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을 위한 변주 Variation For Rest

2017.08.07 ▶ 2017.09.29

스페이스 이끼

서울 성북구 성북로23길 164 (성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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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저킴

    Variation For Rest 혼합 오브제_가변설치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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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저킴

    Variation For Rest2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35×35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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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저킴

    Variation For Rest7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35×35cm_2017

  • Press Release

    이선영(미술평론가)

    도저 킴은 버려지거나 방치된 물건들을 활용하여 메시지를 던진다. 최근의 작품 [쉼을 위한 변주] 시리즈에서는 여러 가지가 작업의 부품으로 사용되지만 의자가 공통적이다. 누군가의 자리였을 버려진 의자는 부재의 상징이자, 그자체가 다른 물건들을 아우르는 주어 같은 역할을 한다. 주어는 나머지 요소들에게 목적어나 서술어의 위치를 할당하면서 다양한 서사를 만든다. 작품을 이루는 몇몇 요소들은 문장을 이루는 어휘로서 작용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작가의 작업 목록에서 시리즈라고 할 만한 공통적인 기본 문법이 깔려 있다. 그의 작품에서 단어의 다양한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문장은 산문이기보다는 시이다. 도저 킴에서 수집된 사물은 산문처럼 건조하게 어떤 상황을 묘사하거나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시적 언어처럼 다양한 층위를 가진다. 응축적 층위들에 기대는 어법은 때로 난해할 수도 있지만, 공명하게 될 때 그 파장은 오래 남는다.

    아직 작품으로 완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가 하루에 소비한 상품들의 영수증을 모아 시를 쓰려는 다다 같은 형식의 기획도 진행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현대인이 생산보다는 소비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낸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이다. 도저 킴이 주목한 것은 개체의 취향이 반영되어 있는 소비품목의 증거물들이다. 게다가 거기에는 그 점포만의 메시지도 적혀 있어서 사물로 만든 시의 어휘는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진행 중인 영수증 작업은 나는 없지만 나를 대변하는 사물로 만든 서사라는 점에서, 설치작업과 연결된다. 그것들은 모두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기 보다는 주어진 것들을 해체/구성한 결과물이다. 이번 전시에서 주로 보여 질 설치 작품에서 주체의 빈자리는 앞만 향해 달려왔을 현대인에게 휴식을 제안한다. 어떤 작품은 실제 앉아 볼 수도 있을 만큼 안정적이고, 어떤 작품은 현대적 삶의 조건이 그렇듯이 위태롭다.

    재료들은 가창 창작 스튜디오 인근 마을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도저 킴은 작업실을 벗어나 수개월째 구르마를 끌고 다니며 수집하는 넝마주의 같은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것은 초현실주의자처럼 공간을 배회하면서 자신의 욕망에 부응하는 오브제를 수집하는 여정이었다. 그 오브제들이 쉼과 관련되는 것은 초현실주의 미학에서도 발견된다. 1936년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괴상한 오브제들’이 모인 전시회가 열렸다. 거기에서 초현실주의 운동의 수장인 앙드레 브르통은 ‘오브제의 위기’라는 텍스트를 쓴다. 초현실주의 오브제 전에서 브르통은 ‘오늘날 지적인 생활의 모든 병적인 증상은 휴식을 모르며, 자기 스스로를 포기하는 객관화의 의지 안에 들어있음’을 성토하고, ‘몽환적인 기원을 가지는 초현실주의적 오브제를 옹호했다’고 미술사는 기록한다. 실용으로부터 벗어난 것들은 예술이 된다. 그것도 의식보다는 무의식에 호소하는 예술이 된다.

    이때 예술은 사물에 가까워진다. 도저 킴은 우연과 필연이 복합된 이 과정을 어느 단계까지는 신나게 수행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수집된 사물로 말하기는 점점 어려워졌을 것이다. 무익한 반복을 일삼는 안이함에 머물지 않는다면 말이다. 수집이 더 이상 불가능하면 만들어야 할 것이다. 만들기는 수집하기보다 주체의 의도와 목적, 방법의 합리성과 투명성이 더욱 요구된다. 사물과 예술의 차이이다. 도심에서 차로 20여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이 마을은 땅값이 싼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지는 않다. 도심도 마찬가지지만 개발되는 것도 아닌 것도 아닌 애매한 장소에서는 방치되어 있는 것들이 많다. 작가는 자기가 잠시나마 속해 있던 장소의 정체성을 살리고자 한다. 작품의 구성요소들은 대부분 집의 일부나 집에서 나온 것들이다. 돌 위에 나무 기둥들을 세우고 그 아래 작은 의자가 있는 작품은 집을 이루는 최소한의 요소가 있다.

    식탁 같은 구조를 사이에 두고 의자가 마주한 작품은 같이 먹는 식구(食口)의 의미를 떠오르게 한다. 그의 작품 속 집이나 가족은 버려진 물건들로 이루어져서인지 사라져가는 것들이 주는 멜랑콜리가 느껴진다. 실제 우리나라의 상황이 그렇다. 매우 현실성이 강하고 변화에도 민감한 현대의 한국인은 집이나 가족에 대한 상도 급격하게 변화시켰다. 현대가 전통을 변화시킨 것이지만, 압축된 근대화를 밟아온 우리의 경우 유독 속도는 빨랐다. 이러한 흐름에서 망각은 기억보다 더 진보(발전)적 가치였다. 나날의 새로움이 가능하려면 망각은 필수적이다. 기억의 억압은 새로움의 전제조건이다. 그래서 새로움은 진정 새롭지 않다. 기억은 억압되고, 예술가의 작업에서 다시 활성화된다. 고고학적 분위기를 풍기는 현대미술 작품은 폭력적 망각에 기대는 현대화에 대한 완곡한 발언인 셈이다. 낡은 사물들로 이루어진 도저 킴의 작품에서 억압되어 있던 기억은 하나씩 되살려진다.

    작품의 구성요소들이 균형을 잡으러 애쓰는 것은 그러한 속도감에 대한 위기의식이나 저항감일 수도 있다. 없어진 의자 다리 대신에 돌로 괴어 놓은 테이블은 가까스로 수평을 유지한다. 쌓인 돌들은 3개 층으로 이루어진 것이 마치 인체처럼 보인다. 고풍스러운 의자의 디자인은 신전을 떠받드는 기둥을 겹쳐 보이게 한다. 위태로운 균형 속에 걸쳐진 나무 의자가 있는 작품은 매우 복잡한 그림자를 떨군다. 쉼이란 자극이 없는 단순함이라는 조건이 있어야 하는데, 그림자는 자신이 처한 심란한 상황을 감추지 않는다. 사다리 위에 침대의 매트리스가 걸쳐 있고 그 위에 옛날 초등학교 나무 의자가 걸쳐있는 작품은 불안정한 자리의 극치를 보여준다. 한 인간의 정체성을 완전히 교란시키는 상시적인 해고의 그늘, 현대적 직업의 불안정성은 가장을 포함한 식구들을 불안한 상황에 놓이게 할 것이다. 쇠 난로 위에 얹어 있는 의자는 그 위에 뾰족한 나무가 아니더라도 가시방석처럼 다가온다.
    작은 의자 위에 죽은 식물이 있는 화분이 있는 작품은 보다 직접적으로 위기적 상황을 말한다. 사람 인(人)자 형태의 삭은 나무 위에 걸린 버려진 의자는, 그림자를 보면 더욱 확실하지만 참수된 인간을 떠올린다. 원래 나무에 있던 녹슨 못이 작가에게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축 발전’이라고 새겨진 거대한 궤종 시계가 마룻바닥 같은 역할을 하며 의자와 나무가 마주한 작품은 광란의 속도로 질주하는 시간을 정지시킨다. 자연은 인간의 역사에 비한다면 거의 시간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거기에는 죽어야 진정한 휴식이 가능할 수 있다는 서늘한 예감마저 깔려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일상적으로 사용되던 물건들은 도저 킴의 작품에서 먼 옛날 토템 상처럼 그렇게 서있다. 작품 재료들은 거의 쓰레기와 다를 바 없는 것들이지만, 그것들은 한때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했던 상품이었을 것이다. 단순한 기능을 넘어서 물신 되어야 성공적으로 유통되는 자본주의 메커니즘은 다시금 원시시대의 비합리주의를 끌어들인다. 이른바 계몽의 역설이다.

    새로운 것이 밀려들어오면 그 전에 있던 것들은 밀려난다. 그 속도가 빠른 만큼 낯설어지는 상품/사물도 많아진다. 역사상 그 주기가 자본주의처럼 빠른 사회는 없었다. 자본주의는 소비가 지체되면 그 자체가 위기에 빠지기 때문이다. 빠른 폐기는 처음부터 예견된 것이며, 심지어 그것이 좋은 상품의 조건이 될 것이다. 한번 사면 오래 쓰는 물건은 자본가들에게는 재앙이다. 만약에 사라지지 않는다면 의미라도 갱신되어야 할 것이다. 거듭해서 해석되는, 미술사의 반열에 올라간 예술작품들처럼 말이다. ‘쉼을 위한 변주’ 시리즈는 현대적 삶에 대한 시적 은유가 있지만 그것을 재현하는 것은 아니다. 오브제의 수집에 기초한 그의 작업은 애초에 재현이 아니라 제시이다. 그가 구사하는 사물의 어법은 수직, 수평, 사선 등으로 이루어진 안토니 카로나 데이비드 스미스의 조각처럼 형식주의적으로 분석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작업은 삶으로부터 분리된 정제된 재료를 사용하는 형식주의와 다르다.

    그의 작업은 삶에서 나왔고 삶을 지향한다. 그것은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분류에 따른다면, ‘이성의 조각’이 아니라, 상황의 조각에 관련된다. 수집이나 발견이라는 초현실주의 미학은 맹목적 운명이나 신비 같은 계몽 이전의 가치와 보다 잘 어울린다. 그러면서도 전통이 기반했던 자연과는 거리를 둔다. 초현실주의도 그렇고 도저 킴의 작품도 그렇고 자연은 배경에 머물러 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주목하는 것은 도시와 도시적 삶에서의 (무)의식이다. 그러나 도시 및 도시적 삶 또한 자연화 될 것이다. 자연은 신비하지만 과학적으로 합리적인 부분이 밝혀지고 있는 것만큼이나, 문명은 겉으로는 합리적이지만 비합리주의를 숨긴다. 21세기의 도저 킴 작품에서는 문명의 자연화가 더 진전되어 있다. 삶은 자연과 문명 모두에 걸친다. ‘쉼’이라는 메시지는 더 나은 삶에 대한 지향조차도 발견된다. 그의 작품은 삶과 분명히 관계는 되지만 삶을 재현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그림이나 조각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인 재현을 따르지 않는 방식은 도저 킴이 29세에 그때까지 해왔던 음악에서 디지털 아트로 전공을 바꾸는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현대미술은 추상이 그러했듯이 ‘자유로운’--구체적인 참조대상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함—음악의 상태를 갈망했지만, 음악 또한 자신의 관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면이 있던 것이다. 일찍이 재현주의에 대한 도전과 응전이기도 했던 현대미술은 작곡가의 의도를 재현하는 클래식 음악이 줄 수 없는 자유로움을 주었을 것이다. ‘쉼을 위한 변주’ 시리즈에서 그는 작곡가의 의도를 재현하는 성악가가 아니라, 사물들을 직접 지휘하는 연출자가 되었다. 사물들은 작가의 의도에 완전히 투명하게 반응할 수 없다. 그것들은 제각각의 삶의 현장 속에서 우연히 선택되어 예술계로 흘러들어 온 수수께끼의 사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설치작업 외에 사진 작업을 병행한다.

    수집된 오브제들이 병치되듯이 그의 사진 작업은 꼴라주에 많이 의존한다. 개별적으로 찍어서 포토샵으로 붙여 작가의 메시지를 제시하는 방식은 설치작업과 궤를 같이 한다. 일회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설치작품을 사진으로 찍어둔 다는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사진을 수집의 도구로 삼고 그것을 재구성하는 메커니즘을 설치와 공유한다는 것이다. 사진기는 공간을 배회하며 우연한 만남을 욕망하는 현대의 산책자들의 필수품이다. 또한 사진은 기계적 눈을 가지고 있어 작가의 의식만큼이나 무의식도 실어 나른다. ‘공간과 지역, 도시’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말하는 도저 킴에게 도시의 주변부에는 작가의 관심을 끌만한 사물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낡은 것에서 심미적인 것을 취하는 그의 작품은 대부분 이미 그 사물에 내재되어 있는 것을 더 증폭시킨다. 30대 초반, 적은 나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는 조형예술에 있어서만큼은 신생기의 신선함을 맘껏 누리고 있다.


    쉼을 위한 변주
    버려진 사물을 통해 나는 나 자신의 또 다른 욕망의 깊이를 탐구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강박적 또는 암묵적인 욕망의 무게 속엔
    마치 공기 중에 뿌옇게 떠도는 한 줌의 잿가루를 애써 삼키는 고행의
    순간이 담겨있다.
    지금, 나의 목구멍은 기억한다.

    다시금 호흡을 가다듬는다.

    버려진 사물과 사물의 마주함 속에 비치는
    잉여적 존재의 치부됨을
    그리고 그 안의 불안감을

    나는 그 불안을 만끽하며
    나의 욕망을 마주한 체
    멈출 수 없는 욕망의 무게를 관망한다.

    그리고 기약한다.
    그 어느 날의 쉼을

    ​- 작업 노트-

    전시제목쉼을 위한 변주 Variation For Rest

    전시기간2017.08.07(월) - 2017.09.29(금)

    참여작가 도저킴

    관람시간24시간 관람가능

    휴관일없음

    장르설치

    관람료무료

    장소스페이스 이끼 space ikki (서울 성북구 성북로23길 164 (성북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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