뭇웃음

2011.03.25 ▶ 2011.04.17

갤러리 팩토리

서울 종로구 창성동 1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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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ㅣ 2011-03-25 14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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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품 썸네일

    권순영

    눈(Snow) 장지에 채색, 145x96.5cm, 2009

  • 작품 썸네일

    권순영

    미키미키(mickey-mickey) 장지에 먹, 146x97cm, 2010

  • 작품 썸네일

    권순영

    별(Star) 장지에 채색, 145x96.5cm, 2009

  • 작품 썸네일

    권순영

    수태고지(the Annunciation) 장지에 먹, 206x140.5cm, 2010

  • Press Release

    권순영은 관훈 갤러리에서의 지난 개인전에서 이야기책에 등장하는 삽화의 형식으로 자전적 이야기를 했다. 기억에서 건져진 무거운 일화들을 만화 속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캐릭터들과 드로잉을 이용하여 가볍게 전도시킨 작업들이었다. 경쾌한 어법으로 실랄한 현실을 이야기하는 역설의 방식은 이번 전시에서도 여전히 주요한 미학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근작에서 권순영은 단편적 이야기의 삽화 같은 방식에서 좀 더 회화적인 방향으로 이행하였다. 작품 속 이미지는 일화들의 전달을 위한 부가적 장치가 아닌 자기충족적 리얼리티를 갖게 되었다. 첫 개인전 이후 지난 4년간의 작가적 성숙을 보여주는 환영할만한 발전이다. 그의 근작들 역시 기억 속 개별적인 사건들에서 파생된 것이지만, 사건의 특수하고 개인적인 지점을 벗어나서 폭력과 공포라는 보다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실체를 다루고 있다. 기억의 파편들은 자동기술적 드로잉의 원리에 의해서 점진적으로 또 다른 상상의 이야기로 진화되고 증폭되어, 특정한 기승전결 없이 상처와 고통이라는 정서적 상태를 형상화하고 있다. 기억과 상상이 뒤섞여 세포분열 하듯 증식된 이 시각적 콘텍스트를 일컬어 하나의 정서적 덩어리, 혹은 심리적 유기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권순영의 근작들에서도 만화적인 캐릭터가 계속 등장하는데, 이 캐릭터들은 이전 작품에서와 달리 특정 인물을 표상하기 보다는 제의적 의식에 참여하는 가면 같은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작품 속에서는 순정만화에 나올듯한 여린 소녀들이나 잘 알려진 캔디, 미키마우스를 닮은 주인공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만화가 일반적으로 지시하는 천진한 해피엔딩의 세계 속에 놓여있지 않으며, 마치 보슈의 그림 속 최후의 심판 장면처럼 신체가 절단되거나 해체되는 끔찍한 신체적 고통을 받고 있다. 쏟아진 내장, 각목에 찔린 몸, 벗겨진 피부와 같은 이미지는 고통의 상징으로 작품 속에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 당하고 있는 잔인하고 파괴적인 사건은 행복해야할 동화 나라에 느닷없이 끼어든 희생 제의처럼 부조리하고 가혹하다. <눈>과 같은 작품에서도 어여쁜 순정만화의 주인공 소녀들은 다리가 잘려있거나 고문을 당하고 있다. 역설적 상황을 더욱 강조하는 것은 그림 속 주인공들의 표정이다. 기형이거나 훼손된 신체를 가진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그들이 경험하는 현실의 비참함을 웃음으로 덧입힌 듯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고 있다. 사건의 본성과 유리된 이러한 표정으로 인해 이들은 떠도는 유령 같이 현실적 힘을 잃은 채 무기력한 느낌을 준다.

    주목할 점은 권순영의 작품 내용이 고문 현장과 같이 폭력적인 장면을 다룸에도 불구하고, 종종 크리스마스나 별이 빛나는 밤하늘, 장식용 볼과 같은 순수한 유년기의 환상을 투사한 이미지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고아들의 성탄>이나 <가족>에서 눈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와 같은 축제 이미지는 그림 속 캐릭터들의 훼손된 신체를 통해 감각적으로 전해지는 심리적 고통들과 오버랩 되어 기이한 판타지를 만든다. 소복소복 눈이 내리는 성탄절의 평화로운 아름다움은 잔혹함이 주는 감각적 충격의 파장을 조용히 흡수하면서, 파괴적 장면을 마치 꿈처럼 몽환적인 것으로 만든다. 비천함(abjectness)의 미학 자체를 감각적으로 탐닉하는 것이 작품의 목적이 아님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그가 펼쳐 보이는 것은 때묻지 않은 유년기의 환상과 뒤틀린 현실의 공존에서 발현되는 세계로서, 동화나라와 현실의 중간 즈음에 위치하는 기묘한 연옥의 지대이다. 이 세계를 응시하는 작가의 시선에서 흡사 성냥팔이 소녀가 창 안을 바라보는 것 같은 아득한 거리감이 견지되는 것은 흥미롭다. 작품 안 세계에는 유리구슬 안의 공간처럼 닿을 수 없는 엷은 장막이 있는 듯하며, 이 때문에 어쩐지 슬프게 느껴진다. 감각을 날카롭게 건드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곧 사라질 물거품처럼 허무하고 가벼운 느낌을 안겨주는 것도 이러한 장치 때문이다.

    이율배반적인 세계의 충돌과 결합, 이로부터 진화되는 새로운 판타지는 권순영의 작품을 형성하는 요체이다. 축제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잔인한 현실, 그 안에 여전히 아름답고 순수한 모습으로 남겨진 유년기의 환상, 잔혹한 감각적 충격들을 완충시키는 아득함, 이러한 요소들이 결합하여 만들어내는 판타지야말로 권순영의 근작에 새롭게 성취된 개성적인 특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뭇웃음’은 여러 사람을 향하여 덧없이 웃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제목의 작품 <뭇웃음>은 권순영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소녀, 아이와 같이 약한 존재들을 위한 기념비나 무덤과 같은 것으로, 이름 없는 수많은 희생양들을 기리기 위한 작업이라고 한다. 이 작품에서는 특정한 상황 설정 없이 신문에서 읽은 사건과 기억, 상상력이 만나서 창조된 캐릭터들 하나 하나의 표정이 곧 주제가 되고 있다. 각기 다른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 이 캐릭터들은 하나 같이 덧없고 헛헛한 웃음을 짓고 있다. 예리한 아픔이 내재되어 있는 이들의 옅은 미소는 작가가 그림 속 존재들을 창조하면서 공유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고통에 대한 심리적 잔상이 투영된 것이다. 배경의 별빛과 둥근 볼들은 정령처럼 떠 있는 이들의 웃음을 좀 더 아름답게, 애처롭게 만들어준다. 기억과 상상이 만나 형성된 이 캐릭터들의 세계를 통해서 연약한 존재들의 공포, 고립과 고통이 보편적인 인간감정의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들의 ‘뭇웃음’에 알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면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이은주 (독립기획자, 미술사)

    전시제목뭇웃음

    전시기간2011.03.25(금) - 2011.04.17(일)

    참여작가 권순영

    초대일시2011-03-25 14pm

    관람시간11:00am~18:00pm

    휴관일월요일

    장르회화와 조각

    관람료무료

    장소갤러리 팩토리 Gallery Factory (서울 종로구 창성동 127-3)

    연락처02-733-4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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