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동완 개인전: 나는 셋 아니 넷 아니 다섯

2020.07.04 ▶ 2020.07.26

플레이스막

서울 서대문구 홍제천로4길 39-26 (연희동) 플레이스막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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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동완

    <나는 셋 아니 넷 아니 다섯>연작 0주 한지에 흑연_ 44x56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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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셋 아니 넷 아니 다섯>연작 9주 한지에 흑연_ 44x56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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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셋 아니 넷 아니 다섯>연작 15주 한지에 흑연_ 44x56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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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셋 아니 넷 아니 다섯>연작 25주 한지에 흑연_ 44x56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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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셋 아니 넷 아니 다섯>연작 35주 한지에 흑연_ 44x56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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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셋 아니 넷 아니 다섯>연작 38주 한지에 흑연_ 44x56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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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셋 아니 넷 아니 다섯>연작 39주 한지에 흑연_ 44x56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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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동완

    <나는 셋 아니 넷 아니 다섯>연작 40주 한지에 흑연_ 44x56cm_2020

  • Press Release

    그것은 마치 흑백과 같은 분명함이면서도 백색이 지키는 비어 있는 종이 혹은 검정이 지키는 자리라 할 것이다. 지난한 40주를 기록한 마흔한 점의 드로잉은 국동완이 “손이 알아서 그리는 것을 보는 일. 손이 그려버리고 만 선과 이미지들을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했듯이, 그것은 불투명한 한지 위에 안착한 흑연 가루의 변덕스러움을 통해 얻게 되는 기호들의 검은 색이다. 이러한 불가피한 얼룩의 기호들은 시인 말라르메(Stephane Mallarmé)가 『바다의 미풍(Brise Marine)』에서 “밤새 백색의 종이와 씨름했으나 태어나지 못한 시”라고 묘사하듯, 마주하거나 덩어리진 육체보다 잡힐 수 없는 공허 안에서 사유하고 의미를 얻으려고 하는 그리기와 글쓰기의 이면과 유사하다. 흑백의 그리기와 쓰기의 태도는, 세상의 만만치 않은 불변성을 지닌 하얀색 위에 세심하게 고안된 질량으로 던져진 검은색에서 나온 사유의 과정이자 또 다른 형태의 형상 없음이다. 그것은 몇몇 불확실한 형태를, 말하자면 7주 차 드로잉에서 반은 속눈썹이고 반은 주름 같지만, 형태를 변증하는 관념적인 이미지에 대한 욕망과 공허를 동일시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0주에서 40주까지 뱃속에 품고 있는 생명체를 상상하며 한 주에 한 장씩 하나의 형태를 그려나간 기록들은 무차별적이고 유기적인 이미지로 화면의 중앙에 태어나지 않은 이의 초상으로서 정체성에 대한 관계를 모호하게 드러낸다. 현실에서 아직 마주하지 않은, 다가올 미래에 마주하게 될 생명에 대한 상상은 존재 혹은 주체 이전에 검은색과 하얀색 사이의 추정된 등가성 가운데 순환하는 그 ‘무엇’에 대한 힘 혹은 욕망을 대변한다. 검정 드로잉들은 검은색이 본질적으로 가진 회화적인 가능성에 대한 일종의 탐험이자 이미지도 언어도 아닌 것에 가깝다. 그것은 이미지도 언어도 아닌 이상, 무채색으로서 색의 아무것도 아닌 것과 전부를 매개하는 유령처럼 고독하게 그곳에 머물러 있다. 작가가 만들어 놓은 무형의 세계 안에.

    이 세계가 나눠질 수 있는 검은색과 나눠질 수 없는 하얀색의 까마득히 오래전부터 내려온 대립에 이르게 되는 이상 모든 것은 완결되는 듯하다. 마흔한 장의 드로잉 <나는 셋 아니 넷 아니 다섯>(한지에 흑연, 44x56cm, 시리즈 41점, 2020)은 아스라하거나 선명한 윤곽들이 서로 마주하고, 변이하고, 증식하면서 동시에 서로의 그림자가 되어 준다. 칠흑같이 검은 세계 아니, 어쩌면 빛이 존재하는 밝은 공간에서 생명이 매주 성장하는 살아있는 초상은 눈으로 보지 못한 작은 세계가 가진 사십 주의 역사와 신화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작가의 의식을 따라가는 손끝의 움직임들은, 그가 과거에 무의식의 꿈을 매일 기록했던 것처럼 의식에 깊숙하게 박혀 있는 기억으로부터 반복 혹은 회상할 수 있는 범위의 방향으로 향한다. 자라나는 윤곽 안에서 즉흥적으로 발생하는 선과 면들은 익숙한 것과 이상한 무엇으로 감수성의 형태들을 띠며, 서로 어긋나면서 유형화되기도 한다. 사십 주에 가까워질수록 급격히 커지는 이 형태는 비로소 그 은밀한 윤곽을 엿보게 하고, 작가와 이 세계가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그 수많은 관계 형태를 감지할 수 있게 한다. 이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하나이자 여럿, 여럿이 하나인 다중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다른 서사들과 연결될 가능성을 부각하는 화법을 구축하고 해체하는 등 같음과 다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화법을 보여준다. 국동완이 보여주는 기록은 수수께끼 같은 대상으로부터 여러 화면에 녹아 들어간 다른 시간과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이야기가 엮어 나올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는 화면 가장자리의 여백과 중앙에 밀도 있는 드로잉들이 서로 분리되어 비어 있는 것과 가득 찬 것, 가득 찬 것으로부터 텅 빈 것으로, 무궁무진한 것으로부터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것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근원적인 것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 들어간다. ‘검정’이라는 이름으로. 이처럼, 드로잉에서 돋보이는 형식이 서사적으로 발현되는 특징은 작가만의 독자성이기도 하다.

    검정이라는 다양한 얼굴들의 끝없는 나뉨과 증폭은 40주에 대한 드로잉과 더불어, 40주를 무한하게 펼쳐놓은 그물망의 시선으로 하나의 글 <나는 셋 아니 넷 아니 다섯>(국동완 지음, 바운더리 북스, 2020)을 통해 언어적 표명과 분절적인 기록으로 등장한다. 이 글은 윤곽을 따라 그려나간 신체와 사물의 모양을 받아 적은 드로잉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글의 형태로 받아쓰기한 드로잉의 아카이브와 같다. 이 기록은 복합적이고 열린 관계에서 점차 드러나는 촘촘하게 엮어 놓은 허구다. 마치, 가려져 있던 것들이 드러나고, 아직 닿을 수 없지만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들이 글줄 몇 개에 욱여 넣어진 상태로 작가는 글로 옮겨진 순간들을 화석처럼 그 흔적들을 발굴해 낸다. 그가 취하고 있는 글쓰기에 관한 태도는, 관계들을 억류하는 검은색의 단일성을 넘어서도록 드로잉에서 시각적으로 분출한 대상과 그것을 둘러싼 세계를 쪼개어진 검은색들로 묘사한다. ‘검은 옷을 입은 엄마, 까만 돌, 검은 빵, 검은 호수, 검은 엉덩이, 시커먼 발, 검은 피라미드, 검은 물방울 한 줄, 검은 속눈썹, 검은 산, 검은 폭포, 검은 원통, 검은 연기…’ 이처럼, 국동완은 40주 동안 밖으로 나올 채비를 하고 있는 존재 이전의 그 무엇, 실존하고 사유하기 이전의 그 무엇이라는 대상의 일부를 ‘검은 것’으로덧입히고, 감지할 수 있는 모든 감각과 풍경 그리고 사물을 다양한 모습의 검정으로 지칭한다. 탄생 이전의 검은 것들에 대한 받아쓰기의 확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덧없음과 인간적 과시의 불꽃이 소멸한 두 번째 고리의 림보에 등장하는 검은 바람처럼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이의 모습과 흡사하다. 이처럼, 검은 것들은 유사 검정이지만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검은’ 것이 아니다.

    아직 발생하지 않은 타자의 세계에 거하기 위해 작가 역시 또 다른 타자가 되어 픽션을 가능하게 하고자 하는 의지는, 흥미롭게도 글 <나는 셋 아니 넷 아니 다섯>에서 검정의 다양한 모습에 대한 묘사와 시각적, 청각적 기억으로 리듬감을 부여한다. 우리는 이 글을 통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무중력 상태의 작은 우주에 있는 점이 하나 발생하여 시작되는 여정으로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없어 안 보여 아니야 있어 볼 수 없을 뿐이야”로 나직하게 시작하는 첫 문장은, 우주론적 관점에서 실존에 대한 비가시적인 것과 인식에 대한 어떠한 구멍이 식별되지 않는 오작동으로 사유가 결여되지 않도록 존재하는 것과 동시에 양가적인 모순에서부터 출발한다. 여기서 ‘나’로 불리는 하나이자 여럿은, 검은색이라는 식별되지 않은 것들의 상징에 기대어 오히려 명확하게 발견하기 어려운 채로 사유하는 것에서의 결여를 메우는 데 열중한다.

    “ 나는 혼자일 때도 있고 여럿일 때도 있다
    나는 열다섯 개가 되어
    나는 일곱, 일곱이 살아 있다
    여섯의 나는 이상하고
    다섯 개의 나는
    나는 넷이 되었고 ”

    이와 같이, 사유에 대한 오작동이 아니라 아무것도 결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엇이든 가능하고, 무언가의 이름이자 존재해야만 하는 모든 것의 이름, 그것은 ‘검정’으로 관철된다. 이처럼, ‘나’라는 여러 분신을 묘사하는 문장들은 마치 악보를 읽는 느낌으로 띄어쓰기는 변칙적이고 당김음이 된다. 문장에서 드러나는 어떤 어조와 어떤 리듬은 시각적인 것을 청각적으로 접근하거나 그 반대가 되기 위해 음 하나하나가 글자의 의미를 서서히 되살린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이러한 분신들은 마흔한 개의 드로잉에서도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배경으로부터 떠올렸다가 물러서기를 반복하여 등장인물과 상징하는 장면들을 유추할 수 있도록 각각의 프레임 안에 집약된다. 여기서 국동완의 드로잉과 글에 등장하는 ‘모나’의 분신들로부터 특유의 복수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가 “이명(異名)”이라는 발상으로 자신을 일흔 개 이상의 자아-타자로 지칭했던 것처럼, 상상 속의 인물들에게서 이름 외에도 고유하게 갖춘 구체적인 특징들을 분신으로서 동일하게 그려내는 것과 유사하다.

    국동완의 이번 전시 제목이기도 한 《나는 셋 아니 넷 아니 다섯》(플레이스막2, 2020)은 동명의 그림과 글에서 등장하는 대상이 소유한 개체성에 대한 강한 애착으로 둘러싸여 있다. 동시에 이러한 개체성을 초월하고자 하는 욕망은 여럿으로 끊임없이 쪼개지는 과정과 검정이라는 색이 상징하는 것들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서로 반대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애착과 욕망은 역설적이게도 삶이자 죽음을 함축한다. 드로잉과 글에서 절묘하게 드러나는 긴장감과 불안감은 ‘나’라는 존재가 인식하고 있는 다양한 상념들이 모여 세상 밖으로 뻗어 나가고자 삶 그 자체를 활성화하려는 정신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삶 그 자체로는 환원될 수 없는 의식에 대한 모순된 방향이기도 하다. 이처럼, 모순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의 타자(작가)와 현실 이전의 타자(태아)에 대한 내적 관찰은, 하나의 대상을 변화시키고 그 대상이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오게 하며 유한한 개체성이 그 경계로부터 나와 바깥을 향하는 운동과 시간성을 함축하며 일련의 상징 다발로 집결된다. 이와 같은 우연과 상징 다발들은, 단어와 행간이 행사하는 우발적인 기록들과 더불어 유기적인 형태 안에서 연필로 채워나가는 검정 면과 반복적으로 간격을 이루는 선들을 따라 다음에 어떠한 모양이 나올지 예측할 수 없는 자동기술법(automatism)에서 보여주는 의식의 흐름처럼 실재를 터득하려는 의지로 향한다.

    그의 두 가지 기록은, 종이와 종이 사이의 꾹꾹 눌러 그린 드로잉들과 문장들처럼 삶에서 가장 은밀했던 순간들과 글로 옮겨지는 일이 거의 없던 생각들의 흔적을 자신이 타자가 되어 두 번 받아쓰는 태도를 보여준다. 두 번 받아쓰기는 어수선한 말 속에서 가시화된 모양-이미지를 해독해내고, 자신을 강타한 이미지와 문장의 조각 하나하나에서 의미를 끌어낸다. 40주라는 긴 시간 동안 베일을 한 겹씩 걷어내어 알고 있는 것과 알고자 하는 것의 불투명함을 헤치고 나아가는 예민하고도 농밀한 감각은, 불확실했던 긴 여행을 거쳐 존재와 사물들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나’이자 ‘여럿’의 몸짓들이다. 작가가 파헤치고 분류하는 상상과 기억들은 종이 위에 가득하면서도 공허하다. 그의 손에서 사정없이 그려나가고 적어 내려간 자리들은 무엇을 지키는 자리였을까? 검정을 지키는 자리일지, 검은 무엇이 지키는 자리일지, 검은색의 자리일지. “나는 셋 아니 넷 아니 다섯,” 내 이름은 검정이다.
    ■ 추성아

    전시제목국동완 개인전: 나는 셋 아니 넷 아니 다섯

    전시기간2020.07.04(토) - 2020.07.26(일)

    참여작가 국동완

    관람시간12:00pm - 07:00pm

    휴관일매주 월,화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플레이스막 placeMAK (서울 서대문구 홍제천로4길 39-26 (연희동) 플레이스막2)

    연락처017-219-8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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