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규(Jinkyu Kwon)

1922년 함경남도 함흥 출생 - 1973년 사망

서울에서 활동

학력

1953년 무사시노미술대학 조각 전공 학사

경력

1943년 3월 춘천 공립중학교 졸업
1947년 속리산 법주사 대불 제작에 참가 및 성북동회화연구소에서 미술을 배움
1948년 일본으로 건너감
1949년 9월 무사시노미술학교 조각과에서 1953년 3월까지 시미즈 다카시(清水多嘉示)에게 사사함
1951년 석조를 시작함.
1956년 부르델 전시(도쿄 브리지스톤 미술관)를 계기로 더욱더 부르델에게 심취
1958년 일양회 제 4회전람회에서 일양상을 수상하여 회우(會友)로 추천됨.
1959년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연락을 받고 귀국하여 동선동에 아틀리에를 지음
1960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조각을 가르침
1961년 숭례문 중수작업에 1963년까지 제도사로 참여
1962년 <성웅 이순신> 영화촬영세트 제작에 참여 및 이후 지속적으로 영화, 연극 무대 제작에 참여
1963년 덕성여자대학 의상학과와 생활미술과에서 강의함
1964년 건축, 고미술을 모티프로 한 테라코타, 부조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함
1965년 9월 신문회관(서울)에서 권진규 조각전을 개최(수화랑 주최)
1968년 7월 니혼바시화랑(도쿄)에서 권진규 조각전을 개최 및 <애자>와 <춘엽니>를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에 기증함
1970년 건칠작품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제작
1971년 12월 명동화랑(서울)에서 개관1주년기념 초대전으로 권진규조각작품전을 개최 1972년 3월3일『 조선일보』의 시리즈 기사「예술적 산보」 화가의 수상⑧에「노실(爐室) 의 천사를 작업하며 읊는 봄, 봄」을 발표
1973년 5월 4일 고려대학교 박물관 현대미술실 개관전에 전시중인 자신의 작품을 본 후 자결함.

수상경력

1952년 제 37회 이과전에 <백주몽>을 출품하여 입선
1953년 제 38회 이과전에 <기사>, <마두A>, <마두 B>를 출품하여 특대를 수상함.
1954년 제 39회 이과전에 <마두>, <말>을 출품하여 입선
1955년 제 40회 이과전에 <마두A>, <마두 B>를 출품하여 입선

단체전

2018 내가 사랑한 미술관: 근대의 걸작,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서울
2013, 화가의 여인, 나부裸婦 : 한국근현대누드걸작展 1930~2000, 롯데갤러리 본점, 서울

추가정보

吳光洙(미술평론가)

彫刻家 權鎭奎氏가 自殺하였다. 그것뿐이다. 누구의 죽음이든, 또어떠한 형태의 죽음이든 딴 사람이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한다는 것은이미 奢侈스러운 일이다. 그의 自殺을 園繞한 이야기들이 아무리 미화 된다해도 그의 죽음이란 리어리티에 비해서는 너무나도 엄청난象外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왜 自殺이란 方法을 택하지 않으면 안되었을까. 역시 그것은 그만이 아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의 죽음을 통해 하나의 事件으로서보다는 行爲의 연장을 연상하계 되는 것은 그의 죽음이 行爲의 意濫로서 이미지 되기 때문이다.
思考가 끝나는 지점에서 行爲가 시작되지만 行爲는 行爲에 의해서끝난다는 이 모순을 그의 죽음은 示唆한다. 그의 죽음은 작품이 갖는끝없는 行爲의 지속을 자동차사고란 行爲로서 끝내었던 플록의 죽음과 이러한 경우 그와 너무나 유사하다. 그는 行爲란 의미를 가장 짙게 체득한 彫刻家였다.

權鎭奎氏의 작품을 처음 대한 것은 1964넌 경인가 新聞會館畵廊에서의 個人展때였다. 그러니까 일본서 돌아와서 몇 년후가 되는 해였다.國內에선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이 未知의 彫刻家는 이미 日本式裁野美術學敎에서 修學하고 二料會멤버로 있던, 그곳에선 상당한 지반을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國內展에서의 반향은 괘 냉담하였다. 거기엔 몇 가지 이유가 없지 알았다. 무엇보다도 個人展이 열리는 54년경 전후라면 한국 현대조각이 가장 왕성한 실험기에 접어들던 무렵이다. 抽象彫刻의 등장과 새로운 材料회 실험이 가장 활발히展開되기 시작할 무렵이다. 그의 고답적인. 아나크로니즘이 좋은 반응을 가져올 리 만무한 일이다. 이 점은 다를 각도에서 본다면 近代彫刻의 傅統이 뿌리를 갖고 있지 못한 한국미술의 편견이라고도 말 할 수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個入展을 계기로 그을 國內 美衡界에 할려졌고, 또 그 이후 몇텃 건랑최에. 作品율 내 보이는 밀이 있었다. 그간 日本에서의 個入展을 갖는 외에는 별 활동히 없다가 71년 겨울 明東畵廊에서 두번째國內展이자 마지막 展示가 된 個入展이 열리면서 그에 대한 印象은 비교적 새롭게 미술계에 부각되었다.

이때 낸 作品은 테라·콧타(Terra Cotta)와 乾漆이란 독보적인 방법에 의한 것이었다. 질흙을 빚어 가마 속에서 구워내는 陶器의 제작과정과 같은 테라·콧타와 질흙 위에 漆液반죽해서 발라 올린 乾漆이란 方法은 우선 그 제작과정이 독특한 것이지만, 이를 시도하는 彫刻家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도 그의 作業의 일관성에 대한 많은 이해자를 만들어준 기회가 되었다.
테라·콧타에 의한 格調높은 肖像彫刻의 일련의 作品을 보여준 것 도 이때였으며 그것이 그의 作家的이미지를 뚜렷하게 이끌어준 것이기도 하였다. 결국 그는 이 個人展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뚜렷하게 부각시킨 셈이다. 또한 이때 韓國的리어리즘을 추구하겠다는 그의 발언은 많은 示唆를 주기도 했다. 이 점은 그의 作品을 지배하였든 巨匠들의 影響이란 무거운 그림자를 그 자신이 의식한 새로운 도약으로서의미를 지니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韓國的 리어리즘이란 어떤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형상화시키지 못한 채였다. 轉國的 리어리즘의 形成이란 그에게는 너무나 벅찬 테제였던 것이 아닌가. 결국 그러한 스스로 짊어진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 강박관념이 그의 죽음의 한 요인이 된 것은 아닌가. 그는 역시 體質的으로 藝術史는 소수의 天才에 의해 지배된다는 H·리드의 말처럼 〈天才形의 作家〉의 유형에 속하는 조각가다. 이러한점에서 본다면 그가 로댕, 부르델에 연결되는 傳援形의 작가란 점도결코 우연만은 아닌 것같다. 로댕이나 그를 이은 마이욜 , 부루델도 偉大한 彫刻家였다. 權鎭奎氏의 作家的 存在도 이 偉大한 彫刻家像에서떠 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결코 新藝術의 創造者는 될 수 없었다. H·리드가 지적한대로 이미 近代彫刻의 展開는 오히려 로댕이나 부르델 쪽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세잔느란 畵家쪽이란 점은 이 경우 많은 示唆를 던져준다. 로댕은 大藝術家이긴 했으나 세잔느와 같은 意味에서의 創始者는 아니었다. 즉 로댕이나 그를 계승한 마이욜이나 부루델은 그 자신들은偉大한 彫刻家며 銳敏한 藝術家였으나 彫刻의 未來의 發展에는 아무런 貢獻도 남기지 못했다는 리드의 말은 우리들의 權鎭奎氏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는 로댕이나 부루델같이 偉大한 彫刻家는 될 수있을지언정(실제 그는 淸水多嘉示에서 부루델, 로댕으로 이어지는 계 보의 작가이다) 새로운 彫刻의 비전을 제시하는 藝術家는 될 수 없었다. 세잔느 뒤에는 피카소, 곤자레스, 부랑쿠시, 아르키펭코, ?츠, 로란스 같은 새로운 彫刻의 方法을 연 創始者들이 이어질 수 있었던 것에 비하여 그의 뒤에는 결코 이러한 創始的비전은 기대할 수 없었 다.

그의 作業過程이나 行爲가 陶工의 그것과 가장 닮아있다는 것도 이 러한 創始的 유형에서 벗어나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다. 그는 陶工 와 같은 制作의 無償性을 누구보다도 짙게 의식한 작가였던 것 같다.本質的으로 彫刻이 視覺보다도 觸覺에 의한 藝術이란 것을 가장 민감 하게 체득하고 있었든 그에게 실험성으로 연결되는 한국적 리어리즘 의 形成이란 테제는 이미 그것 자체가 엄청난 모순을 지니고 있는 것 이 아닌가.
그가 죽기전 한 때 佛像에 깊이 傾倒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혹시 이 佛像을 통해 그의 彫刻的 歸依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되지만, 역시 實驗性을 동반하는 한국적 리어리즘의 形成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그에게 있어 實驗이란 造形의 文法상의 그것이 아니라 해프틱(內部觸覺的) 한 그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이 경우도 짙게 느낄수 있다.

고독이란 말처럼 진부해져버린 말도 없다. 그러나 때때로 그것을 쓰지 않으면 안될 경우가 있다. 바로 彫刻家 權鎭奎氏를 두고 말이다.그의 마지막 行爲도 이 바깥과의 斷絶을 고수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해석 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는 한 사람의 偉大한 藝術家는 될수 있을지언정 創始者는 될 수 없었다. 한국 현대조각에 어떤 비젼도 줄 수 없다는데 이 아나크로니스트의 悲劇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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