한 소리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전이되는 공감각으로 이루어진 예술이다. 음악가는 단순하게 손으로만 연주하지 않는다. 그들은 끝없는 연구와 연습을 통해 소리를 내기 위한 능력을 극대화하고, 음악적 활동인 연주를 통하여 손짓, 몸짓, 눈빛, 표정, 언어를 가지고 자신만의 색을 담은 음악을 표현해 간다.
음악이 계산된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이라면 단지 정해진 이미지와 소리만을 생산해 낼 것이다. 하지만 연주회에 가보면 음악가들은 그들의 행위 속에서 독특한 연주기법을 통하여 각각의 운율과 리듬을 만들어 청중에게 전달한다. 그들은 악보 위에 없던 부분까지도 즉흥적인 연주를 통하여 예기치 않은 순간에 극적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청중은 이미 알아왔던 음악조차도 새로운 느낌을 갖게 되고 연주자들이 내는 소리는 무대의 시각적인 이미지와 함께 또 다른 세계로의 여행을 도와주게 된다.
나는 그들이 무대에서 펼치는 퍼포먼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모든 움직임과 연주가 머릿속에 하나의 이미지로 저장되는 것을 종종 느끼고 있었다. 내 눈은 그들을 바라본다. 또한 내 귀는 대상의 움직임을 통해 촉각적인 감각까지 동원하여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러나 사진 속 음악가들의 행위와 소리들은 모두 과거의 시간 속에 존재한다. 그들의 연주를 듣고 있는 순간이나 그들의 연주가 힘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은 현재겠지만 이미지에 담겨진 모습들은 이미 존재했던 시간들이다. 나는 그 시간에서 벗어나 대상의 존재를 층층이 쌓인 시간의 힘을 빌려 보여주고자 하였다.
사진은 본래 어떤 실재의 흔적(Trace)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