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부산비엔날레 ≪어둠에서 보기(Seeing in the Dark)≫
2024.08.17 ▶ 2024.10.20
2024.08.17 ▶ 2024.10.20
전시 포스터
‘어둠 속에서 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이는 우리가 처한 곤경을 말합니다. 알고 있지만 동시에 미지의 영역이기도 한, 우리를 두렵게하는 장소를 항해하는 일이자, 이전과는 다른 저 너머를 상상해야만 하는 긴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정치적 국면이라는 현실을 두고 볼 때, 우리는 어둠 속에 갇혀 있습니다. 세상의 역학 관계는 여전히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동합니다. 오랫동안 유럽의 계몽주의는 '빛'이라는 개념의 자장 안에서 사고되었고, 지식은 가시성을 통해서만 나타난다는 믿음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둠을 꾸짖어 쫓아내는 대신, 어둠의 깊이야말로 포용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바라보고자 합니다.
2024부산비엔날레 ≪어둠에서 보기≫는 '해적 계몽주의'의 관념을 한 축에, '불교의 깨달음'이라는 관념을 다른 한 축에 두고, 둘 사이의 정신적 공간에서 펼쳐집니다. 우리는 이러한 공간이 감시·산업 복합체의 투명성 요구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론가 프레드 모튼(Fred Moten)과 스테파노 하니(Stefano Harney)가 일컫는 '도망자 계몽주의'를 촉발하는 것으로서, 우리는 예술 실천을 ‘속임수’라는 도망자 전략에 비유합니다. 또한 이러한 실천을 은밀하게 작동시키는 전술을 '문화적 실험과 일탈의 또 다른 전통'으로 보고 있습니다.
‘해적 유토피아’는 정부 또는 거대 자본의 손이 닿지 않는 자치 사회의 초기 형태입니다. 다문화적이고, 관용적이며, 성적으로 자유롭고, 때로는 순수한 평등주의를 포용한 사회였습니다. 해적 유토피아 안에서 모든 의사 결정은 문화나 피부색에 따른 구분 없이 가장 뛰어난 해적들로 이루어진 협의체에서 협상과 회합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번 전시 개념의 핵심 인물이기도 한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는 해적들의 이러한 실험이 유럽 계몽주의 운동이 가진 가장 긍정적인 측면의 원형이라고 말합니다.
불교 ‘도량(道場)’의 생활은 세속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공동체 안에서 스스로를 낮추는 일에 중점을 두며, 이는 해적 유토피아 사회의 특성을 보완합니다. 도량에서는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공동체의 규칙과 공동 재산의 처분에 관한 결정을 내립니다. 부처의 모습은 ‘언제나 이미 비어있는 기표’이자, ‘정체성을 비워낸 정체성’입니다. 이는 거처 없는 자, 디아스포라 또는 고도로 세계화된 조건 안에서 방랑하는 ‘장소 없는 자아’를 나타냅니다. 이는 이주민이자, 난민이자, 프롤레타리아 반역자이자, 낙오자이자, 해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번 부산비엔날레의 제목인 ≪어둠에서 보기≫는 지금-여기의 주체에게 깨달음의 잠재력을 능동적이고 우연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다수의 해적이 암흑의 역사 속에서 정부의 눈을 피해 활동해야 했다는 점에서, 수행자들이 고통의 종결을 향하는 길을 찾는다는 점에서, 어둠은 해적 계몽주의와 불교의 깨달음 모두에 닿아있는 요소입니다. 두 역사 모두 풍부한 시각적 유산을 가지고 있으며, 때때로 유쾌한 방식으로 서사와 결합되어 있습니다.
한편 ≪어둠에서 보기≫는 시각적 역설이기도 합니다. 이는 다수의 사람들이 수동적으로 기능할 수밖에 없는 은유적 어둠을 일컫습니다. 예컨대 동물의 야간 투시라는 놀라운 자연의 선물은 어느새 감시 목적의 기술로 전용되었습니다. 어둠은 해방의 공간이자 '원초적' 자각을 일깨우는 공간입니다. 가시적인 체계에 의존하며 통제받는 소비자에 머무는 대신, 다른 감각을 구동시켜 방향을 설정해 보기를 제안합니다.
해적 유토피아와 불교의 도량 모두 해방의 공간이자 의식의 공간을 나타내며, 바로 여기에서부터 세계의 재구상을 상상해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해적선과 도량을 2024부산비엔날레의 개념적 틀을 뒷받침하는 두 가지의 상징적 이미지로 삼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암울한 시대에서 이러한 재구상은 매우 중요하며, 부산비엔날레에 관한 사회적/ 미학적 접근 또한 견인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해적 계몽주의와 불교의 깨달음, 두 지점 사이의 대화는 반드시 어떤 합의를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이념이 서로 다를 수 있고, 심지어 완전한 화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폭력적인 부정의 태도만큼은 지양하며, '비판적 축제'를 만들어내는 참여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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