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Jinyoung Lee)

1973 출생

서울에서 활동

작가 프로필 이미지

소개말

오랜 외국체류와 이주의 경험은 자연스럽게 낯설음과의 대질, 그리고 무의식중에 잠재되어 있는 죽음에 대한 공포 또는 강박증 등이 나의 일상에 커다란 질문으로 남아 제 작업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런 사유에서 시작한 작업인 폴리클리닉 "Polyclinic,2005" 은 더 이상 우리의 삶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공간인 병원, 응급실이나 물리치료실, 고압 산소(O2)치료실 등에서 의료기계(인공물)와 그러한 인공물들 속에서 존재하는 자연인 사람을 테마로 작업을 한 것입니다. 내 자신이 이러한 공간속에서 관찰자의 입장인 동시에 두려움과 공포심을 느끼는 것은 비단 병원에서 뿐이 아닌 현재 우리의 일상에서 종종 마주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엘리베이터나 지하철역등, 특히 병원은 이러한 것들이 응축된 곳으로서 근원적인 우리의 치유라는 문제 앞에서 가장 첨단의 테크놀리지를 마주하는 곳입니다. 그곳의 인공물인 기계는 이러한 이중의 징후들을 그렇게 우리에게 던집니다. 그러한 자연과 인공의 첨예한 대립이 하나의 정물에 느껴지게끔 대형카메라로 촬영되었고 실제로 그 정물은 우리에게 양존병립하게 하는 심리적인 자극을 줍니다. 이것은 분명 상징으로 표현되는 것과는 다른 사진만의 표현방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근간에 제가 촬영한 대상들은 대부분이 외관상으로 깨어진 것들 혹은 닳아 매끄러워진 것들입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게 균열된 120여개의 다리의 보호유리벽을 연작으로 촬영한 작업 “로덴키르헨의 다리” "Rodenkirchener Brueke, 2004" 나 사고 난 자동차를 찾아 고물상을 찾아다니며 폐차되기 직전의 차를 골라 그것을 다른 장소로 옮기고 광을 낸 뒤 광고사진처럼 위장해서 촬영한 "Car- wreck, 2005"시리즈 등은 일순간의 충돌 혹은 "Bronze of Serclaes, Brusssels,2005"처럼 오랜 시간의 마찰에 의해 발현되어진 인공적인 흔적들입니다. 이 대상들을 촬영하면서 내내 스스로에게 남겨진 것들은 대부분이 통념적인 형용사들뿐이었습니다. 반짝이고, 미끈하고, 섬뜩하고, 차가운, 투명한, 등등.. 이런 이름을 갖지 않은 것들, 이런 징후들을 바라보며 그곳에 서서 그것을 촬영하는 것은 나에게 많은 신음을 하게 했습니다. 그것은 그 대상을 바라보는 나에게 있어 단지 현상에 취해 망막으로만 세상을 바라보지 않나하는 염려도 있었지만 그 순간 그 현장에서의 모든 사건들은 실로 필름위에 빛을 맺히게 하는 것만큼 내게 절실한 것은 없었으며 내가 현장의 관찰자가 아닌 사건의 중앙에 참여하고 있다는 긴장감이 작업의 컨셉트와 주제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여기서 나는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중요시 하는 사진가의 부재하기 즉, 순수 관찰로서의 객관으로써의 설정된 시선과는 구분하고 싶습니다. 나는 분명 사건과 마주하고 있으며 사진기의 프레임을 통해 피사계의 심도와 노출을 통해 내 앞에 주어진 세상을 나의 주관으로 먼저 조작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증인이 없는 저 멀리 우주에서 전송되는 기계로 촬영된 화성의 사진과는 다른 것 입니다.

최근작업인 Wet Corrosion(습식:濕蝕)은 옛 습판사진술(Wet Collodion Prozess)의 하나인 암브로타입(Ambrotype)을 매체로 물의 질료적 속성을 강조하면서 해석되어지는 ‘기호로서의 이미지’가 아닌 ‘물질로서의 이미지’로의 시도를 하는데 그것은 유리판이 젖어있을 때 노출하고 현상까지 모두 젖어 있는 상태에서만이 가능하며 젖은 점액질이 마르면서 비로소 투명해지는 콜로디온(Collodion)이라는 화학물의 성격이 이 작업의 사진술로서만이 아닌 작업의 모티브가 됩니다. 콜로디온 유제를 유리판에 도포해 노출 직전에 질산은 용액으로 감광성을 주어 음화를 얻는 기법으로 장노출을 하고 감광제가 마르기 전에 암실로 가져가 현상까지 해 주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주로 암실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촬영을 하고 그래서 주로 정물과 포트레이트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아날로그의 기술적 한계와 번거러움에서 나온 작업의 프로세스는 장노출과 현상 등을 거치는동안 우연과 필연으로 만들어진 미세한 긁힘이나 자국, 먼지까지 내 작업에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요소이자 창작의 근원이 되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