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균(Ju Se-Kyun)

1980년 출생

서울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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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말

언젠가부터 세상을 읽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전까지 나의 생활은 단조로웠지만 만족 했던 것 같다. 교육은 나에게 양질의 ‘질서 감각’과 ‘도덕적 기준’을 정해 주었다. 아무런 거부 없이 받아 들이던 어릴 적 나의 모습은 사회라는 큰 울타리에서 하나의 구성원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목격하게 되는 비도덕적, 비윤리적 폭력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기준을 흔들어 놓았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 것인지 모르고 선과 악의 기준이 없어 지는 것을 목격하는 그때, 가장 평범했던 나는 더 큰 상처를 받는다. 어쩌면은 있지도 않은 기준들이 사회적 약속처럼 속여지다가 자기에 필요에 따라 이리저리 요동 치는 것처럼 보였다. 세상은 너무나 큰일을 겪어도 시간이 지나면, 그래서 우리의 기억에서 희미해 질 때쯤이면, 사소한 일 인양 기지게 한번하고 다시 움직인다. 속았다 라는 생각은 잠시고 나도 아차 하는 순간 자신과 누군가를 속이고 있다.

시골 길을 걸어가다 혹은 다른 나라로 여행을 하다 보면 도로 위에 서 있는 이정표를 보고 웃을 일이 많았다. 표준화가 안 된 이정표는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될 경우가 많다. 흔히 말하는 픽토그램은 상형문자와는 다르다. 문자의 시대 이후 만들어진 그림문자는 인종과 언어를 뛰어 넘는 공용성 때문에 여러 분야에서 이용되어 왔다. 하지만 종종 겪게 되는 생경함을 느낄 때면 항상 일반적인 해석은 불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만약 이러한 해석의 문제를 좀 더 확대 시킨다면 수많은 다른 해석 위에 표준이라는 일방성은 큰 폭력이 되기도 한다. 많은 부분을 잊어 버렸지만 과거 내가 사회에서 겪었던 불편함을 기억해보면 수많은 상식적인 기호들이 가지고 있는 기준은 항상 변해 왔다. 그리고 또 다른 기표와 기의가 부족해진 빈자리를 다시 메우게 된다. 그러면 그것은 다시 상식이 된다.

나와 타자 혹은 나와 사회 속에서의 해석이라는 기능은 정해져 있는 기호들 간의 약속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것은 조밀한 질서의 균형 속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릴 적부터 그 체계에 대한 교육을 받았고 그리고 나 또한 그 형식의 일부분이 되어갔다. 하지만 이러한 링크 속 질서들이 흔들리기 시작 하면서 의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내가 해석해 나가는 곳곳에서 기존의 결과와는 다른 반응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기호적 약속이 무너지는 현상을 책이라는 소재를 통해 그리고 텍스트를 통해서 구성해 보았다. 책이라 함은 사회의 기호적 약속과 전달이라는 효율이 가장 완벽히 재현되어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나는 읽을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보이니치 필사본의 암호와도 같은 해석 불가능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