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명진(Myungjin Yang)

1978년07월06일 출생

서울에서 활동

작가 프로필 이미지

소개말

1 . 생업의 발견 Series : 2009-

나는 작업을 통해 현실 너머의 생경한 주제들을 지양하고, 미술가를 동떨어진 유별난 존재가 아닌, 사회 속의 생활인으로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그래서 가장 가깝고도 가장 절실한 삶의 테마인, ‘생업’의 단면들을 작업에 담아보았다. 대중 위에 군림하는 천재나 스타 작가가 아닌, 투박하고 비루한 생활인으로서 작가의 삶의 모습을 반영하고 싶었다.

수많은 작가들이 프리터로 살면서 part time 아르바이트와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라 수많은 직군을 전전하다가 그 중에서 그나마 작업과 생업을 병행하기 가장 적합한 비정규 강사직에 몸담게 되었다.

획일화되고 단순반복적인 이 생업 자체는 나에게 큰 보람을 주지는 못했지만, 어느 날인가부터 나는 이 생업의 과정에서 새로운 시각적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멋지게 완성시킨 아동화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아이들이 버린 망친 그림, 낙서 같은 난화, 미완성의 참고그림, 자투리 재료 등에서였다.

나는 매 수업이 끝난 후 남은 재료와 각종 부산물들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이들을 화면에 꼴라주하거나 잘게 부수고 갈아서 화면에 밀착시켜 보았다. 석고와 미디움 등의 유동성의 재질과 각종 아동미술 재료들 특유의 달콤한 색상들이 한데 뒤엉키면서 고단한 생업을 이어나가는 작가가 뱉어낸 축축하고 번들거리는 토사물과 같은 결과물이 도출되었다.

2. 수납 (受納) Series : 2011-

어느 날 “신(新)쪽방촌”과 “신(新)빈곤층”에 대해 다루는 TV 시사 프로그램을 보았다. 이 프로그램이 취재한 한 청년의 집은 발 디딜 틈 없이 좁은 초소형 원룸이었는데, 수납공간이 부족하여 부엌찬장에 옷가지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고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나 역시 자취방 겸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는 장소의 수납공간이 부족하여 부엌찬장에 옷가지와 가방 등을 수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장면을 보자마자 나는 바로 부엌으로 달려가서 찬장을 열어보았다. TV 영상에서 본 것 보다 훨씬 더 초라하고 볼품없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투룸의 자취방이라 그 청년의 집보다는 실평수가 넓지만, 이곳에서 숙식과 작업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체감하는 넓이는 절대적으로 비좁기 짝이 없다. 게다가 작업을 진행하여 작품 수가 늘어날수록 그만큼 더 작업 공간은 좁아지기 마련인데다, 나와 같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젊은 작가들은 작업실의 변동과 이사가 잦기 때문에 옷장과 같은 큰 가구를 사들이는 데에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철지난 옷들과 가재도구들을 수납할 공간이 턱없이 모자라 이렇게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수납(受納)의 방식을 취하게 된 것이다.

이 경험은 나에게 파격적인 계급적 자각을 불러 일으켰다. 작업을 위해 정규직으로 일하던 회사에서 퇴직하고 각종 비정규직 일터들을 전전하고 있는 나는, 피를 말리는 경쟁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도태되어 최저생계비 조차 벌지 못하는 나는, 남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신빈곤 계층의 한복판에 서있었던 것이다.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는 행위를, 벽장을 열고 커밍아웃한다고 은유적으로 표현하는데, 나는 말 그대로 나의 부엌찬장을 열어 보임으로써, 이 시대를 살아나가는 젊은 예술가들의 계층적 정체성을 드러내 보이고자 한다.

각종 가재도구들, 옷가지들, 작업을 위한 재료들, 작품들, 아동 미술 재료들, 상업 일러스트 작업들, 거기에다 동거하는 고양이 두 마리를 위한 애완 용품들 까지, 나의 자취방 겸 작업실은 마치 데페이즈망(dépaysement)처럼 서로 어울리지 않는 사물들이 엉뚱한 공간에 어지럽게 뒤섞여 있다. 나의 삶과 가장 밀착한 이 공간의 실내풍경, 그 중에서도 마치 오브제들을 조립하듯 여러 사물들을 수납(受納)한 부분들을 연출 없이 거칠게 촬영해 보았다. 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작가들의 치열한 삶에 대한 다큐멘터리이자, 자신이 처한 현주소를 직시하고 그 깨달음을 기록하고자한 작가의 자화상과 다를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