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두

2020.01.22 ▶ 2020.03.01

갤러리 학고재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 (소격동, 학고재)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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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두

    행 - 아름다운 시절 Asceticism - Beautiful Days 2019, 장지에 먹, 분채 Ink, color pigment on Jangji, 65x4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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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두

    마른 도미 Dried Snapper 2019, 장지에 먹, 분채 Ink, color pigment on Jangji, 178x15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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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두

    나에게로 U턴하다 U-Turn Back to Me 2019, 장지에 분채 Color pigment on Jangji, 77x189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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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두

    No. 1 2019,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16x9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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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두

    느린 풍경 - 덕도길 Slow Landscape - Deokdo Road 2019, 장지에 분채 Color pigment on Jangji, 133x16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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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두

    느린 풍경 - 산이길 Slow Landscape - Sani Road 2019, 장지에 먹, 분채 Ink, color pigment on Jangji, 182x14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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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두

    느린 풍경 - 양촌길 Slow Landscape - Yangchon Road 2019, 장지에 분채 Color pigment on Jangji, 205x150cm

  • Press Release

    멈춤과 느림의 아방가르드

    60년대 중반 이후 개념미술의 등장과 함께 예술계에서 ‘일상이 예술’이라는 말이 생겨나고, 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행과 더불어 수많은 예술가들이 예술의 특별한 가치에 대해 말하기보다 삶 자체가 예술인 것처럼 말하기 시작할 때, 그 프로파간다와 같은 구호를 이해하는 일은 매우 힘들었다. 삶의 모든 행위와 몸짓이 그대로 예술적인 가치로 환원된다고 말한다면, 뭔가 궁극의 유토피아가 달성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치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므로 예술적 행위도 의미 없는 것이 되고 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드는 또 다른 하나의 의문은, ‘일상이 예술’이라고 아무리 외쳐봐야 개념의 차원에서 일상과 예술의 구분은 없어지지 않고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상이 예술’이라고 말하려면 일상은 어떻게 예술적 가치를 획득할 수 있게 되는지 방법론적인 문제가 먼저 선결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김선두의 작업은 나의 오래된 이러한 의문을 다시 끄집어냈다. 〈행 – 아름다운 시절〉(2019)은 20대 후반, 부릅뜬 눈과 굵은 눈썹, 뚜렷한 얼굴의 윤곽선, 바짝 서 있는 날카로운 콧날, 자라는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쭈빗 삐져나온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지닌 젊은 날의 자화상이다. 메마르고 빠른 붓질 때문에 거친 풍파도 헤쳐 나갈 것 같은 강인함이 화면 전체에 퍼져있다. 이 자화상은 60대의 김선두가 20대의 젊은 아름다운 시절을 회상하며 그린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작품은 지금은 사라진 젊은 날 그 순간의 것들을 되돌아보니 아름다웠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이 사라진 이유는 지나온 세월의 족적 때문이다. 월화수목금토일, 날이 지나가는 동안 그날들을 채웠던 순간들이 있고, 그 지나온 흔적들이 쓰였다 지워지고, 지워졌다 쓰이는 삶의 반복 속에서 원숙함이 생겨났지만, 그 반대편, 세상과 맞설 수 있을 것 같은 송곳 같은 당찬 기세나 매서운 눈빛은 사라졌다. 삶의 방법을 몰라 어리숙하고 거칠고, 가진 것 없는 삶이더라도 의지가 있고 지향이 있고, 젊음이 있는 것이 아름답다고 〈행 – 아름다운 시절〉(2019)은 말하고 있다. 즉 아름다움은 매 순간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절정은 한순간이며 상대적이다. 생에는 이처럼 빛나는 한순간의 절정이 존재한다. 이미지로 구성되는 이 작품이 표상하는 메시지는 여기에서 그치지만, 이러한 표상이 단서가 되어 내 의식 안에서 해석되는 의미는 여기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면 그 건너편에 추함도 있기 마련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추함이 없다면 아름다움도 없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은 추함이다. 인간의 삶에 지향이 있다면, 그리고 선택이 존재한다면, 그 선택은 가치판단에 기인한다. 아름다움으로 표상되는 가치판단은 우리로 하여금 세계를 이해하고 판단하며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는 근거다. 즉 아름다움으로 표상되는 판단이란 실체가 없는 이데올로기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상대적 인식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란 이데올로기에 의해 이념적으로 살아가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 가치 부여의 동인은 인간이 유한의 세계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무한의 삶 속에 있다면 어떠한 가치를 부여할 필요도 없고 선택을 할 필요도 없다. 무한의 삶 속에서는 모든 가치가 사라진다. 선택이란 유한의 세계에서 더 의미 있게 살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다시 말하면 유한에 대한 인식은 의미를 낳고, ‘의미’를 인식했기 때문에 모든 ‘가치’가 탄생했다. 인간은 인식이라는 원죄를 가졌으므로 ‘가치’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김선두의 자화상으로부터 출발한 〈행 – 아름다운 시절〉(2019)의 해석이 여기에 이르면 이제 자화상이라는 이미지로부터 벗어나 순수한 의식과 해석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자화상으로부터 출발했으되 자화상에 국한되지 않는, ‘가치’란 무엇인가라는 삶의 근원과 세계 인식의 문제로 전환된 것이다. 〈행 – 아름다운 시절〉(2019)이 감각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사유의 세계로 이끌어 도착한 종착점은 여기이다.

    김선두의 말처럼 가치에 이끌리는 인간이 상대적 인식의 세계에서 관념적으로만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앞서 제기한 ‘일상이 예술’이라는 명제가 성립할 수 없다. 예술이라는 개념 자체가 상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일상과 예술이라는 서로 대척점에 서있는 개념이 하나의 지평선에서 합리적으로 이해되려면 무가치가 가치라는 말처럼,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한 전제가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실 ‘일상이 예술’이라는 말의 기원은 선가(禪家)의 ‘일상선(日常禪)’이다. 일상이 참선이라는 말인데, 일상과 예술이 상대적 위치에 놓인 것처럼 일상과 참선 또한 상대적 위치에 놓여있다. 그렇다면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가 어떻게 참선이 되는가?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참선이 무엇인지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참선은 참선 자체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고, 깨달음을 위한 방법론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참선은 깨달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행위이다. 다시 말하면 참선이란 일상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기 위해 일상에서 벗어나 의식이 특별한 상태로 들어가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일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말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기 위해 특별한 상태로 들어가는 것인데, 문제는 그 세계에 들어가 있는 상황에서도 보고자 하는 세계가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또 발생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참선이란 익숙한 세계에서 더 이상 감각적 새로움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부단한 실천으로 특별한 새로움과 낯선 세계로 들어간 추구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그 세계에서조차 보고자 하는 세계가 보이지 않는데도 여전히 그 세계에 머물러 있게 된다면, 그 세계가 일상과 같은 익숙한 세계가 되어버리는 역설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가 발생한다면 감각적 환기를 위해 낯섦과 새로움을 찾아 다시 그 반대편, 즉 일상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 경우에만 일상이 감각을 환기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로 작동한다. ‘일상선’이란 말은 모든 일상적 경험이 참선이 된다는 말이라기보다, 참선이 일상화된 경우에 참선의 일탈이라는 의미에서 일상이 감각을 재환기하는 의미의 영역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예술이라는 개념 역시 감각의 환기와 인식의 확장이 일어날 때, 삶의 깨달음을 통한 심미적 쾌감을 목표로 하는 것이라면 ‘일상이 예술’이라는 말 역시 ‘일상선’과 동일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술의 세계, 즉 예술은 사기라고 말한 백남준의 말처럼 가상과 허구의 세계에서 거울 작용을 통해 삶의 진실을 보려고 하지만, 여전히 삶의 진실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만 ‘일상이 예술’이 될 수 있다. 이는 아방가르드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다. 전위는 기존의 생각과 표현의 방식을 뒤집는 것이다. 아방가르드는 전복의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전복의 행위를 통해 보이지 않았던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아방가르드에서 삶의 진실이 드러나지 않고 전복의 행위만 계속된다면 전복의 행위가 반복된다는 의미에서 전복이 아닌 답습이 된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아방가르드만 빼고”와 같은 우스개가 노리는 지점이 바로 이점이다. 그러므로 ‘일상이 예술’이라는 말은 경험과 감각의 새로움을 일깨우는 경구(警句)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거울은 세계를 비추지만 허구이다. 그 허상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세계가 항시 보는 익숙함으로 다가온다면 우리의 감각은 굳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거기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작가로써 김선두가 가장 경계해온 것이 바로 감각의 둔화인데, 그는 감각의 둔화는 시간의 경험 방식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러한 이야기는 〈느린 풍경〉 시리즈를 통해 나타난다. 느린 풍경은 속도를 줄이고 볼 때만 보이는 풍경이다. 〈느린 풍경〉 시리즈에서 그는 우리의 삶의 속도를 자동차의 속도에 비유한다. 그러므로 〈느린 풍경〉 시리즈에서 자동차의 속도란 물리적 속도를 말하는 것이 아닌 환경에 내맡긴 성찰이 배제된 상징적 속도와 시간을 의미한다. 그 속도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속도라고 한다면, 김선두는 이러한 속도에서 삶에 대한 진실의 세계와 마주할 수 있는 반성의 계기와 기회는 생기지 않는다고 여긴다. 따라서 내가 의식적으로 반성하지 않는 속도에서 마주하는 세계에서는 원인과 결과를 내포한 총체적 진실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단편적인 최종의 목적지만 보이게 된다. 그에게 자동차의 속도란 과정이 생략된 채 출발 지점과 목적지만을 연결하는 것이다. 또한 그 속도를 유지하는 뒷면에는 이득을 향한 관성과 타성이 존재하게 된다.

    〈느린 풍경〉 시리즈에서 그는 어떤 세계의 진실이 보이는 순간이 있다면, 그 순간은 유턴을 위해 멈춰 섰을 때이거나 아니면 심하게 굽은 길에서 속도를 줄일 때라고 말한다. 도심의 번잡한 길이 아닌 경우, 이러한 길에는 효율성을 위해 대개 신호등 대신 커다란 반사경이 서있다. 반사경은 내가 지나온 길을 보여준다. 속도를 줄이거나 멈춰서 내가 지나온 길을 볼 수 있을 때만 앞과 뒤가 모두 보인다. 세계의 진실을 보려면 상대적인 세계의 양면을 모두 봐야 하는 것처럼, 〈느린 풍경〉 시리즈에서 김선두는 ‘느림’과 ‘멈춤’을 감각과 인식의 환기를 위한 전위로 사용하면서, 앞과 뒤가 모두 보이는 부감시(俯瞰視)로 구성된 전경(全景)을 통해 우리에게 통찰(洞察)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나에게로 U턴하다〉(2019)에 이르면 김선두의 메시지는 더욱 분명하고 강해진다. 길을 간다고 언제나 유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호가 빨간 불로 바뀌어 멈춰 섰을 때만 유턴의 기회가 생긴다. 즉 조건이 생겨야 가능한 것이 된다. 이러한 상황을 우리의 삶과 상징적 비유로 연결해 보자. “나에게로 U턴”을 나의 본성으로 돌아갈 기회라고 해석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 삶을 반성하고 선택하고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김선두는 그 생각조차 반성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김선두는 여기에서 나의 의지만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의지를 생겨나게 한 조건을 동시에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일상과 일상의 건너편, 일탈을 동시에 볼 때만 가능하다. 나아가 일탈이 일상이 되고, 그 일상이 다시 일탈이 되는 인식의 전환이 자유롭게 이루어져야만 가능하다. 김선두는 그러한 전환이 가능할 때 보이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별을 보여드립니다〉 시리즈를 통해 하고 있다. 반짝이는 것들, 아름다운 것들은 고정된 형태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반짝임을 느낄 때, 아름다움을 느낄 때 그 아름다움의 절정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반짝임이나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은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는 순간이다. 그래서 말라가는 호박 넝쿨에서도 길가의 담쟁이에서도, 해바라기나 허수아비에서도 그것들이 존재하는 이유와 나와의 관계의 의미를 느낄 때 삶의 진실이 반짝이듯 드러난다고 말한다. 물론 그 순간에는 모든 사물이 새롭게 보인다. 예를 들면 〈철조망 블루스〉(2019)가 있다. 인식의 전환이 일어난 순간, 담장 위 철조망에 앉은 새들의 모습에서도 자연의 절주를 들을 수 있게 되는 눈을 갖게 되는 것이다.

    김선두의 상대적 세계를 동시에 보는 안목이 빛을 발하는 작품은 〈마른 도미〉(2019)이다. 생선 배를 갈라 등이 맞붙어있는 상태로 양쪽으로 벌려 말려 놓은 건어물에서 김선두가 본 것은 양옆으로 된 한 몸이 벌어졌을 때, 즉 상대적으로 구성된 세계가 한쪽으로만 보이게 될 때, 죽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때 생선의 입장에서는 안팎의 전도가 생긴다. 상대적 세계를 하나의 입장에서만 보면 생명을 구성하는 총체의 의미가 사라진다. 인식의 세계에서 개념에 의해 하나가 둘로 쪼개졌을 때, 여전히 모든 요소가 유실되지 않은 부분의 조합을 지니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마르고 비틀어진 생기 없는 피부처럼 죽음의 세계를 볼 뿐이라는 것이다. 김선두가 〈마른 도미〉(2019)의 죽음을 좀 더 확장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작업이 〈유혹〉(2019) 시리즈이다. 꽃처럼 보이는 회 접시나 파리지옥의 벌어진 잎, 사과의 단면 모두 색채에서 비릿한 죽음의 냄새를 풍긴다. 이들 작품에서는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가 동시에 공존한다. “화사한 꽃과 비릿한 회”, “벌어진 꽃잎과 곤충의 죽음”, “성적 유혹과 말라비틀어짐”, 이와 같은 생성과 죽음의 이미지가 공존한다. 죽음의 냄새는 유혹을 동반한다. 시인 유하가 「오징어」(1991)에서 “의심하라 모든 광명을”이라고 외쳤던 것처럼 김선두 또한 유혹과 이해관계가 형성하는 죽음의 변증법을 노래하고 있다.

    이 유혹에 내재한 죽음을 보는 힘, 사물에 숨겨진 진실을 이해하는 힘은 ‘멈춤’이나 ‘느림’, ‘일탈’과 ‘전위’의 상대적 관점에서 동시에 보는 눈을 소유하는 것에서 온다. 따라서 일탈은 초월이다. 상대적 세계를 동시에 보려면 상대적 관점 어느 곳에도 얽매여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선두는 ‘가치’의 세계에서 ‘가치’로만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 가치로 위장한 비가치를 알아보는 통찰의 시선을 갖출 수 있는 방법론이란 상대적 가치의 세계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초월적 시선을 확보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서는 그 초월적 시선을 확보하는 실천이 ‘느림’이나 ‘멈춤’의 아방가르드이다.
    ■ 김백균 (중앙대학교 교수)

    전시제목김선두

    전시기간2020.01.22(수) - 2020.03.01(일)

    참여작가 김선두

    관람시간10:00am - 06:00pm

    휴관일매주 월요일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갤러리 학고재 Gallery Hakgojae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 (소격동, 학고재) 본관)

    연락처02-720-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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