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윤기(Baik Yun-Ki)

1955년 출생

서울에서 활동

학력

년 강원대학교 교육 전공 석사
년 강원대학교 미술교육 전공 학사

추가정보

간결한 형상이 주는 풍성한 울림

온통 눈이 하얗다. 겨울답지 못하던 겨울과 올해는 다르다. 눈 덮인 언덕이 있는 마을은 동화 같은 꿈을 꾸어야 옳다. 그렇지만 겨울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다. 한파와 함께 구제역은, 농가만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많은 것들을 아프게 한다. 실은 병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선고가 더욱 무섭다. 위생의 법칙, 자본으로 환원되는 온갖 가치. 손해 보는 일이면 가차 없는 생명 단절 선고가 내려진다. 길을 가로막은 방제와 눈길 사이를 덮은 흰 눈같이 날리는 석회까지 스산한 겨울을 더욱 춥게 하는 요즘이다.

간결한 형상

그 길을 따라 백윤기의 조각 작업실이 자리하고 있다. 원래 가던 길을 방제 편의를 위해 몇 십리를 돌아들어가게 하는 통제까지 더해진 길이다. 찬 기운이 가시지 않는 그의 작업실에 수많은 조각들이 늘어서 있다. 그 작품들에는 따뜻함이 서려있다. 전부터 본 작품들은 눈에 익은 것도 있지만 이번 전시에 내놓을 작품들에선 특히 간결한 처리가 돋보인다. 군더더기 없는 형상에 살짝 미소를 머금게 하는 포즈. 그 앞에서 세상의 진리를 찾으려고 고민할 필요는 없다.
서있는 아이들은 살짝 다리를 꼬고 있다. 누구나 살짝 고개를 낮추거나 뒤를 돌아보거나 할 뿐 도발적으로 시선을 들고 있는 경우는 없다. 조용히 쓰다듬고 싶을 만큼 아이답고 귀엽다. 뒤로 손을 감춘 아이의 손에는 사과가 들려있다. 좋아하는 아이에게 수줍게 선물 하려하는 깜찍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가만히 눈을 감으면 오래도록 떠오를 것 같은 모습들. 그렇게 간결할 뿐인데 그것이 두고 두고 마음에 남는다. 그 형상의 힘은 무엇 때문일까.
미술이 갖는 독특한 아우라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아우라로 승부할 수 없는 무한복제 시대라지만 어떤 작가만의 작품이 가진 독특한 분위기가 있는 건 확실히 미덕이다. 그의 작품은 간단히 눈을 스쳐도 곧 떠올릴 수 있는 편안한 형상으로 우리에게 각인되고 만다. 아우라가 과장이라고 한다면 그저 쉽게 지울 수 없는 독특한 느낌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건 뭘까. 아마도 뵐플린이 정의한대로 ‘불명확성’이 어울리는 말이지 않을까. 르네상스미술이 형태의 명확성이라면 바로크가 불명확성이라고 했던 바로 그 특징. 그렇지만 그 불명확성은 모자람이 아니라 훨씬 격정적인 풍성한 감성을 유발하는 요인 이이라는 그것 말이다. 백윤기 작품은 그런 강점을 지니고 있다. 너무나 명확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그저 드러내고 말뿐인 것이 아니라 무언가 말할 수 없는 추억 속으로 우리 감성을 빠져들게 하고 만다.

생략이 말하는 표정

형상은 무엇을 생략하고 있나. 인물은 얼굴로 말하지 않는다. 눈 코 입은 희로애락을 일일이 드러내지 않는다. 인체의 근육으로 포즈를 설명하는 법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표정을 읽는다. 둥글고 큰 머리에 동물 특유의 선도 없이 만들어진 강아지도 그렇다. 그럼에도 긴장된 힘과 갸우뚱한 표정을 읽을 수 있다. 명확함을 버린 것이 어찌 명확한 내용을 얻을 수 있을까.
모더니즘의 엄격성에 질린 이 시대에 감성적 울림은 작품의 또 다른 생명선과도 같이 여겨지고 있다. 묘사 보다는 ‘표현’의 문제가 강조되는 것이 그렇다. 작품 자체의 완결성보다도 작품이 남기는 여운과 그 파장이 만들어가는 ‘사건의 철학’ 역시 이런 문맥을 잘 설명하고 있다. 작품이 작품 자체의 의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계열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것도 그렇다. 모던의 말미에서 미니멀의 엄격성이 오히려 폭발적인 상황의 논리에 불을 붙였던 것처럼 미술의 트렌드는 더 이상 하나의 의미에 머물 수 없음을 목격하고 있다. 똑같은 인물이, 맡은 역할과 표정에 따라 얼마나 다른 사람이 되던가. 그 표정과 역할이 없을 때 전혀 보잘것없는 인물이 되기도 한다는 것에 놀랄 일도 아니다.

미소 짓게 하는 유머

백윤기의 유머는 이야기로서의 유머가 아니다. 슬며시 돌아보며 알아챌까 말까한 조용한 느낌으로서의 유머다. 작품 포즈 속에 숨어 있어 처음부터 드러나지 않는 것이 많다. 비스듬히 서 있는 아이의 모습이나 기지개를 켜고 있는 고양이의 꼬리 끝 선에 가서야 살짝 얹혀있는 개구리나 달팽이가 발견하게 하는 세계다. 긴 목선을 빼고 뒤로 긴장된 힘을 주고 서있는 말에서는 민달팽이가 말의 갈기를 대신하고 있다. 꼬여있는 개의 꼬리인줄 알았는데 개구리가 붙어 있는 형상도 마찬가지다. 포복절도할 해학보다는 슬며시 미소 짓게 하는 따뜻함. 그것이 진정으로 세상을 힘 있게 읽고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한 때 그도 리얼리티의 뜨거운 피로 귀기(鬼氣)를 번뜩였던 때가 있었다. 그땐 타협할 수 없는 치열함에 속 시원한 갈채를 선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그라고 해서, 이제 맥이 빠진 것은 아니다. 그가 더욱 건강한 웃음으로, 더욱 힘 있는 작품으로 세상을 읽고 있음을 보게 된다. 강자가 세상을 원망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니체의 말대로, 양이 독수리를 저주할지는 몰라도 독수리는 결코 양을 저주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을 따뜻하게 읽을 수 있는 힘. 그렇다, 그것은 분명 힘이다.

또다시 겨울이 서서히 걷힐 것이다. 백윤기 조각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더욱 많아질 것이다. 그의 이 전시가 각인할 작풍(作風)은 충분히 세상을 따뜻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 형 순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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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들이

    bronze, 60x38.5x84.5c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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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이

    bronze, 17.7x16.5x79.5c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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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와 소년

    bronze , 22.8x29x91c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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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여름

    bronze, 18x18.4x79.3cm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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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윤기 초대展

    장은선 갤러리

    2013.02.13 ~ 2013.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