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동(Ko Hee-Dong)

1886년 서울 출생 - 1965년 사망

서울에서 활동

학력

1915년 도쿄미술학교 미술 전공 기타

경력

1960년~1961년 민주당 참의원의원
1955년 대한민국예술원 원장
1954년 대한민국예술원 종신회원
1952년 국민당 상임위원
1949년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장
1948년 한민당 상임위원, 서화협회 회장
1918년 서화협회 총무, 중동고등보통학교 교사, 보성고등학교 교사
1915년 휘문고등학교 교사
1905년~1911년 궁내부주사 예식관

수상경력

1949년 서울특별시문화상

단체전

2018 내가 사랑한 미술관: 근대의 걸작,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서울
2014 대한민국 예술원 개원60년 <어제와 오늘>,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서울

추가정보

최초의 한국인 서양화가. 한국 최초의 미술유학생으로 일본에 가서 서양화를 공부하였으며 귀국하여 휘문·보성 등의 학교에서 서양화를 가르쳤다. 대한미술협회장, 대한민국예술원장 등을 지냈다. 1949년 서울시문화상을 받았다.

1886년 3월 11일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본관 제주(濟州), 호 춘곡(春谷)이다. 1903년 한성법어(法語)학교를 졸업, 이듬해 궁내부주사로 들어가 예식관(禮式官) 등을 역임하고, 이 무렵부터 취미로 서화를 시작하여 안중식(安中植)·조석진(趙錫晉)에게 배웠다. 1908년 한국 최초의 미술유학생으로 일본에 가서 도쿄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였다. 1915년 귀국하여 휘문·보성·중동 등의 학교에서 서양화를 가르쳤다.

1918년 서화협회를 창립하여 새로운 미술운동을 전개하고 그 일환으로 협전(協展)을 18회나 개최하였다. 8·15광복 후 대한미술협회장,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장 등을 역임하고, 1948년 한민당(韓民黨) 상임위원, 1949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 심사위원장, 1954년 대한민국예술원 종신회원, 1955년 대한민국예술원장으로 선출되는 한편 민주당 고문, 민권수호연맹위원장 등으로 추대되었다. 1960년 민주당 공천으로 참의원의원에 당선되었으며 1961년 이후는 은퇴하였다.

당초 조선 후기의 화풍을 잇고 일본에서 서양화를 배워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가 되었으며 1920년대 중반부터 다시 동양화로 전환하여 전통적인 남화(南畵) 산수화법에 서양화의 색채·명암법을 써서 감각적인 새로운 회화를 시도했다. 1949년 서울시문화상을 받았으며, 그가 죽자 예총장(藝總葬)으로 치러졌다. 작품으로 《금강산진주담폭포》 《탐승》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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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리강매(눈 속에 핀 강변의 매화)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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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표백(맑은 시냇가 빨래)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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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저횡행(갈대밭에서 옆으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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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채를 든 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61x46cm, 1915,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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